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시장의 혹한기가 길어지며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성장의 돌파구를 못 찾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2022년부터 끊긴 것이 혹한기의 시작이었다. 한창 투자금이 넘쳐나던 2020년과 2021년에 투자를 많이 받은 스타트업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연달아 주식시장 상장에도 성공해 왔는데, 불과 5년도 안 된 기간에 벤처 투자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다.

사실상 현재 이뤄지는 벤처 투자를 살펴보면 매출이 나오거나 딥테크(심층 기술) 등 소수의 스타트업만이 투자금 유치에 성공하고 있는 형국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창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서는 투자 활성화가 최우선으로 해결돼야 한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 지원금을 운용하는 벤처캐피털이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해내야 하나, 안타까운 것은 벤처캐피털 역시도 이러한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투자할 돈이 없는 벤처캐피털도 많다. 보험사, 연기금, 정부 기관, 공제회, 은행, 캐피털 같은 출자사(LP)의 투자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고금리로 인해 회수 환경이 악화했고, 수익 분배도 턱없이 줄어 LP의 유동성까지 나빠졌다.

스타트업 관계자가 의아해하는 것은 통계를 보면 스타트업에 투자하라고 출자한 정부 돈이 체감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이다. 투자는 충분히 집행됐는데 투자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고 한다. 그 많은 공공기관의 돈은 어디로 갔을까.

문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이어지며 큰 곳에만 LP의 돈이 몰리고 있다. 안정적 운용을 원하다 보니대형 운용사는 조 단위의 블라인드 펀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중소형 운용사는 몇백억원대 펀드 조성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간혹 나오는 출자 사업도 대형 운용사 위주로 자금이 쏠리고 있는 실정이다. 펀드가 커지면 투자 건당 집행 금액도 커지기 때문에 투자 금액이 작은 스타트업의 투자는 검토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부 차원에서 일부 대형 운용사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투자 활동이 활발해지도록 루키리그(신생 출자사)의 경쟁 활성화 방안 등 세심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LP의 구조적 문제만 탓할 수도 없다. 중소형 운용사도 이러한 변하는 투자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달라진 LP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펀드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서 현실을 타개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운용사가 펀드레이징(자금 모집)이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해외에서 몇조원을 운용하는 유수의 큰 운용사도 제 살 깎아 먹기 식으로 자금을 모집하며 펀드를 운용해 오고 있다.

트럼프 출범·정책 예산 확대는 희소식

그렇다면 투자시장은 언제부터 회복세가 나타날 수 있을까. 스타트업 투자에 다시 훈풍이 불지를 예측하려면 이를 둘러싼 투자시장을 좀 더 거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내외 투자 환경이 급변했기에 큰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리 인하가 본격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관투자자는 대체 투자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우선 금리 인하로 인해 대체 투자에서 비상장 투자는 다시 비중이 커질 수 있다. 2023년부터 시작된 고금리 시기에 대체 투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성과가 부진했으나 유일하게 수익률이 좋았던 곳이 있다면 ‘사모 대출’일 것이다. 그러나 2024년 3분기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이제 대출만으로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얻기 어려워질 것이기에 LP 자금도 그 방향성이 예전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물론 고금리 후유증으로 중소기업, 부동산 및 인프라에서 대거 대출 만기가 도래하며 향후 3년간 거대한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 수요가 대기하고 있기에 대출 시장은 위축되기보다는 투자 전략이 다변화하는 쪽으로 변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금리 인하 효과로 사모펀드 시장이 회복한다면 스타트업 투자도 곧 훈풍이 불길 기대할 수 있다. 스타트업 투자가 다시 활기를 찾으려면 정부 차원에서의 정책 예산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민간 투자가 재개되는 것이 더 주효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책 예산도 늘어나는 조짐이 보인다. 올해 중소벤처기업부는 2024년보다 3000억원 정도 늘어난 15조원을 투자 예산으로 할당했다. 이뿐만 아니라 연초 모태펀드 출자 목표 금액을 1조원으로 발표하는 등 그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와 펀드 출자 사이에 약 1년에서 1년 6개월까지의 래깅(시차) 현상이 있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아마 그 시점은 올해부터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장 큰 변곡점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어떤 정책이 나올 것인가다. 미국 인공지능(AI) 시장에 대대적으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미국 증시는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미 주가가 오른 주식의 밸류에이션 거품이 꺼질 것만을 우려하기보다는 좀 더 누려야 하는 이유다.

대형 인프라에 대한 투자시장도 다시 주목받을 것이다. 금리 인하로 인해 자본 조달 비용이 하락하고 인프라 투자시장에서 역대 가장 큰 규모의 드라이파우더가 쌓인 것까지 맞물려서 인기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최근의 주가 추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디지털 인프라 투자는 장기적인 인기를 누릴 것이다.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다만 투자자가 투자 기회를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인기가 식으며 이와 관련된 인프라 투자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정부하에서 신재생에너지 인기는 전통 에너지와 도시 개발 인프라 투자 인기에 비해 다소 식을 수 있다. 그러나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이와 관련된 디지털 인프라도 급속한 확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투자 추이는 스타트업 시장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딥테크 스타트업이 전체 벤처 투자 회복세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항공·우주 등의 딥테크 관련 스타트업이 작년에 이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도 있다. 올해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을 살펴봐도 5조원 넘는 예산이 딥테크 투자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주요 연기금, 대체 투자 비중 목표치 올렸다

비상장 투자를 포함한 대체 투자는 사모 시장 중심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일 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의 포트폴리오 다양화 수요까지 충족해서 엄청난 자금이 몰려있던 시장이다. 최근 3년간 대체 투자시장은 고금리 영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기존에 고금리 영향으로 냉각되기 시작했던 대체 투자시장이 이제 다시 활기를 띨 수 있다. 오히려 더 매력이 강해져서 돌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고금리를 거치며 대체 투자시장의 자산과 전략, 투자자는 더욱 다양해지고 고도화됐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연기금, 국부 펀드, 재단 등 장기 투자 목적 자금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다시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주요 연기금은 대체 투자 비중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다고 한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헤지(위험 회피)할 수 있는 인프라 자산은 이미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비상장 투자 분야 기업은 밸류에이션이 크게 하락하며 몸값이 낮아졌기에 신규 투자 대상으로 다시 볼만해졌다. 스타트업이 몸값을 낮추며 어렵게 투자를 받아왔던 것처럼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운용사도 급격한 침체기를 거친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2024년 하반기부터 LP가 다시 돈을 풀고 있다. 글로벌 대형 펀드도 2022년을 고점으로 감소해 왔던 모집 금액이 최근 반등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분위기가 예상된다. 혹한기도 이제 끝이 보인다.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