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 사진 삼성바이오로직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 사진 삼성바이오로직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월 13~16일(이하 현지시각)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헬스케어 투자 행사 제43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가 열렸다. 이번 콘퍼런스는 많은 기업이 위축된 제약·바이오 투자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쳤다. 

JP모건에 따르면, 이번 행사 발표 기업 수는 2024년 614곳에서 531곳으로 83곳이 줄었다. 금리 인상과 지리적·정치적 갈등으로, 고위험·고수익 구조의 바이오·헬스케어 업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데 따른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올해 JPM에서는 중소형 바이오 회사보다는 안정적인 대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며 “원래 올해 참가하려 했던 여러 바이오 회사가 비용 문제나 투자 기대 하락 등으로 참가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최대 의료보험회사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 대표가 총격으로 사망한 가운데 다른 의료보험회사가 발표를 철회한 것도 영향을 줬다. 미국 언론은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데 따른 불만을 범죄 동기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불만이 헬스케어 업계로 번졌고, 행사장 안팎으로 폭발물 탐지견과 전술 경찰 부대 등이 배치되기도 했다.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웨스틴 세인트 프랜시스 호텔 로비에 입장객이 붐비고 있다. / 사진 염현아 기자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웨스틴 세인트 프랜시스 호텔 로비에 입장객이 붐비고 있다. / 사진 염현아 기자

M&A·뉴코·기술 차별화가 새 돌파구

국내외 업계 관계자는 ‘인수합병(M&A)’과 스핀오프(spinoff·분사)·합작회사(JV) 등의 형태로 신약과 기술을 상용화하는 ‘뉴코(newCO·신설 법인)’ ‘기술 차별화’ 등 세 가 지가 새 돌파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행사 첫날 메인 발표 무대에 오른 스위스 로슈, 미국 존슨앤드존슨(J&J),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 리더는 올해 기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M&A를 강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JP모건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은행(Global Healthcare Investment Banking)의 벤 카펜터(Ben Carpenter) 공동 대표는 개막식에서 “M&A 시장을 억눌렀던 반독점 규제 당국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리더가 교체되면서 헬스케어 규제 완화는 물론 시장 활성화를 이끌 것”이라고 했다. 

뉴코도 주요 전략으로 떠올랐다. 특정 자산, 플랫폼 또는 기술을 중심으로 별도의 회사를 세워 유망한 약물·치료제·기술을 상용화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창업형 벤처캐피털(VC) 회사인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Flagship Pioneering)이 스핀오프해 설립· 인큐베이팅한 모더나가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도 이러한 형태를 검토 중이다.

한국바이오협회가 JPM 기간인 1월 14일 개최한 글로벌 IR 행사에서 헬스케어 투자자는 “모(母)회사는 불확실하거나 고위험 프로젝트를 뉴코로 분리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고, 뉴코를 통해 자산이나 기술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거나 협력하려는 제삼자의 관심을 끌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기술 차별화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이승규 부회장은 “지난 3~4년간은 항체-약물접합체(ADC),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등 비슷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군)이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다양한 기술이 발표됐다”며 “차별화된 기술로 여러 회사가 상호 협력하는 업계 분위기가 반영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유로파마와 조인트 벤처 설립 계획을 밝히고 있다. / 사진 SK바이오팜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유로파마와 조인트 벤처 설립 계획을 밝히고 있다. / 사진 SK바이오팜

K바이오, 'ADC' 시장 노린다

세계시장에 기업 경쟁력을 알리고, 사업 기회를 키우려는 한국 기업의 열기는 뜨거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JP모건이 27개 기업만 선정하는 메인 트랙 발표 무대에 올랐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올해 첫 위탁개발생산(CDMO) 수주에 사활을 걸었다.

이들은 모두 암세포만 공격하는 유도 미사일로 비유되는 ‘ADC’ 치료제 시장을 새 먹거리로 삼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4년 12월 ADC 공장을 완공해 올해 1분기부터 위탁개발생산 서비스에 돌입한다. 첫 세포주 개발부터 최종 의약품의 직전 단계인 GMP(우수 의약품 제조·품질 관리 기준) 완성까지 12개월 안에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강자인 셀트리온은 ADC, 다중 항체 등 신약 개발에 주력한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2028년까지 ADC 분야 9개, 다중 항체 분야 4개 등 총 13개 후보 물질에 대한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할 계획이다.

서정진(오른쪽) 셀트리온그룹 회장과 서진석 경영사업부 대표가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메인 트랙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 셀트리온
서정진(오른쪽) 셀트리온그룹 회장과 서진석 경영사업부 대표가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메인 트랙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 셀트리온

설립 3년 차인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수장을 교체하면서 연내 수주 달성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부사장이 참석해 제임스 박 신임 대표와 함께 직접 고객사 미팅도 챙겼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시러큐스 공장에 ADC 플랫폼을 적용해 수주 기회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국바이오협회 주최로 열린 ‘제6회 코리아 나이트’는 한국과 해외 투자·바이오 업계관계자 700여 명이 참석해, 행사 개최 이래 최다 인원이 다녀갔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물론, 최태원 SK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부사장)도 직접 찾아 글로벌 네트워크에 나섰다. 안드레 안도니안(Andre Andonian)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아시아·태평양(APAC) 의장도 참석했다.

현장에서 만난 서진석 셀트리온 경영사업부 대표이사는 “올해 JPM은 확실히 작년보다 크기가 많이 작아진 것을 체감하고 있는데, 코리아 나이트는 오히려 커져 신기하다” 며 “그만큼 글로벌 업계가 한국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도 “코리아 나이트가 이젠 글로벌 나이트가 된 것 같다”며 “참석자의 절반이 외국인인데, 한국 기업과 사업이나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염현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