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북한군은 전선에 내던져지듯 야지(野地)로 전개했다. 운이 좋은 부대는 러시아군 장갑차를 타고 개활지를 건너올 수 있었지만, 장갑차는 북한군을 바닥에 쏟아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되돌아갔다. 분대 단위로 뭉쳐서 이동하는 북한군은 우크라이나군 FPV(일인칭 시점) 드론에 좋은 표적이 됐다. 장난감 같은 작은 크기의 드론이 음식물 쓰레기에 달려드는 파리처럼 북한군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들은 달려드는 드론을 피하느라 달리고 몸을 돌리고 부산하다. 이 드론은 장난감이 아니라, 몸통에 1.5㎏짜리 폭약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갑작스럽게 방향을 돌리고 달려도 병사들은 드론을 따돌릴 수 없다. 탄환 인간으로 불리는 우사인 볼트의 100m 달리기 최고 기록이 44.7㎞/h다. 드론은 통상 최고 속도가 60㎞/h이기에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다가온 드론은 코앞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하면서 표적이 된 병사들은 죽거나 다친다.
일부 병사는 전우와 짝을 이뤄 자신의 소총으로 드론에 사격을 가하기도 한다. 운이 좋아 드론을 격추할 수도 있지만, 재빠른 드론은 지그재그로 기동하면서 총알을 피한다. 애초에 병사 한두 명의 사격으로 드론을 떨어뜨릴 만큼 화망이 구성되지도 않는다.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죽은 병사는 시체조차 멀쩡히 챙길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는 여전히 북한군 참전을 부인하고 있기에, 교전 초기 수습이 어려운 북한군 전사자 시신은 얼굴에 기름을 부어 태워서 국적을 모르도록 조치했다. 그래서 북한군 병사에게 남은 선택지는 허무하고도 비참한 죽음뿐이다.
전장에 내몰린 참전 북한군
북한군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참전은 2024년 10월 중순쯤에 전격적으로 알려졌다. 2024년 11월이 되자 북한군이 우크라이나로 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미 11월 6일부터 북한군이 쿠르스크 전선에서 교전을 치렀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이는 매우 소규모의 전투로 아직 북한군 본대가 도착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군은 우크라이나나 쿠르스크보다 더욱 북쪽의 러시아 영토에 배치돼 전선 투입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1월 중순이 되자 북한군의 170㎜ 주체포가 러시아 중부 지역에서 서쪽, 즉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되는 것이 확인되는 등 전선 투입이 임박했다는 증거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국방부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군 170㎜ 주체포와 240㎜ 방사포 200문, 화성-11가·나 단거리탄도미사일 100발이 러시아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24년 12월 첫째 주 드디어 북한군의 쿠르스크 전선 배치가 시작됐음이 알려졌다. 북한군은 러시아 공수군(VDV) 소속 공수 여단과 해군 보병(우리 해병대와 유사) 여단에 배속됐다고 한다. 러시아군은 일회용 제대, 특수 제대, 돌격 제대, 전열 제대의 제파 공격(梯波攻擊·어느 지역에 여러 개의 제대를 종으로 편성해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적의 방어 지대를 연속적으로 타격)으로 우크라이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제파 공격의 주력인 특수 제대는 총알받이 신세인 일회용 제대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소모율을 보이며, 주로 공수 여단과 해군 보병 여단의 경보병으로 구성된다. 즉 북한군은 제파 공격의 주력 부대로 배치됐다는 것이다.
상처만 있고 영광은 없는 싸움터
2024년 12월 초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선 투입이 알려졌지만, 그 후 약 열흘간 북한군 교전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북한군이 전선에 등장하지 않자 많은 관측이 오갔다. 소셜미디어(SNS)에 출처 모를 북한군 포로의 증언 영상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북한군 포로를 공개하거나 심문 결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기에 국제사회와 유럽은 북한군 참전에 반신반의했다. 일부 매체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참전 자체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만든 가짜 뉴스라면서 여전히 북한군 참전을 믿지 않았다.
2024년 12월 13일을 즈음해 드디어 북한군의 소식이 들려왔다. 친러 매체들은 일제히 북한군의 플료호보 지역의 점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어미 고양이(러시아군)가 새끼 고양이(북한군)에게 사냥법을 가르쳤다” 면서 러시아의 승리를 축하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 분위기는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12월 16일부터 3일간의 교전에서 북한군 사상자 200여 명을 기록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에 나섰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번에는 북한군에 대한 드론 공격 장면을 공개하면서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영상에서 북한군은 우크라이나의 FPV 드론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 채로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보병 행렬처럼 줄지어 이동했으며, 개활지 이동 시에 몰려서 이동하면서도 공격 준비 사격이나 연막차장을 활용조차 못했다. 물론 참전북한군은 어설픈 병력이 절대 아니다. 폭풍군단 소속 병력이라면, 일단 북한군 중에서도 정예 병력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소규모 매복 기습이나 게릴라전에 특화된 이들에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전혀 생소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비록 러시아군에서 장비를 지급받고 전투 투입 전에 적응 훈련을 받았겠지만, 애초에 전장에서 드론을 볼 기회가 거의 없던 북한군 병사에게 FPV 드론 공격은 ‘문화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해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은 2024년 12월 말까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에 노출됐다. 하루 수백 명의 사상자가 누적되면서 이후 약 2주간 전투에서 무려 3800여 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1만2000명이 모두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된 경우 약 네 개 여단이 투입된 셈인데, 12월 공세의 초기 단계임을 감안하면 실제 투입된 병력은 두 개 여단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6000여 명의 병력 가운데 3800여 명이 사상했다면 2주 만에 병력의 63%가 소모된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군 두 개 여단이 통째로 갈려나간 셈이다.
2025년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북한군
병력이 소모되면 필연적으로 보충해야 한다. 북한이 1만2000여 명을 파병했다고 하지만 벌써 3분의 1이 소모됐기에 그만큼 병력을 보충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파병을 결정한 순간 북한의 추가 파병은 예정된 일이다. 일각에서는 북한군이 10만 명까지도 파병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북한군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같은 재래식 전투에 투입돼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전력은 오직 경보병뿐이다.
실제 북한의 남침 시 선봉에 설 병력이 바로 이들 경보병으로, 그 수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서 북한 특수부대가 20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 경보병 전체를 뜻한다. 이 중에서도 한국 기준의 특수부대에 해당하는 것은 극소수다. 북한 특수작전군 소속의 폭풍군단 약 4만여 명의 병력도 결국은 대부분 정예 경보병이고, 서구 기준의 특수부대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이들 20만 명은 남침의 선봉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정예 보병 전력이다. 북한은 이들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10만 명까지 파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종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으로 언제라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종료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러시아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종전 직전까지 더 많은 병력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북한에 대러 무기 수출 기회, 참전을 통한 소중한 실전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참전 북한군이 입은 궤멸적인 피해는 전쟁의 교훈이 돼 북한군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다. 우리 군의 베트남 참전 용사가 현재 첨단 강군의 국군을 건설했듯이, 북한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드론 전투를 몸소 느끼며 미래형 드론 강군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고개를 돌려선 안 된다. 국제 질서와 인륜을 저버린 북한군의 패배를 위해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