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동네에 빈집이 많아. 빈집이 왜 많냐고? 젊은 사람은 일자리 찾아 도시로 가고 남아 있는 노인이 떠나면 집이 비는 거지.”
2024년 12월 23일 찾은 부산 영도구 청학동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만난 김명화(가명·78세) 할머니는 빈집이 있는 골목길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동네에 오래 거주했다는 김 할머니는 “이 골목길 끝에도 빈집이 있다”며 “이 동네에서 어렵지 않게 빈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할머니가 알려준 빈집 수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려웠다.
동네의 빈집 한 곳을 들르니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굵은 철사로 문고리를 동여매고 대문에 각목까지 덧대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뒀다. 담장 너머로는 주인이 없는 집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무성한 잡초가 눈에 띄었다. 성인 한 명이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을 지나 도착한 또 다른 빈집은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유리 조각이 가득한 대문 앞에는 색이 바랜 우편물이 잔뜩 꽂힌 녹슨 우편함이 있었다.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꽤 오랜 기간이 지난 듯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경고가 무색하게 담벼락 아래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7년째 영도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40대 신영희(가명)씨는 “집이 비게 된 곳마다 사정은 각기 다르겠지만 이 동네가 워낙 어르신이 많이 살아서 그런 것 같다”며 “청학동 쪽은 예전에는 가게가 좀 있었는데 한 2년 전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버티지 못한 점포가 문을 많이 닫으면서 관광객마저 끊겨 빈집을 개발하려던 것도 멈춘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 빈집 직격탄… 수도권도 안전지대 아냐
빈집 쇼크가 부산을 덮쳤다. 부산에 남아도는 빈집은 11만4245채(통계청 기준)다. 부산에 있는 주택 열 채 중 한 채가 빈집인 꼴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해운대구 등에도 빈집이 있지만, 워낙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다 보니 빈집이 많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서 “그러나 개발 수요가 크지 않은 원도심에서는 빈집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고 했다.
빈집은 비단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인구 소멸 속도가 빠른 지방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지만 서울 등 수도권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 빈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2023년 전국의 빈집은 153만4919채까지 늘어났다. 1년 이상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주택도 38만7326채에 달한다.
이 중 서울의 빈집 수는 10만7681채다. 인천(8만4414채), 경기(28만6140채)까지 합치면 수도권의 빈집은 47만8235채에 달한다. 1년 이상 빈집도 16.3%가 수도권 지역에 있다.
15년 뒤인 2040년부터는 빈집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한반도미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총가구 수가 하락하는 2040년을 전후로 실질 주택값이 하락하면서 빈집도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빈집은 2040년 239만 채, 2050년에는 324만 채까지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빈집이 총주택 수의 각각 9.1%, 13%를 차지하게 된다. 불과 25년 만에 빈집이 111.8%가량 증가하는 것이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대략 2% 정도가 순수한 빈집으로 보이는데, 2050년쯤에는 거의 8%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상속받고 방치, 재개발 위해 비워둬
빈집이 생기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노령 인구가 많은 농어촌 지역은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집이 비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집은 자녀 등에게 상속되지만, 자녀는 연식이 오래된 집에 직접 거주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집이 빈 상태로 두게 된다. 그렇다고 집을 팔자니 농어촌 지역에서 집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지면서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러한 연유로 빈집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상속 후 주택에 관한 복잡한 지분 관계도 빈집이 생기는 이유다.
경남 고성군의 고향집을 비워 뒀다는 김성진(가명·57세)씨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재산을 정리했는데 시골집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며 “형제가 모두 서울에 정착해 1년에 한두 번 집에 내려가는 상황이어서 집을 팔자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이어 김씨는 “솔직히 집을 판다고 해도 오래된 집이 팔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주택 노후화를 이유로 소유자가 집을 떠나 빈집이 생기기도 한다. 2023년 기준으로 지어진 지 35년이 지난 빈집은 46만2861채에 달한다. 빈집의 30.2%가 노후화가 상당 진행된 것이다. 도시에서는 재개발 등으로 인해 빈집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다예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내부적으로는 주택 자체의 구조·기능적 측면이 불량하거나 규모가 협소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등 주택 활용도가 낮으면 수요가 감소해 빈집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소유자 사망 이후 상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후 방치하는 등 개인의 문제나 심리적 요인에 의해 빈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 산업 쇠퇴에 따른 인구 유출 등 거시적인 사회 변화 영향이나 신시가지 개발 및 정비 구역 지정 같은 공공의 정책적 결정에 의해서도 빈집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주거 환경 악화하는 빈집
빈집이 생긴 지역은 지역을 쇠퇴시킨다. 빈집 소유자는 주택을 방치할 가능성이 크다. 조정희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빈집의 부정적 외부 효과로 인해 주변 주민은 피해를 보지만 빈집 소유자는 빈집을 방치하는 데 있어 별도의 비용이 소요되지 않기 때문에 빈집을 관리할 유인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위생도 악화할 수 있다. 화재, 붕괴 등 안전사고 위험도 커진다. 집주인이 없으니, 범죄의 위험에도 노출될 수도 있다. 이러한 주거 환경 악화는 인근 주민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서 또 다른 빈집이 생기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빈집의 전염’이 시작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지역 경제와 공동체의 활력 감소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지역 자체가 소멸 위기에 놓인다. 이는 재건축·재개발을 비롯한 도시 재정비마저 쉽지 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