2024년 연말 장중 1486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1460원대에서 새해 거래를 시작한 후 1월 8일 1455원까지 내려왔다. 1월 2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보편 관세를 선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관측으로 달러 강세가 주춤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1월 2일 109.29까지 치솟았던 달러 인덱스는 1월 6일 108.25까지 내려왔다.
외환시장 전문가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내 주식을 3조5000억원가량 순매도했던 외국인이 새해 들어 순매수 기조로 돌아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1월 2일 이후 9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국내 주식을 1조6000억원 가량 순매수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등을 둘러싼 갈등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탄핵 등 헌법적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외국인 투자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로 분석된다. 비상계엄 쇼크와 대통령 탄핵 등 정치·사회 혼란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전이돼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끊을 단서가 여기에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1│ 헌법적 질서, 정부 기능 정상 작동해야
“미국은 한국의 친구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은 물론,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의 리더십을 완전히 신뢰한다.”
1월 6일 방한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 장관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접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에 앞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1월 3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최 권한대행이 국정 안정에 집중하는 점에 주목하고 평가한다”면서 “우리는 한국 정부가 한국 헌법에 명시된 절차를 준수하면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헌법 절차 속에서 조정되는 게 한국의 대외 신인도 유지에 핵심 과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2024년 12월 27일 원·달러 환율이 1486원으로 치솟은 것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당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국회 탄핵이 추진된 영향이 컸다. 1472.5원으로 2024년 거래를 마감한 원·달러 환율은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해 8인 체제로 대통령 탄핵 심판에 필요한 정족수(7인 이상)를 충족한 이후 1460원대로 하향되는 추세를 보였다. 대통령 탄핵 절차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완화될 계기를 만든 것은 추가적인 환율상승을 막을 수 있게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식시장에서 2400 아래에서 2025년 거래를 시작한 코스피 지수가 1월 9일 2521.90까지 상승, 마감한 것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만, 법원이 발부한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경호처가 막고 있는 상황이 장기화하는 것은 대외 신인도를 위협하는 불안 요인이 된다.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정치발(發) 대외 신인도 하락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있다.
2│원화 가치 지키겠다는 의지 표명해야
한국 원화 가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도 주요국 중 가장 약한 축에 속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0년 기준(100) 한국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지수는 93.1로, 조사 대상 64개국 중 62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하위인 64위는 엔저 정책을 고수 중인 일본 엔화(70.65)였다. 이 지수가 100 이하라는 것은 통화 가치가 2020년보다 떨어진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겹친 정치적 격변은 원·달러 환율을 1500원 부근까지 밀어 올려, 한국 원화를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브라질 헤알화 다음으로 약체 통화 반열에 오르게 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이하 한은)과 기획재정부 등 외환 당국이 원화가치 하락을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크게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트럼프 미국 대선 승리 이후 달러 강세 등 ‘트럼프 트레이드’ 여파로 원화 약세가 초래됐다는 인식을 나타낸 것이다. 최 당시 경제부총리가 원·달러 환율 1400원이 위협받던 2024년 10월 22일 뉴욕 특파원 간담회에서 ‘1400원대 환율을 뉴노멀로 봐야 하느냐’는 질의에 “현재 1400원은 과거 1400원과 다르게 봐야 한다”고 답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미온적 대응은 ‘원화 약세→외국인 주식·채권 매도→원화 약세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일으켰다고 외환시장 참여자가 전했다.
이런 이유로 외환시장에서는 1월 2일 한은이 국민연금 ‘환 헤지(hedge·위험회피)’ 물량출회를 언급하며 환율 상승 제어 의지를 강조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해외 자산의 최대 10%에 적용되는 ‘전략적 환 헤지’가 발동되면 500억달러가량이 시장에 공급되면서, 원·달러 환율을 30~40원가량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시중은행 외환달러는 “외환 당국이 경제 펀더멘털과 달러 변동성에 비해 과도한 원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투기적 거래에 의한 과매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3│ 추경 편성으로 경제 정상화 도모해야
원화 가치의 과도한 하락을 막고, 대외 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갈수록 악화하는 비관적인 경기 전망을 되돌릴 정책 대응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실제로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의 2025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최근 1.8%에서 1.7%로 낮아졌다. JP모건은 전망치를 1.7%에서 1.3%로 0.4%포인트나 낮췄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항공기 참사 등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통령 탄핵 정국의 리더십 공백으로 경기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정치적합의를 통해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편성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회복을 위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취지다. 박상현 IM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정치권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대규모 추경 편성 등으로 경기 침체를 막는 게 대외 신인도 유지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은과 정부가 전망한 1.8~1.9%의 성장률 전망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40조원 안팎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게 경제 전문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제 한은이 나설 때”… 사상 첫 3회 연속 금리 인하 가능성
12·3 비상계엄 쇼크와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 여파로 소비 심리가 악화하는 등 내수 경기가 얼어붙는 가운데, 1월 16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당장 추경 편성 등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은이 사상 첫 3회 연속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을 위한 응급 처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24년 10, 11월 2회 연속 금리를 낮춘 한은이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금리 인하를 결정하면 기준금리는 2.75%로 내려가 2년여 만에 2%대로 진입하게 된다.
미국 블룸버그는 1월 6일 ‘중앙은행이 한국을 운영할 수도 있다’는 칼럼에서 “대통령과 그의 직무대행이 탄핵되고, 경제는 불안정하며, 국가가 애도 중인 지금, 이제 한은이 나설 때”라면서 1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강조했다.
블룸버그의 대니얼 모스 칼럼니스트는 “극단적인 상황이나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중앙은행은 종종 ‘방 안의 어른’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이창용 한은 총재가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그의 직무대행이 탄핵되고, 한국은 역사상 최악의 항공기 참사로 희생자를 애도하는 중”이라고 한 뒤,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원화도 타격을 입었지만 지금 실제로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창용 총재는 스스로 그런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그가 그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