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산불로 대저택이 불에 탔다. / 사진 셔터스톡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산불로 대저택이 불에 탔다. / 사진 셔터스톡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로스앤젤레스(LA) 산불은 서울 면적의 4분의 1이 넘는 광대한 지역을 휩쓸었다. 화마(火魔)는 열흘이 훌쩍 넘도록 완전히 진압되지 않고 있다. 건물 1만2000채가 파괴되고 피해액은 2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보험업계 피해액도 50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천문학적 피해는 자연의 파괴력 때문만이 아니라 무모한 관치 금융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주는 2024년 피해액이 가장 큰 10곳 중 8곳이 이곳에서 발생할 정도로 산불이 급증하는 지역이다. 오르는 보험료를 통제하기 위해 1988년 주 정부는 보험료가 ‘과도하거나, 부적절하거나, 불공정하고 차별적’이라는 명분을 내걸어 보험료 인상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주정부의 가격 통제는 결과적으로 보험 시장의 왜곡을 초래했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보험료 통제로 인해 캘리포니아주 시장에서 민간 보험사의 신규 상품 출시 지연은 물론 시장 철수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2년 동안 12대 주요 주택 보험사 중 7곳이 캘리포니아주의 보험 제공을 제한했다. 스테이트 팜보험은 지난해 3만 개가 넘는 보험을 갱신하지 않고 철수했는데 그 60%가 이번 화재 지역 주택의 보험이었다. 

민간 회사가 보험을 철회하자, 대안이 없는 주민은 어쩔 수 없이 주 정부가 운용하는 보장 범위가 적은 ‘페어플랜(FAIR Plan)’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페어플랜 가입 액수는 전년 대비 61% 증가해 이번 화재로 인한 주민 재산 손실을 키웠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겸 컨슈머워치 공동 대표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겸 컨슈머워치 공동 대표

보험료는 곧 위험에 대한 시장가격이다. 이에 대한 통제는 화재 예방 투자와 위험지역 회피 인센티브를 저해한 캘리포니아주 지역 보험료가 적정 수준으로 책정됐더라면, 보험사는 화재 위험이 높은 지역의 주택에 대해 더 높은 보험료를 책정했을 것이고, 이는 주민으로 하여금 화재 예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거나 위험지역의 주택 건설을 회피했을 것이다. 숲속의 주택은 도심의 주택에 비해 화재 위험도 높고 화재 진압도 매우 어렵다. 평균 주택 가격 340만달러(약 49억5550만원)에 달하는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숲 속 고가 주택이 화를 키운 주요한 이유다.

이번 산불은 캘리포니아주 보험료 인상의 도화선이 될 것이 자명하다. 재보험사가 이번 재난으로 막대한 청구액을 부담하게 되면 내년에 재보험 비용이 대폭 인상돼 보험료 인상의 도미노 현상을 피할 수 없고, 공적 보험사 부실은 주정부와 납세자의 막대한 부담이 된다. 이 사례는 관치 금융을 통한 가격 통제가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것은 가격 통제와 관치 금융의 뿌리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것이다. 

눈을 돌려 우리 나라의 관치 금융을 보자.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목을 쥐고 흔들고 있다. 정부가 은행을 압박해서 ‘상생 금융’이라는 미명 아래 3년간 매년 7000억원씩 약 2조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화재보험료가 화재의 위험에 대한 시그널인 것처럼 금리는 사업 위험에 대한 신호이자 가격이다. 2023년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기준, 사업소득으로 이자를 못 갚는 국내 좀비 기업 수는 40.1%로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대출의 비중은 국제금융협회 조사 대상 59개국 중 4위로 높다. 이는 가계와 기업 모두 부채를 줄이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실기업 처리 지연이 일본의 장기적 불황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 

시장가격은 경제의 건강 신호다. 그것을 왜곡하면 병을 크게 키우고 때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관치 금융의 유혹으로 급속하게 빠져들고 있는 지금, 우리는 LA 화재가 주는 파국적 교훈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지적한 것처럼 공무원과 정치인이 시장보다 현명한 경우는 좀처럼 없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겸 컨슈머워치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