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뉴스1
2024년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뉴스1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2024년 12월 29일,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국제공항(무안공항)에 착륙하던 중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추정되는 이유로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자 동체착륙을 시도했으나,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localizer·방위각 시설)가 설치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둔덕에 충돌했다.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희생됐다. 대한민국 국적기가 우리 영토에서 추락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19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이후 31년 만이다. 해당 사건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확인된 목포공항이 폐항됐고, 대체 공항으로 새롭게 건설된 곳이 무안공항임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얄궂고 안타까운 일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파악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블랙박스로 통칭되는 비행 기록 장치(FDR)와 음성 기록 장치(CVR)를 모두 확보했으나, 사고의 여파로 일부 훼손된 것이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분석에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식, 즉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로 보내서 분석하기로 결정됐다. 이러한 이유로 현시점에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그럼에도 몇 가지 유력한 원인은 추정할 수 있다. 우선 기체 결함 가능성이다. 사고 여객기는 사고 직전 48시간 동안 13회 운항을 했고, 운항 사이 공항 체류 시간도 평균 1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었다. 항공기는 이착륙 때마다 기체를 점검하는데 일정이 촉박하면 정비 시간 역시 짧아질 여지가 크다. 또한 저가 항공인 제주항공의 MRO(유지·보수·정비) 역량이 대형 항공사(FSC)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정비가 부실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 5년간 항공안전법 위반으로 납부한 과징금이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많고, 여객기의 기령 역시 가장 높다. 

제주항공에 제기되는 의혹만큼이나 무안공항의 문제 역시 만만치 않게 제기되는 실정이다. 우선 무안공항의 입지다. 무안공항은 과거부터 철새 도래지로 유명했던 곳에 건설됐다. 제주항공 2216편 기체에 문제가 발생한 최초 이유가 조류 충돌로 추정되는 만큼, 왜 철새 도래지에 공항을 지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전국 14개 공항 중 조류 충돌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이 무안공항이다. 철새 도래지에 지어진 만큼 조류 충돌의 가능성은 상수이며, 따라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필수다. 사고 당일, 조류퇴치반은 한 명만 근무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크게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은 기체가 충돌한 둔덕이다. 언론에 공개된 당시 영상을 보면 동체착륙까지는 무난하게 이뤄졌으나, 마지막 시점 커다란 시설물에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이 있었고 기체가 완파됐다. 그 직전 시점까지 승무원과 승객은 모두 무사했을 거란 추정이 가능하다. 기체가 충동한 시설물은 착륙 시 방위각을 잡아주는 로컬라이저의 하부 구조로, 철근 콘크리트로 타설한 2~3m 남짓한 높이의 구조물로 알려졌다.

만약 둔덕이 없었더라면, 혹은 다수 언론이 지적하는 것처럼 잘 부서지는 재질로 만들어진 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국내외의 다양한 전문가가 해당 시설물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고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지적한다. 경찰은 안전기준 충족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 국토부를 향한 수사를 시작했다. 해당 시설을 설치한 주체가 국토부인 만큼 이에 대한 논란은 사고 결과가 완전히 밝혀지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큰 사회적 참사 이후엔 으레 그렇듯, 애도의 시간이 조금 흐르자 책임자를 색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끔찍한 사고인 만큼 누군가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에 맞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 게 옳다. 

고인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향후 비슷한 참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너무 잦다고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대형 참사 발생 빈도를 줄이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빨리빨리’의 민족이다. 과거 다른 나라였다면 몇 년이 걸려도 못 할 난공사를 우리나라 기업이 획기적으로 공기를 단축시켜 마무리했다든가, 비상식적인 납기를 노동자가 합심해 밤을 새워가며 맞췄다든가 하는 사례는 너무 많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이 한목소리로 하는 불평은 느리다 못 해 답답하기까지 한 사회 서비스 속도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우리나라처럼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빨리빨리는 우리 사회가 내심 자랑스럽게 여기는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을 갈아 넣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면 당연히 놓치는 것이 생긴다. 큰 사고가 항상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에 보통 안전 관련 사항이 가장 먼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와우아파트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회적 참사의 기저에는 속도와 효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국가 위상에 걸맞지 않은 대형 참사가 툭하면 터지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만 빨리빨리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미덕이었던 것도 아니다. 이미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산업화 사회에 진입한 서구의 선진국도 경험한 일이다. 영국 등 서구 선진국 역시 산업화 과정에서 사람을 갈아 넣으며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부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비용도 있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참사가 연달아 터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안전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가 우리 관점에서는 느려터진 일 처리를 하는 건, 수없이 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속도 대신 안전을 택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보는 게 옳다.

사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사회에서 안전을 강조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시기를 지났다. 현재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를 달성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여전히 모자라는 점이 있다. 바로 안전이다. 통상적인 국가의 산업화 과정에 비춰보면, 우리는 이제 그 마지막 단계인 안전한 사회 달성만이 남은 셈이다.

핵심은 돈이다. 안전은 비싸다. 서구 선진국의 느려터진 일 처리는 높은 사회적 비용과 동치다. 우리라면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사람이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급부로 그들은 안전을 얻었다. 그럼 남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 사회는 안전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답은 ‘예’다. 그럼 할 것은 명확하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