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관세와 무역이 다음 임기 초반의 주요 목표라는 트럼프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025년 경제와 자본시장 모두에서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흥미로운 거래 기회도 있겠지만, 순탄한 길로만 갈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케이트 무어 블랙록 테마 전략 책임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 1월 20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두 번째 취임 선서를 했다. 이를 보는 전 세계 경제계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2017~2020)에 이어 다시 한 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무역을 비롯한 각종 제재의 칼날을 휘두를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글로벌 투자자가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할 2025년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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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60% 이상 관세 폭탄, 여파는
트럼프의 공약 중 전 세계를 뒤흔들 파급력이 있는 정책은 단연 관세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 관세를 매기고, 중국산 수입품엔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재집권이 확정된 이후엔 취임과 동시에 캐나다·멕시코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는 기존 관세율에 10%를 추가하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두 번째 무역 전쟁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먼저 전 세계 물가가 크게 출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전 세계 수출에서 2023년 기준 14%를 차지하는 최대 무역국이다. 세계 공급망을 꽉 쥐고 있는 중국을 건드리는 만큼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수밖에 없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현재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 제품의 62%는 평균 16%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는데, 트럼프의 관세 인상으로 미국 소비자의 연간 비용이 2600달러(약 383만원)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PIIE는 “현재로선 트럼프가 새 관세를 어떻게 시행할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새로운 관세가 미국에 큰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PIIE는 “중국에 대한 60% 관세는 국제 상품 시장에도 거대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2018년 첫 번째 미·중 무역 전쟁 당시 미국과 중국이 ‘눈에는 눈’ 식으로 치고받기를 하면서 증명된 바 있다. 애플은 당시 제품 제조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때 수백억달러를 들여 인도로 공급망을 분산했음에도 품질이 확보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테슬라가 상하이 공장을 지은 배경에도 미·중 무역 전쟁이 있다. 왕펑 중국 인민대 중국대외전략연구센터 부주임은 최근 중국석화(시노펙)가 발간한 뉴스레터를 통해 “2018년 (미·중) 분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심각한 혼란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향후 거래에 대한 기업의 기대도 약화시켰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선 이 같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세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CNN은 “많은 경제학자는 다른 국가가 (트럼프 관세에) 대응해 미국 수입품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해 해외에서도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나선 데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고민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최대 프라이빗뱅크인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의 윈씬 시장 전략 글로벌 책임자는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에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고조될 것이라는 우리의 전망을 고려하면, (연준은) 앞으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위안화 가치에 주식도 출렁
미국과 중국이 주고받는 관세 폭탄의 불똥은 외환시장도 피할 수 없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미국이 부과한 60% 관세를 완전히 상쇄하려면 위안화는 달러 대비 18% 낮아져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8.5위안(약 1700원)이 될 것”이라며 “이는 1990년대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보지 못한 수준”이라고 했다. 현재 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7위안(약 1400원)대 초반이다. 1달러(약 1473원)를 사는 데 필요한 위안화가 7위안가량에서 8.5위안까지 늘어나면 그만큼 위안화 가치가 낮아져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는 효과가 난다. 달러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관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금리 인하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 무역 전쟁에 따라 중국 등의 경제는 침체하고 미국 경제만 순항하는 것과 함께 ‘킹달러’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그야말로 통화 전쟁이다.
트럼프 첫 번째 임기 때도 통화 부문 혼란이 극심했다. 미국의 관세 공격에 중국은 위안화가 달러 대비 약 10% 약세를 보이는 것을 용인했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1994년 이후 25년 만인 2019년 8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환율 조작국에 시정을 요구하다 1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미국 기업 투자 제한 등 제재에 나설 수 있다. 이후 5개월, 미국이 중국과 무역 합의를 이루면서 환율 조작국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환율이 요동치는 동안 중국의 많은 기업은 달러 표시 채권에 대한 부담이 커질까 떨어야 했고, 중국 제품과 경쟁하는 한국과 일본 등 제조업 국가도 피해를 봤다. 올해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중국은 관세 인상에 대비해 2025년 위안화 약세 허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식시장도 안심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 심화, 환율 변동 등으로 주식 같은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처럼 타격이 큰 국가는 주식시장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극심할 수밖에 없다. 2018년 중국 본토 대표 지수인 상하이종합지수는 연간 24% 넘게 하락한 바 있다. 이러한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2024년 11월 한 달간 중국 자본시장에서 유출된 자금은 457억달러(약 67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미국의 경우 경기 호황이라 주식시장이 안정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투자국이 트럼프 1기 정부 때와 달리 미·중 무역 전쟁에 대비돼 있다는 점도 변수다.
美·中이 받는 타격, 고스란히 세계로
트럼프와 시진핑의 대결은 결국 세계경제를 주저앉힐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3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과 중국의 비중은 각각 26%, 18%로 1, 2위를 차지했다. 두 대국 간 무역 전쟁은 세계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인 상품 교역을 위축시킬 수 있다. 당장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 수출이 0.9%(달러 금액 기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고, UBS와 노무라는 0% 수출 성장률 전망치를 내놨다. 물가부터 금리, 환율, 주식까지 각 부문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도 세계 경제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경제성장률이 올해 3.0%, 2026년 2.9%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며 “미국의 강경한 무역정책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저해가 2026년에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중국은 2018년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전보다 경제 기초 체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돌아섰고, 지방정부는 극심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내수는 부진한 상황이다. 중국의 경제 부진은 전 세계의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판공실의 한원슈 부주임은 2024년 12월 ‘2024~2025년 중국 경제 연례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2024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약 5%로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공헌도가 30%에 육박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