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에서 모든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만선(滿船)’이다. 선주는 선주대로, 어부는 어부대로, 선구점 주인은 주인대로, 수협 조합장은 그대로 모두가 좋아한다. 만선이란 선박이 실을 수 있는 만큼 고기를 잡아서 실은 선박의 상태를 말한다. 어렸을 때 어판장에서 우리 배 대경호를 기다리던 삼촌이 집으로 고함을 치며 뛰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만선이다. 만선, 우리 배가 고기를 가득 잡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학동 할 것 없이 모두 뛰쳐나갔다. 오색 깃발을 펄럭이면서 대경호가 뱃전까지 물이 찰랑일 정도로 고기를 가득 싣고 입항했다. 어판장에 모인 사람 모두 손뼉을 치고 야단이 났다.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역력했다.
만선이면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뜻이다. 선주는 어획고에서 수입이 생기고, 선장과 선원은 봉급을 추가로 받아 간다. 수협은 판매한 어대금에서 일정 수수료를 받아 간다. 동네 아낙은 고기를 손질하는 대가로 수입을 얻는다. 중매인은 서울의 상인을 대신해 고기를 사서 서울로 올려보내고 수수료를 받는다. 모두가 행복하다.
이런 만선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수산업을 했던 우리 집은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좌초 사고로 대경호가 없어졌다. 이후 경북 울진 후포의 동림수산으로부터 어선을 한 척 빌렸다. 하지만 만선은 우리 가족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고기가 나지 않았다. ‘시꼬미(출어 준비)’라고 불리는 작업 준비를 한 뒤 배를 출항시켰지만, 항상 허탕을 치고 말았다. 이런 상태가 1년간 지속되자 우리 집은 빚만 늘었다. 만선의 꿈을 포기했다.
아버지는 그래도 만선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내가 선장으로 돈을 벌자, 정치망 어장에 한 구좌 들어가기를 원하셨다. 보통 3인이 정치망 어장을 하는 게 보통이다. 아버지는 좋은 몫을 찾아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그 큰돈을 내가 마련하지 못했다. 훗날 생활이 안정돼 한 구좌를 들어가시게 할 형편이 됐으나, 아버지는 그만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렇게 1970년대부터 바라던 만선의 꿈은 우리 집의 숙제로 남아있다.
성장해 도시로 올라온 나는 또 다른 만선을 꿈꾸게 됐다. 내가 속한 해운업과 해상법에서의 만선이다. 해운업에서 만선이란 개개의 선박이 화물을 실을 수 있는 만큼 싣는 것을 말한다. 선박은 무게와 공간, 두 가지 측면에서 만선이 있다. 무거운 화물은 공간은 남아도 흘수선(선박이 화물을 최대로 실을 수 있는 무게를 표시한 선)이 이미 최고치에 이른다. 가벼운 화물은 공간을 다 채워도 흘수가 남아있다. 여기서 두 가지 모두를 채운 상태를 ‘풀앤드다운(Full & Down)’이라고 한다. 매 선박이 100% 화물을 채우고 출항하면 운임을 최고로 받아서 좋다. 만약 운항하는 10척의 모든 선박이 이런 상태라면 회사 자체가 만선을 하는 셈이다. 해상법 교수가 된 나에게 만선이란 학문적인 성취다. 강의를 잘하고 훌륭한 논문과 칼럼을 많이 작성해 학계와 산업계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어선과 상선에서의 만선은 선주에게 분명 좋지만, 차이도 있다. 어선의 만선은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높은 어획고에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가격은 어떨까. 만선으로 너무 많은 고기를 한꺼번에 가져오면 고깃값이 떨어진다. 어판장에서 부쳐지는 경매 가격이 내려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양이 많으니까, 결과적으로 선주에겐 이익이다. 그렇다면 상선에서의 만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물이라는 물량이 많다는 말이다. 선박을 찾는 수요가 많으므로 운임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화주는 높은 운임을 지급해야 한다. 어선의 만선은 소비자에게 낮은 가격을 의미하지만, 상선에서의 만선은 소비자에게 높은 운임을 지급해야 함을 뜻한다.
만선에 욕심을 내면 어떻게 될까. 고기가 그물에 너무 많이 들어갔는데도 자꾸만 배에다 실으면 어떻게 되는가. 선박은 중력과 부력이 일치하는 지점까지만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다. 너무 많은 고기를 실으면 배는 침몰한다. 흘수선이 그 지침이다. 얼마까지만 실으라는 표시다. 거기서 멈춰야 한다. 만선의 미학(美學)이다. 학자로서 내가 잠을 자지 않고 좋은 논문을 많이 발표한다고 해도 건강이 나빠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선박에서의 만선은 종사자에게 멈춤과 만족의 미학을 말해준다.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오늘도 우리는 만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