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양·태평양 잇는 파나마운하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운하는 남미대륙 남단을 우회하는 노선에 비해 2만㎞ 이상의 거리를 단축시켜주는 해상 교통의 핵심적인 시설이다.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은 16세기 등장했으며 1878년 프랑스가 건설에 나섰다. 수에즈운하를 건설했던 드 레셉스 주도로 진행된 파나마운하 건설 사업은 잘못된 시도와 준비 부족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겪었으며, 결국 대규모 금융 사기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중단했다. 프랑스의 실패를 지켜본 미국은 1902년 4000만달러에 프랑스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했다. 미국은 단순히 운하를 건설하는 것을 넘어 건설되는 운하를 미국이 관리하기 위해 당시 파나마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콜롬비아에 대해 운하 노선을 따라 폭 16㎞의 토지를 99년간 미국에 조차할 것을 요구했다. 콜롬비아가 요구를 거절하자 미국은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이던 분리주의자를 움직여 미국에 도움을 청하도록 했고, 이를 수용하는 형태로 미국이 개입해 파나마를 독립시켰다. 파나마라는 나라 자체가 미국이 운하 건설을 위해 급조한 국가였던 것이다.
1904년 재개된 운하 건설은 황열병을 비롯한 풍토병과 전쟁이었다. 프랑스의 실패 사례를 분석한 미국은 철저한 방역 조치와 모기 서식지 제거 작업을 펼치면서 황열병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지역 특성에 맞는 초대형 증기 크레인과 콘크리트 믹서 등 중장비를 투입하면서 공사를 진행한 끝에 1914년 파나마운하를 완성했다. 총길이 82㎞에 이르는 파나마운하는 동해안과 서해안으로 분리되어 있던 미 해군 전력을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주력 군함이던 전함의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운하 폭을 33.53m로 결정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파나마운하는 미국의 국가 안보와 군사전략에서 핵심적인 자산으로 간주됐다.
미국은 파나마운하를 중심으로 양쪽 8㎞씩 설정된 주변 지역을 파나마운하 지대로 명명해 미군이 주둔, 운하와 더불어 통치했다. 1937년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등 미국은 이곳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나마 국민은 이곳을 파나마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959년 대규모 시위를 시작으로 1964년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는 등 갈등이 커졌다. 결국 1977년 당시 미국 대통령은 파나마와 운하 조약을 체결하면서 운하 주변 지역의 미군을 철수하고 파나마에 반환할 것을 약속했다. 해당 조약을 비준해야 하는 미국 상원은 통과에 필요한 67석보다 단 1석 많은 68석으로 조약을 비준했고, 운하는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에 반납됐다.

파나마 내 중국 입김 세지자, 미국 견제 나서
트럼프가 파나마운하 반환을 언급하고 나선 것은 최근 파나마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파나마운하 양 끝에 있는 발보아, 크리스토발 항구는 현재 홍콩 기업인 CK허치슨이 2047년까지 관리하도록 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운하를 지나는 선박의 동향을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CK허치슨은 24개국 53개 항구를 운영하는 항만 운영 전문 기업이지만 미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2018년 파나마와 외교 관계를 수립한 중국이 대사관 부지로 운하 입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최근 중국 기업은 파나마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운하 횡단 교량 등 인프라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미국이 파나마에서 활동하는 중국의 움직임에 민감한 것은 파나마가 중미 최대의 중국인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20만 명 이상의 중국계 인구가 파나마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중국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다. 19세기 철도 건설 사업을 위해 이 지역에 발을 디딘 중국인 상당수가 파나마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1903년 중국인 이민 금지, 1940년 비(非)히스패닉계 이민자 시민권 박탈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중국계 이민자 후손은 소매업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했다. 1980년 이후 다시 중국인의 유입이 늘었고, 이들은 2018년 파나마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민자 유입이 지속되면서 불법 이민 문제도 커졌다. 파나마 정부는 2016년 불법 체류자에게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등 구제 조처를 하고자 했는데 이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했다. 이런 갈등은 2018년 중국과 국교 수립 과정에서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운하 확장과 주변 지역 개발 및 인프라 확장 등이 필요하지만, 재원이 부족한 파나마 정부는 중국의 투자를 간절히 원했다. 이에 따라 중미 국가 중 최초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참여하는 등 중국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 기업으로서도 중남미 지역의 금융 중심지인 파나마에서 활동하는 것이 사업 확장에 유리하기 때문에 파나마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트럼프, 중국 견제 위해 모든 수단 동원
이런 양국의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투자가 단순한 인프라 건설 사업이 아니라 유사시 군사용으로 전환돼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개발 프로젝트라고 의심하고 있다. 항만 운영자는 물류의 흐름을 손쉽게 파악함으로써 미국 정부의 의도와 군사적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파나마에서 중국의 활동 증가는 미국에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북미뿐만 아니라 중남미, 카리브해, 그린란드 등을 미국 영역으로 여기는 트럼프에게 이런 상황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실제 군사력을 동원하여 파나마운하를 다시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는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보이는 파나마운하 반환 언급은 트럼프의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는 자국 영역에서 중국 영향력을 차단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브라질로부터 막대한 콩을 수입하고 있으며, 페루에 대규모 항구를 건설하는 등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 중국 움직임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중국과 대결에서 우선 미국의 뒷마당으로 간주하는 중남미 지역에서 중국을 밀어내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는 앞으로 여러 곳에서 예상치 못한 갈등과 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