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과 규제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류에게 유익한 인공지능(AI)의 구현 방안을 찾으려는 논의가 1월 20~24일(이하 현지시각)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진행됐다.
다보스포럼은 올해 55회째로, 인구 1만 명의 스위스 산골 마을에 세계 정치, 경제, 산업 리더 3000여 명이 모였다. 수행 인원까지 고려하면 마을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집결한 셈이다. 1월 22일 열린 AI 거버넌스 토론 세션에서는 AI 분야에서 정부와 재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나와 AI의 바람직한 미래에 관해 토론했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특별연설을 통해 AI의 부작용을 막을 글로벌 규범 체계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AI가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라면서도 “속임수의 도구가 될 수 있고, 노동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전쟁터에 냉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라고 했다. 그는 인권에 중심을 둔 AI 규범을 전 세계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참여한 압둘라 알스와하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정보기술부 장관은 AI로 인해 더욱 심해질 디지털 격차 문제를 짚었다. 이미 인터넷 접근성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소득 국가 간 벌어진 정보 격차가 AI 보급으로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알스와하 장관은 “세계 인구 가운데 26억명은 디지털 정보 접근성에서 뒤처져 있고, AI에 접근할 수 있는 인구는 7억~10억 명에 불과하다”라며 “정보 소외 지역에 데이터 흐름이 계속 생기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경제적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함께 토론에 나온 클라라 샤페즈 프랑스 AI·디지털 기술 담당 장관은 AI 산업계와 정부가 서로 상생하는 규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규제로 AI 혁신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AI 산업의 혁신을 돕는 동시에 업계와 AI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샤페즈 장관은 “기술 경쟁력은 국가에도 중요한 부분”이라며 “AI 법안은 혁신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 가속하는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했다.

AI 업계는 규범에 거부감을 내보이기보다 각국 정부와 합리적인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CEO)는 “정부와 AI 산업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된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라며 “IBM은 110년 역사에서 ‘기술을 활용해 정부와 기업의 비즈니스를 개선한다’는 사업 목표를 항상 유지해왔다”고 했다.
다만 크리슈나 CEO는 입법 과정에서 규제가 심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업계는 당국에 섬세한 메스를 원했지만, 규제 시행 단계에서 대형 망치처럼 작동한다면 혁신을 방해하는 일이 된다”고 했다. 이어 “AI 기술을 개방적으로 유지하고, 극단적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강력한 규제를 동원하고, AI 개발자가 제품에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지를 명확히 밝히도록 하는 등 개발자 측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규범의 기본이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유럽판 챗GPT’를 만든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의 아르튀르 멘슈 CEO는 AI의 개방성을 유지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멘슈 CEO는 “미스트랄은 더 분산화한 AI 접근 방식을 장려한다. 이용자가 자신만의 AI에 접근해 스스로 행동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런 오픈 소스 모델은 실제로 유해한 목적으로 AI가 사용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멘슈 CEO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AI를 중앙 집중화해야 할 기술로 간주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라며 “오픈 소스와 분산화하는 접근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라고 했다. 또 멘슈 CEO는 AI 규범과 관련해 “초점은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제어에 있다”라며 “개발자가 만든 AI 앱이 원래 의도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술이 통제되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한 검증 과정은 과학적인 동시에 자동화된 평가 방법 및 인간의 평가 프로세스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관세 전쟁 원하지 않는다… 승자 없어"
트럼프發 보호무역주의 경계하는 세계

전 세계 정·재계 인사는 다보스포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 취임에 따른 국제 정세 변화에 주목했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 기간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취임 직후인 2월 1일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25%, 중국에는 10%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예상보다 관세 부과 범위는 축소됐으나, 트럼프는 대외수입청 신설 등 정책을 내기도 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전 세계 누구에게도, 심지어 미국에도 관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우리는 관세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 2023년 주요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관세 전쟁으로 심화할 수 있다고 했다.
니콜라이 탕겐 노르웨이 국부펀드 최고경영자(CEO)는 “관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발생할 것”이라며 장기 금리 상승, 정부 부채 증가, 지정학적 긴장 등을 시장의 주요 위협으로 지적했다.
세르지오 에르모티 UBS CEO는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사람이 믿는 만큼 금리가 빨리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트럼프 재집권을 의식한 발언도 이어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5년간 유럽은 성장을 위해 세계무역 급증에 의존해왔다.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에 너무 매달렸고, 안보를 아웃소싱했다”라며 “그러나 그런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미국 행정부와 논의할 준비가 돼 있고, 공동의 이익을 논의하면서 협상할 준비도 돼 있다”고 했다.
딩쉐샹 중국 부총리는 “보호무역주의는 아무 곳으로도 이끌지 못한다.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고 했다. 이어 “세계가 여러 체계로 분열되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우리는 무역 흑자를 추구하지 않고, 균형 잡힌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더 경쟁력 있고, 품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원한다”고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미국은 유럽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유지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우리의 번영을 유지하려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관세 등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는 세계 안보 지형 변화에 대한 얘기도 다뤄졌다. 숄츠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경의 불가침성이라는 국제 질서를 위반했으므로, 전쟁에서 승리해서는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 국민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지에 대한 최후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럽과 러시아를 가르는 바다는 없다”라며 “북한군은 평양보다 다보스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