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향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정말로 ‘미지근한 20년대(The tepid Twenties·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기를 누렸던 세계경제가 거품이 꺼진 후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제 대공황)’로 향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실망스러운 10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24년 4월 11일(이하 현지시각)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에서 열린 춘계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물가는 완전히 잡히지 않았고, 재정적 완충 장치도 소진됐다”라며 선진국과 중국에서 나타나는 높은 부채와 낮은 성장률로 인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약해진 성장 동력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낮은 세계 경제성장률이 장기적인 현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진단은 2025년 새해를 맞이한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3% 남짓으로 추정되는 2025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더욱 심각하다.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정부와 민간이 부채 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미국 등은 물가가 다시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노골화하는 보호무역주의는 관세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국가 간, 진영 간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전 세계 각국은 빨라지는 디지털과 그린 전환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나라별로 도전의 크기는 다르지만, 극도로 높아진 불확실성을 어떻게 제거하는가가 관건이다.

상호 신뢰 회복, 최우선 과제
주목해야 할 글로벌 이벤트를 중심으로 2025년을 미리 상상해 보자. 주요 국제경제포럼의 의제를 살펴보면, 상호 불신을 회복해 다가오는 도전을 공동의 과제로 인식, 해결해 나가자는 주문이 다수다. 2025년 1월 20일 열리는 다보스 포럼은 ‘지능형 시대를 위한 협력(Collaboration for the Intelligent Age)’이라는 슬로건 아래 신뢰 재구축, 경제성장, 인적 투자, 지구 살리기, 산업혁신이라는 다섯 개 분야에서 어떻게 민관 협력을 이뤄 나갈지를 논의한다. 3월 25일 시작하는 중국 보아오 포럼은 글로벌 사우스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신뢰 회복, 다자주의 회복, 포용적 발전을 위한 재세계화, 2030지속가능발전목표(SDG) 그리고 인공지능(AI)과 혁신 주도 성장이 주요 의제다. 이 밖에도 다양한 국제 포럼은 세계 지형 분절화 극복 방안, 지정학적 긴장 해소, AI 활용과 규제 조화, 힘의 재균형과 지정학적 불안정 해소, 소득 격차 해소 등에 관심이 있다. 2025년 세계적 차원의 문제 해결의 바탕은 국가 간, 지역 간, 국내 집단 간 신뢰 회복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글로벌 사우스, 웨스트, 중국·러시아 대립
해가 갈수록 더해가는 서방 선진국과 중국 및 러시아의 갈등과 대립, 점점 힘을 키워가는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은 2025년 국제 정세를 더욱 가변적이고 불확실하게 만들 것이다. 1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등장은 2025년 전 세계에 던져진 공통의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관세전쟁, 탄소 중립 후퇴 속에서 그린 전환의 주도권 잡기, AI 혁명에 따른 국가 간 승패가 더욱 가시화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6월에는 캐나다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다. 7년 전 캐나다가 주최한 G7 정상회의에서 갈등이 노골화된 기억이 있는 트럼프와 유럽은 이번에도 나토 분담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통상 문제 등 다양한 갈등 요소가 잠재해 있다. 다만 갈수록 커지는 중국과 러시아, 글로벌 사우스의 도전에 대해 공동 대응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트럼프가 여기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6월 중국에서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7월 브라질에서 열릴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플러스 정상회의는 일종의 반서방 협의체 성격을 갖고 있다. 다극 체제에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한 협력 방안, 가령 달러 패권에 대한 공동 대응을 추구하지만, 덩치가 큰 각국이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워 가시적인성과를 단기에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브릭스 플러스 회원국 목소리가 11월 남아공 G20(주요 20개국) 회의에서공명하고, 회원국의 영향력이 꾸준히 커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브라질에서 12월 초에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기후변화당사국회의(COP30)는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수립과 아울러 개도국으로의 기술이전과 보상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유럽 리더십 위기, 아시아·태평양 불확실성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식이 가장 중요한 지역 이슈가 되는 가운데 각국의 취약한 리더십이 정치 불안을 지속시킬 것이다. 당장 2월 23일로 다가오는 독일 총선에서는 우파 정권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2024년 주(州) 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극우 정당이 얼마나 약진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의회를 해산해 더 줄어든 의석을 받아 든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불안한 소수내각을 유지하고 있다. 1년이 지나는 2025년 7월쯤 또다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집권 1년도 되지 않은 영국 노동당 정부가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만큼 극우 정당의 공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2024년 말 새롭게 지도부를 구성한 유럽연합(EU)은 미국의 트럼프,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 다만 연초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솅겐에 가입했고, 7월부터 불가리아가 유로화를 도입함에 따라 유럽 통합이 꾸준히 진전되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4월부터 6개월 동안 ‘엑스포 2025’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다. 또 11월에는 우리나라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APEC 정상회의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026년 APEC을 주최하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의 참석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캐나다는 지난 9년간 집권했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올해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연초 사임을 발표해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게 됐다. 일본 이시바 시게루 내각은 당장 선거는 없지만 낮은 지지율과 싸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2025년 대통령 선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예상할 수 없는 충격에 대한 대비
지난 5년을 돌아보면 2020년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은 블랙스완 같은 현상이었다.
2023~2024년 이스라엘을 둘러 싼 중동전쟁과 시리아 정권 교체도 돌발 사건이었다. 2025년 세계는 기후 위기와 또 다른 전쟁 발발 가능성, 변종 조류독감에 의한 팬데믹 위험, 대규모 테러 등 다양한 위기에 노출돼 있다. 특히 분열된 세계, 고조되는 긴장과 갈등, 신뢰 상실은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한 복원력을 약하게 한다. 전 세계가 이런 위기와 위험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협력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