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1~1000년 혼란의 유럽, 피의 이주사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스웨덴 웁살라대와 스톡홀름대 연구진은 1월 1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고대 유럽인의 무덤에서 확보한 유전체 샘플을 분석해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1000년까지 유럽에서 나타난 다양한 이주의 역사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류사의 첫 밀레니엄 시기, 유럽은 혹독한 격변기를 겪었다. 이베리아반도부터 중부 유럽, 동쪽으론 메소포타미아와 북아프리카까지 광범위한 영토를 지배한 로마제국이 몰락하고 야만족과 이슬람의 침략이 이어졌다. 동유럽에선 동로마제국, 서유럽에는 크고 작은 봉건 왕국에 이어 신성로마제국이 들어섰다. 유럽 전역에서는 거대한 이주의 물결이 일어났다.
과학자는 DNA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가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조상이 같은 집단은 동일한 돌연변이 DNA를 물려받는다. 인간은 공유하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많을수록 혈연관계가 더 가깝다. 과학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에 걸쳐 나타나는 유전자 변화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원숭이와 다르게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아내기도 했다.하지만 1000년 미만의 짧은 기간에 DNA에 일어난 변화를 식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유럽처럼 조상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경우는 이주 경로를 추적하기가 더 어렵다. 사람의 유전체는 오랜 기간을 거쳐 완성된 30억 쌍의 방대한 염기서열로 구성된다. 새 정착지에 도착한 이주민이 원주민과 어울려 살면서 불과 몇 세대 만에 나타난 유전적 변화를 찾는 건 모래밭에 바늘 찾기와 같다. 연구진은 바늘만 그대로 두고 모래를 치우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트위그스태츠(Twigstats)라는 이 방법은 더 최근의 돌연변이를 살펴봄으로써 가까운 시기에 함께 살았던 사람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을 나타낸다.
연구진은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1000년까지 살았던 유럽인의 무덤에서 확보한 유전체 1556개를 살펴봤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기원후 300~800년), 로마제국의 멸망, 중세 초기의 ‘대이동’과 바이킹 시대로 나뉜다. 밀레니엄의 전반기 로마제국의 북쪽 국경에선 게르만족이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켰다. 연구진은 이 기간에 북부의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 남쪽으로 이주한 집단의 흔적을 발견했다. 게르만인 조상을 가진 유전자가 남부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영국 남부에서 발견됐다. 남부 유럽에서도 100%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이주자가 발견됐다.
첫 밀레니엄의 후반기가 되자 유럽으로 옮겨간 스칸디나비아반도 이주자 대부분 소멸했다. 이는 정복자가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과 어울려 섞였다는 점을 뜻한다. 기원후 800년쯤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중부 유럽인을 조상으로 둔 주민이 살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로마 통치 영국서 활동한 북유럽 검투사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활동하던 검투사의 기원도 밝혀졌다. 로마제국은 1세기쯤 지금의 영국 본토인 브리튼섬을 정복해 4세기까지 지배했다. 최근 잉글랜드 북부 요크에서는 1~4세기 시대 검투사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 시기 요크에서 활동한 로마 군인과 노예 검투사의 조상 중 25%가 스칸디나비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칸디나비아로 이주한 유럽인의 흔적도 발견했다. 발트해 연안의 욀란드섬에 묻힌 무덤의 주인이 중부 유럽에서 온 이주민의 후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바이킹이 유럽을 침탈하기 전 스칸디나비아에 이미 중부 유럽 출신의 이주자가 살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역사가는 스칸디나비아의 불안정한 환경이 당시 이런 대규모 이동을 촉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럽인이 당시 스칸디나비아로 이주한 실질적 이유를 밝히려면 더 많은 고고학 자료와 유전자분석 자료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도 스웨덴인과 조상이 같은 바이킹 시대의 DNA가 발견됐다. 영국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해에서는 폭력 흔적과 함께 이들이 유전적으로 스칸디나비아와 연결돼 있다는 증거가 나왔다. 역사가는 무덤의 주인이 바이킹 약탈자였고 처형당했다고 보고 있다.
역사적 기록에 유전적 증거 추가
유럽은 기원후 1000년쯤 되자 침략과 전쟁이 끝나고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과학계는 이번 연구가 철기시대부터 후기 바이킹 시대까지 북부와 중부 유럽의 유전적 역사에 대해 다른 어느 연구보다 정교한 통찰력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연구의 1번 저자인 레오 스페이델 프랜시스크릭연구소 연구원은 “시간에 따른 인류의 이주와 인구 변화에 대한 분석은 지금까지 대체로 모호했다”며 “새로운 분석법이 역사 퍼즐에서 빠져있던 조각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폰투스 스코글런드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고대 유전체학 연구실 그룹 리더는 “새로운 분석 방법이 작은 규모의 역사를 볼 때 더 날카로운 렌즈를 제공한다”며 “고대의 유전체 기록을 늘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을 더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학계는 새 분석 방법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역사에 대한 강력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령 기원후 500년쯤 전후로 영국을 지배하던 주도 세력이 로마에서 앵글로·색슨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같은 시기 중부와 동부 유럽의 주도권이 슬라브족으로 바뀐 이유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역사가 간에도 이 시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과학자는 역사학자가 자신이 연구하는 세부적 사건을 뒷받침할 과학적 무기를 갖게 됐다고 평가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피터 헤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중세사 교수는 “기원후 1000년간 이뤄진 유럽에서의 이동이 유라시아 인구 구성을 바꾸고 유럽의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했다는 역사적 기록에도 불구하고 이동 궤적 같은 세부적인 해석에서는 항상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며 “새 분석법이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