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아랍 커피하우스’, 1912~1913. /사진 위키피디아
앙리 마티스, ‘아랍 커피하우스’, 1912~1913. /사진 위키피디아

동양에서 금붕어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동물로, 다양한 문화적,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중국의 춘절(春節·우리의 설날), 결혼식 같은 경사스러운 행사에는 금붕어를 묘사한 그림이나 장식품이 자주 등장한다. 중국어로 금붕어를 뜻하는 찐위(金魚)는 황금을 뜻하는 ‘금(金)’이라는 글자 때문에 부(富)와 재물을 상징한다. 금붕어의 화려하고 밝은색은 좋은 기운을 주는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그리고 비교적 긴 수명은 장수와 건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새해 인사말로 사용하는 ‘연년유여(年年有餘)’는 ‘매년 풍족함이 있다’는 뜻으로, 한 해 한 해가 지나도 항상 여유롭고 풍족한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여기서 ‘여(餘)’는 중국어 발음이 ‘위’ 다. ‘물고기(魚)’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중국에서 금붕어는 풍요와 잉여를 상징한다. 이러한 상서롭고 좋은 기운을 가진 금붕어에 심취한 서양의 화가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다.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마티스는 왜 동양의 물고기인 금붕어에 심취했을까.

평온과 사색의 ‘아랍 커피하우스’

마티스가 금붕어에 심취한 계기는 그가 모로코의 ‘탕헤르’를 여행한 것과 연관되어 있다. 1911~12년 무렵 그는 모로코에서 사람들이 금붕어를 어항에 키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당시 모로코에서는 금붕어를 단순히 애완동물로 키우는 것 이상으로, 유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휴식을 취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마티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마티스도 금붕어를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평온과 명상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곳의 풍경, 빛, 색채, 일상의 정취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당시 모로코 사람의 금붕어 사랑과 일상의 휴식 모습을 인상적인 작품으로 묘사한 작품이 ‘아랍 커피하우스(Arab Coffee-house·1912~1913)’다. 이 작품에는 그의 예술적 실험과 동양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한다. 그림은 모로코의 일상적인 장면을 서구적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그가 추구한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탐구하고 있다.

모로코의 커피하우스는 남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휴식을 취하는 중요한 사회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마티스는 더 나아가 이 공간을 단순히 차를 마시는 사회적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평온과 사색을 느끼는공간으로 인식했다. 작품은 커피하우스 내부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배치된 인물은 여유롭게 앉아 있다. 공간은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화된 형태와 평면적인 구도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장면의 본질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경험한 강렬한 빛과 색채를 작품에 반영했다. 생생한 색감, 특히 밝은 흰색과 대조되는 옅은 녹색의 색조는 공간의 깊이와 분위기를 강화한다. 등장인물을 황토색으로 표현해 감각적인 조화를 이뤘다.

작품 속 인물들은 남자이며, 전통적인 아랍 복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커피와 음악을 들으며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커피하우스의 평온한 분위기와 사색의 순간을 강조하며, 인물의 세부 묘사보다는 색상과 자세를 통해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려 했다. 또한 사회적·입체적 공간인 커피하우스를 모로코의 타일 문양, 건축적 형태, 단순화된 공간 표현을 통해 평면적인 모습으로 부각했다. 모로코의 시각적 언어를 마티스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풍경 묘사 이상으로 그의 예술적 실험과 동서양 문화적 교류의 산물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장면을 자신의 회화 작품에 환입시켜 평온을 찾으려는 그의 예술적 철학을 드러낸다.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야수파의 강렬한 보색을 표현한 대표작 ‘금붕어’

20세기 초 마티스는 인상파의 사실적인 표현 방식에서 나아가, 더욱 대조적인 색상과 강렬한 회화적 특성을 강조한 야수파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마티스의 ‘금붕어(Goldfish·1912)’는 그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에서 마티스가 만들어 내는 공간은 어항에 있는 네 마리의 금붕어를 중심으로 긴장감 있는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금붕어는 두 가지 긴장된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면에서 금붕어는 누가 보더라도 즉시 금붕어라고 인식될 수 있도록 지느러미, 눈, 입 등 상세한 특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면 금붕어는 붉은빛의 색조로 짐작될 뿐이다. 그리고 투명한 어항 유리 표면을 통해 뒤편의 식물을 보면 배경의 ‘실제’ 식물에 비해 식물의 형태가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테이블 상판은 위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금붕어 어항과 화분이 테이블 위 현실에서 어떻게 남아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마티스는 자연 본래의 모습에 관심을 두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을 통해 독창적으로 공간을 재조립했다.

마티스의 금붕어에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서로 대비되는 보색의 사용이다. 어항을 중심으로 배경의 꽃과 식물을 미묘한 분홍색으로 중간에 놓고, 짙은 녹색과 옅은 녹색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중심 주제인 어항 속 금붕어를 강렬한 주황색으로 표현해 깊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대담한 보색 사용은 마티스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금붕어의 생생한 주황색은 배경의 녹색 및 분홍색의 경쾌한 색조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평면적이고 감정을 자극하는 추상적인 색상의 적용은 관람객에게 조화와 리듬감을 느끼게 만든다. 강렬한 보색을 이용해 사실적인 표현보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앙리 마티스, ‘금붕어’, 1912. /사진 위키피디아
앙리 마티스, ‘금붕어’, 1912. /사진 위키피디아

일상 속의 아름다움

마티스는 금붕어와 어항처럼 평범한 일상의 사물에서 예술적 가치를 발견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일상이 가진 단순함과 조화로움을 강조하고,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마티스가 1908년 발표한 ‘화가의 노트’에서 이러한 시각이 잘 드러난다. 그는 그림의 목표가 ‘균형의 예술, 순수함과 평온함의 예술, 골치 아프거나 우울한 주제가 없는 예술,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한 영향을 미치는 예술, 피로로부터 휴식을 제공하는 좋은 안락의자와 같은 것’이라고 적었다.

어항 속 물고기는 인간이 자연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욕망을 상징한다. 마티스는 금붕어를 통해 자연과 연결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자연이 주는 생명력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했다. 그가 그의 작업실에 금붕어 어항을 두고 작품에 도입한 것도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금붕어의 선명한 주황색은 작품의 중심에서 활력과 생동감을 전달한다. 이는 그가 추구한 강렬한 색채와 감정 표현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즉 금붕어는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기쁨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마티스가 금붕어를 통해 일상에서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내적인 평화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설날을 맞이하는 우리 일상에도 마음의 평화와 여유로움이 깃들길 기대해 본다.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