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세를 비롯한 매물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2024년 8월 11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세를 비롯한 매물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전세자금대출’은 비록 선의로 포장됐을지 몰라도, 그 실체는 전세가 폭등과 서민 부담 확대, 가계 부채 폭증, 금융 시스템 잠재 부실, 장기적인 시장 왜곡의 근원이었다. 

부동산 시장의 전개 양상을 살펴볼 때 흔히들 ‘경기 사이클’이라는 거시경제적 흐름에 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의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면, 한국 부동산 시장의 부양 동력이 결코 단순한 경기 변동이나 시장 균형 논리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 부동산 시장을 수년간 견인해 왔던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은 다름 아닌 전세자금대출이라는 특정 제도적 장치였다. ‘서민 주거 안정’ 이라는 명분이 강조된 전세자금대출은 시장가격 형성 논리를 왜곡하고, 전세 제도를 빌미로 과도한 부채 축적과 부동산 버블 형성을 가능케 했으며, 그 결과 서민의 자본 형성 기회를 박탈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에 부실 부담을 전가하는 악순환을 일으켰다. 현재 전세자금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현상은 그간의 ‘인위적 부양’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부동산 거품 지탱한 전세자금대출

전세 제도 자체는 한국 특유의 주거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해 온 일종의 사적 금융 계약 형태다. 전세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주택을 빌려주되, 임차인은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지 않는 대신, 임대인은 그 보증금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전세를 통해 임대인은 세금 부담이나 표면적 부채 규모를 일정 부분 감출 수 있고, 임차인 입장에서는 월 단위로 지출하는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또한 전세 보증금은 임대인에게 일종의 사금융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전세 제도가 고유한 한국 부동산 시장 메커니즘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아 온 이유는 이러한 상호 이해관계의 균형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제도의 개입은 이러한 균형을 무너뜨렸다. 전세자금대출은 기본적으로 임차인에게 담보 없이 거액의 대출을 제공함으로써, 원래라면 임차인이 보유한 자본력 범위 내에서 전세를 구해야 할 시장 논리를 일시에 허물었다.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임차인은 자신의 실질적 자산 축적 정도와 무관하게 높은 전세가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전세가가 상승 동력이 됐다. 이러한 가격 상승은 전세 수요자가 대출을 통해 지불 능력을 확대할수록 더욱 가속화됐고, 결국 전세가 상승은 매매가 상승까지 끌어내는 악순환을 야기했다. 이런 식으로 전세자금대출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실물경제의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전세자금대출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에 따른 완만한 주택 가격 상승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실질소득 증가, 금리 수준, 주택 공급량 등 다양한 요소가 장기적으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전세가 또한 완만하게 오르고, 그에 따라 임차인의 부담도 크게 폭등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시장 균형의 결과로, 서민의 주거 안정을 저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점진적 시장 변동 속에서 유연한 자본 형성 기회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세자금대출은 이러한 균형점을 훼손하고 버블 형성을 견인하는 치명적 역할을 했다.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인위적 부스터’가 없었다면 전세가는 훨씬 더 점진적으로 상승하며 시장 참여자에게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전세자금대출이 확대되면서 임차인은 자기자본 축적 없이 높은 전세 보증금을 부담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전세가 상승을 부추기며 다시 매매가격 상승으로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자산 형성 과정 없이 부채를 통해 주거를 유지하려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전세자금대출 축소로 부동산 연착륙 유도

더구나 전세자금대출은 서민의 자본 형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전세가 폭등을 유발한 탓에 서민은 점점 더 많은 부채를 부담하면서 전세를 유지하거나 옮겨 다녔다. 임차인은 늘어난 전세 보증금을 대출로 충당했기에, 결국 이자 부담만 증가했다. 겉보기에는 주거 사다리를 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기존 자본을 축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전세자금대출의 무분별한 확대는 금융권의 부실 문제를 야기할 잠재력이 컸다. 대출 담보는 전셋집 자체였지만, 이 전셋집 가격이 부풀려진 상태라면 금융기관이 보유한 담보의 실제 가치는 불확실해진다. 시중은행뿐 아니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적 보증기관도 전세자금대출의 위험을 함께 떠안았다. 전세자금대출이 늘어날수록 HUG의 보증 부담도 커졌고, 집값 하락이나 전세가 하락 시 이에 따른 보증금 반환 보증 이행 부담은 막대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금융 시스템과 공적 기금에 잠재적 부실을 내재시키며, 궁극적으로 그 부담은 국민 전체가 나누어 짊어지게 된다.

최근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강화하자마자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식어버린 현실은 이러한 인위적 부양의 존재를 명확히 입증한다. 만약 한국 부동산 가격이 단순히 경기 사이클에 따라, 또는 자연스러운 수요·공급 균형에 따라 움직였다면, 특정 제도의 규제 강화만으로 시장 전반이 얼어붙는 현상은 상대적으로 약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자금대출을 비롯한 정책적 장치가 그동안 시장을 과잉으로 떠받쳤기에, 그 기반이 약간만 흔들려도 전체 구조가 휘청이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시장이 얼마나 불안정한 기초 위에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전세자금대출이 끌어올린 거품은 언젠가는 꺼질 운명이며, 이를 무작정 터뜨리면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이 불가피하다. 급작스러운 전세자금대출 중단이나 전면 규제는 전세 수요자를 궁지로 몰아붙이고, 이를 통해 전세가 급락, 나아가 매매가격 하락을 유도할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시장 정상화 과정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미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높은 전세가에 의존하던 임대인도 큰 타격을 입는다. 전세가 하락으로 임차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보증금이 커지는 상황에서, 임대인은 주택담보대출 등을 일으켜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부채 구조 재편 과정은 시장 전체에 혼란을 야기하며, 결국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연착륙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전세자금대출을 전면 차단하면 부동산 시장은 순식간에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새로운 전세자금대출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고, 기존 대출에 대해서는 상환 및 축소를 유도하며, 전세가 대비 대출비율을 해마다 단계적으로 낮추어 나가는 식이다. 이를 통해 전세 수요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전세가를 완만하게 하향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시장을 이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일정한 부담이 발생하겠지만, 결국 혜택을 보는 것은 장기적으로 안정된 주택 시장이다. 전세자금대출로 인한 거품 형성과 부채 부담 확대가 축소되면, 전세가와 매매가격이 실물 경제 펀더멘털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재조정될 것이다. 이는 과도한 대출 부담에서 벗어난 임차인과 실질 가치에 부합하는 주택 가격하에 시장에 참여하는 임대인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유리한 방향이다. 임대인은 무리하게 조달한 전세 보증금 부담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적인 임대 수익 구조를 확립할 수 있고, 임차인은 과중한 부채 없이 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전세자금대출 규제 강화로 인한 전세가 하락이 관찰되는 상황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대출 축소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전세 시장의 수요·공급 균형점이 낮은 가격 수준에서 형성되면, 매매 시장의 가격 거품도 자연스럽게 거둬들일 수 있다. 이 과정은 물론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나, 단계적이고 일관된 정책 조합을 통해 시장의 자기 조정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