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F 로고. / 사진 UKF
UKF 로고. / 사진 UKF

1월 10일 미국 실리콘밸리 레드우드 시티 폭스 극장(Fox Theatre)에 1400명의 한국인 창업자, 투자자가 모였다. 북미 최대 한인 창업자 네트워크 ‘UKF(United Korean Founders)’의 실리콘밸리 챕터 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행사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인원이 인텔 등이 신제품을 발표하는 역사적인 장소에 모인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글로벌 인공지능(AI) 4대 석학 중 한 명인 앤드루 응 교수부터 K뷰티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는 코스맥스의 이경수 회장, 실리콘밸리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센드버드의 김동신 대표, 지식재산권(IP) 플랫폼 스토리의 이승윤 대표 등이 연사로 참석했다.

UKF 서부 모임은 2018년 여름 실리콘밸리의 이기하 사제파트너스 대표, 김희지 미백 대표 두 부부의 집에서 ‘82 Startup’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당시 필자는 실리콘밸리와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 및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유튜브 채널을 1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었다. 

김태용 EO 대표 - 현 퓨처플레이 벤처파트너
김태용 EO 대표 - 현 퓨처플레이 벤처파트너

숙박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페이스북에 ‘저렴한 가격에 재워줄 수 있는 한국인이 있느냐’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기하 대표가 ‘집에 방이 남으니 와서 써도 좋다’고 했다. 그는 UC 버클리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인터넷 쿠폰 비즈니스를 창업해 성공한 인물이다. 이후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시작했고, 인도인, 유대인 등이 부럽지 않은 한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82 Startup을 시작했다고 한다. 첫 모임은 이기하, 김희지 두 창업자 부부가 미국에서 성공을 꿈꾸는 창업자들을 집으로 불러 직접 한식을 요리해 대접하는 작은 규모였다. 당시 이 작은 모임이 1400명 규모의 이벤트가 될 줄은 아무도몰랐을 것이다.

UKF 동부 모임은 2005년 홍익대를 자퇴하고 달랑 500만원만 들고 뉴욕으로 와 기업 가치 5조원 규모의 소비재 헬스케어 회사 눔(Noom)을 세운 정세주 대표가 시작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수많은 피봇(사업 방향 전환)을 거쳐 성공을 일군 그는 여력이 될 때마다 본인을 찾아온 한국인 창업자에게 멘토링해주고 엔젤 투자까지 했다. 그 역시 뉴욕 월스트리트, 테크 및 요식 업계 등의 훌륭한 한국인이 연결되고 서로 더 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비슷한 모임이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에서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기하 대표와 의기투합해 2024년 동부와 서부를 통합하는 한인 창업자 네트워크 UKF를 탄생시켰다.

UKF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함께해 본 입장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진정한 의미의 협력은 큰 뜻을 품고, 큰 시장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한국인 창업자 모임을 하면 묘한 긴장감이 있다. 스타트업이 크게 성장하려면 한국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에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를 하던 회사가 커머스를 해야 하고, 커머스를 하던 회사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을 하며 제한된 인재 풀 내에서 서로 헤드헌팅을 하곤 한다. 회사끼리는 언제 어떤 식으로든 경쟁하게 돼 있으니, 마음 편히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 어렵다. 

반면 미국에선 아주 작고 뾰족한 영역에서 세계 최고를 만들어도 유니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미션(창업 목적)에 기반해 일하고 사업 영역을 좀처럼 확장하지 않으며 좁은 영역을 깊게 파기 때문에 회사 간 협력이 수월하고 네트워킹이 필수적이다.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크고 작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 많아져야 작금의 한국이 경제 위기를 뚫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내수에서 글로벌로, 경쟁에서 협력으로 나아갈 기반이 북미에 구축되고 있다. 많은 창업자가 이를 활용해 더 큰 꿈을 꾸길 바란다. 

김태용 EO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