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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가 찾아왔다. 보편화한 상시 고용 그리고 불확실성과 속도 전쟁 속에서 조직 개편의 빈도도 더 늘어난다. 인사 명령도 전통적인 시기에 진행되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유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연말연시는 여전히 인사(HR)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바쁜 시기임은 분명하다. 대규모 조직 개편이 연말과 연초에 단행되고, 임원 인사를 비롯해 승진자 명령도 이 시기에 주로 하기 때문이다. 인사 명령 가운데서도 특히 승진은 대상자와 누락자는 물론, 주변인에게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요즘처럼 모든 정보가 촘촘히 연결된 세상에서는 클릭 한 번으로도 이름 있는 기업의 인사 명령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기업이 인사 명령을 하기 전 꼭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인사 명령은 조직 안팎에 어떤 의미와 메시지를 던질까. 

개인적으로 아는 언변이 유창하고, 농땡이를 치지 않으며, 본인의 전문성도 갖춘 매니저가 있었다. 단, 주변 사람과는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너는 이 매니저를 상당히 신뢰했다.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 외부에서 영입한 사례다. 오너는 영입 후 얼마 안 돼 이 사람을 임원으로 승진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승진 연한 부족과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 때문에 인사부를 비롯해 일부 참모는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건의했지만, 오너는 자기 뜻을 관철했다. 

그런데 임원 승진 후 이 사람은 잊을 만하면 물의를 일으켰다. 성희롱 사건에도 연루됐고, 독선적인 팀 운영과 정제되지 않은 언행 등으로 기존 구성원은 물론, 새로 영입한 사람도 회사를 금방 떠나게 했다. 팀은 무너졌고,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속사정까지 알 방법은 없지만, 임원도 만사가 쉽지 않았는지 결국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다수 구성원의 이해와 수용도 높여야

어떤 사람을 승진시켜야 하는 걸까. 우선 검증된 성과가 있어야 한다. 최소 3년 정도 상급 수준의 성과를 보여준 구성원을 승진 대상에 올려야 한다. 다음은 잠재력이다. 계속 뻗어가는 성장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다. 일반 구성원과 관리자, 관리자와 임원은 일을 하는 맥락이나 환경, 업무 범위, 특히 책임감과 압박감의 수준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일반 관리자로서 빈틈없이 일을 최고 수준으로 해도 임원 승진이 어려운 경우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직무의 크기다. 승진이란, 평균적으로 더 크고 복잡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자리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 기업이 처한 상황마다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계속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 성실하고 꾸준한 성과를 몇 년간 보여줬다고 해서 덥석 승진을 시키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 업무만큼은 ‘도가 터’서 잘한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승진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것이 직급별로 요구되는 ‘핵심 역량(core competencies)’의 보유 여부다. 핵심 역량이란 개인이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기술(skill-set; knowledge)을 갖춰야 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설명해 놓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검증된 성과, 잠재력, 직무 크기 등을 이런 ‘핵심 역량’ 관점에서 재점검해 보면 좋을 것이다.

임원 등 리더십 위치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이 자리에 임명되는 건 주로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승진하면서 동시에 리더십 위치에 임명되는 경우, 둘째 기존 임원 보직이 바뀌어 다른 임원직으로 이동하는 경우, 셋째 경영 환경 변화나 직무 크기의 확대 이후 승진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리더십 포지션 승진에서는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한 승진 인사에서 필요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리더십 역량을 중심으로 한 소통(커뮤니케이션)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이해관계자 조율 능력, 프로젝트를 이끄는 능력 등을 봐야 한다. 또 특정 직무 역량에 대한 통찰력과 전문성이 더 강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직의 대폭 개편으로 신사업개발팀이나 통합영업본부가 탄생하거나, 마케팅이나 영업 본부가 합쳐지는 경우, 승진 심사를 하기 위해 주목했던 꾸준한 성과 외에도 복잡한 변수를 모두 고려해 의사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챙겨야 할 사안이 더 있다. 핵심은 인사 명령 결과를 구성원과 소통하는 것이다. 다수 조직 구성원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인사 명령은 회사 경영진의 고유 권한으로,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목표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해도와 수용도를 최대한 높여줘야 한다. 노동조합이 있다면 사전 공감을 하는 것도 신경 써야 한다. 중요한 인사 명령은 배경과 지향점에 대한 스토리를 정리해 주는 것이 좋다. 그런 것만으로도 구성원의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다. 공공기관 명령서처럼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스토리 스타일을 보완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예를 들어 조직 개편의 성격이나 특징, 새로 임원에 오른 사람의 몇 가지 업적 포인트와 기대 사항, 격려 인사 등을 함께 얘기해 구성원의 인사 명령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최종 인사 결정을 내리기 전, 조율(cali-bration) 미팅 형태의 승진 심사위원회로 부서별 균형이나 특별히 예외적인 사항, 쟁점이 될 만한 건에 대한 재점검을 해봐도 좋다.외부 영입 임원이나 관리자는 기존 성과나 미래 잠재력을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어 직접 측정이 어려우니, 구조화된 역량 중심의 인터뷰나 평판 조회로 성과 및 잠재력을 판단하는 게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핵심 역량 평가에 대한 객관성과 근거 확보 차원에서 선진 기업이 고급 인력 선발이나 내부 승진 시 활용하는 어세스먼트 센터(assessment center) 운용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국내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도 이런 시스템을 예전보다 많이 시도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인사 명령이 던지는 메시지

승진과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 결정과 발표는 경영진 고유의 권한이어서 인사 이슈 중 외부 사람이 토를 달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다수에 의해 수용될 논리와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말이나 연초에 대규모 승진, 임원 인사, 조직 변경등의 굵직한 인사 명령이 발표될 때면 그 결과에 대해서 내부 구성원은 물론이고, 외부 미디어도 이런저런 논평을 내놓는 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모습도 아니다. 방향이 있고, 주제가 있는 인사 명령으로 잘 차별화한다면 조직 전체가 심기일전할 계기가 될 것이다. 

늘 회사 안팎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특정 기업 인사 명령과 관련된 기사에 나쁜 댓글을 달거나, 직장인 익명 게시판 등에 걸러지지 않은 비아냥거림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예스맨만이 약진한 모습’이라는 등의 가십 말이다. 누구나 만족하고 동의할 수 있는 완벽한 인사 명령의 실행은 요원하다. 

구성원의 불만과 비평을 지나치게 눈치 볼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기준을 재점검하고 개선할 필요는 있다. 메시지를 정리하고 관련 리더의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결국 이런 것은 구성원의 사기와 조직 몰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