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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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탄핵 정국’이 지속하면서 부동산 시장도 숨을 죽이고 있다. 매수자의 심리가 냉각하면서 거래가 줄고 가격도 약세를보이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돼야 부동산 시장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내 집 마련 수요자는 서두르기보다 2분기 이후로 한 템포 늦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하반기 이후에 회복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으므로 매입 시기를 너무 늦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움츠러든 주택 수요

부동산 시장 흐름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지표는 거래량이다. 가격은 거래량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가격은 속여도 거래량은 속일 수 없다고도 한다. 거래량은 가격보다 앞서 움직이는 선행성을 띨 뿐만 아니라 시장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 11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이 전월 대비 13.2% 감소했다. 문제는 당분간 거래가 바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는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 여섯 가지 중 하나로 불확실성 회피를 꼽았다. 우리나라 사람은 확실하지 않고 안갯속처럼 흐릿하면 잘 움직이지 않고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확실해지면 또 한쪽으로 일제히 움직이는 쏠림 현상도 자주 목격된다. 시장에선 위험보다 불확실성을 더 꺼린다. 위험은 분산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분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라를 둘러싼 정국이 어수선하고 금융시장까지 불안정하다 보니 수요자가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정치 쪽에 의제(agenda)가 쏠려 있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이 영향으로 시장은 투자자는 물론 실수요자도 움직이지 않는 모양새다. 

소비자 심리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은행의 주택 가격 전망 CSI(소비자 동향 지수)는 2024년 12월 103으로 전달(109)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CSI는 지난해 9월 119에 비하면 무려 16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아마도 2025년 초에는 CSI가 10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흐름을 주도하는 서울 지역 아파트의 경우 거래량은 2024년 7월 9218건으로 피크를 찍은 뒤 급감했다. 요즘은 3000건대(지난해 11월 3344건)를 유지하고 있다. 수요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방증인데 시장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든 양상이다.

1월 6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 / 사진 뉴스1
1월 6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 / 사진 뉴스1

사바나 기후 같은 아파트 시장

요즘 아파트 시장은 사바나기후 같다. 사바나기후는 열대우림기후와는 달리 건기와 우기가 매우 뚜렷하다. 비가 올 때는 한꺼번에 소나기처럼 퍼붓지만, 그 이후에는 심한 가뭄이 찾아온다. 거래량 급증과 급감 현상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거래량 추이를 보면, 2024년 5~8월에 한꺼번에 거래가 이뤄졌다. 아파트 시장이 코스닥 시장 테마주처럼 들쭉날쭉 움직인다. 이런 모습이 나타난 것은 수요자가 일종의 불안 심리로 떼를 지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비슷한 정보를 동시에 받다 보니 생각도 비슷하고 행동도 비슷해진다. 이른바 집단 사고와 군집 행동이 작동한다. 옆 사람 눈치를 보는 장세가 심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가 투자재로 변한 데다 집단 심리가 작용하다 보니 시장의 부침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양상이 이어지는 것 같다. 이럴수록 군중심리에 휘둘리기보다는 독립적 사고와 역발상이 필요할 때다. 내 집 마련 실수요자라면 상반기에 급매물 중심으로 접근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급매물은 고점(2021년 10월) 대비 서울은 10~20%, 나머지 지역은 20~30% 싼 매물을 말한다.

상저하중(上低下中) 가능성

오는 7월 강력한 대출 규제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금융권의 모든 가계 대출에 가산 금리를 부여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도입이 그것이다. 올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지만 대출 규제도 염두에 둬야 한다. 수영장 물로 비유하면, 한쪽에서는 더운물(금리 인하)을, 다른 한쪽에서는 찬물(대출 규제)을 주입하는 꼴이어서다. 집값이 비싸 금리 인하보다 대출 규제 민감도가 높은 서울과 수도권 주택 수요자는 대출 규제를 눈여겨봐야 한다. 

다만 하반기에 새로운 대출 규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질 수 있는 만큼 시장이 확 가라앉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한다. 올해부터 2028년까지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지 않아 집값 하락이 장기화하기 어렵다. 아직은 저출생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충격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신축 중심으로 주택 공급 부족이 더 중요한 이슈다.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시장 여건이 낫지 않을까생각한다. 하지만 대출 규제 여파로 크게 오르기도 힘들다. 그래서 ‘상저 하중’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부동산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도 낙관론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균형추다. ‘지적으로는 비관주의, 의지로는 낙관주의’를 지향하라는 말이 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도 “비관주의자는 어떤 기회에서도 어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기회를 본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로 낮아질 것 같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1.7%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말 내놓은 1.9%보다 0.2~0.3%포인트 낮춘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조금 낮아진다고 집값이 떨어진다고 단정 짓는 것은 단순 도식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경기 둔화는 집값 하락 요인일 뿐 반드시 하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는 중요한 변수이지만, 그중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역성장, 즉 마이너스성장을 하지 않는 한 집값이 내려간다고 예단하는 것은 오류를 낳을수 있다. 다시 말해 글로벌 금융 위기나 외환 위기 같은 실물경기 급랭 상황이 아니라면, 대출 규제, 기준금리나 통화량, 환율 같은 금융 변수에 더 주목하는 게 낫다. 주택 시장 내부의 공급 변수인 입주 물량에도 관심을 두는 게 필요하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피터 린치도 “내가 거시경제 분석에 할애하는 시간은 1년에 15분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거시경제보다는 미시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행동하는 게 더 낫다는 이야기다.

M2 흐름을 주목하라

올해는 금융 지표 중에서 광의 통화로 시중에 풀린 화폐 총량을 의미하는 M2 흐름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일반적으로 M2는 늘어나지만, 증가 속도를 눈여겨봐야 한다. 대도시 아파트값은 M2 증가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부동산학 연구 논문이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11월 현재 M2는 4143조원가량으로 전년 동월 대비 6.4% 늘어났다. 통화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넘칠 정도는 아니다. 집값이 급등한 과거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당시 연평균 10% 정도 증가했다. 지금은 유동성이 많지 않으니,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많지 않은 셈이다. 아파트값이 특정 인기지역에서만 오르는 것도 그만큼 시장 체력이 강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순 환매나 갭 메우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유동성이 많지 않아서다. M2 증가율이 갑자기 높아진다면, 외곽 지역까지 집값이 오를 수 있다. 물론 증가율이 미미할 경우 그 반대가 될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