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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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간 실내악 연주를 많이 했다. 피아노 한 대에서 동료 피아니스트와 나란히 앉아 네 손을 위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부터 시작해, 피아노 트리오, 콰르텟, 퀸텟 그리고 실내악의 넓은 범위로서 오케스트라 협연까지 다양한 작품을 여러 연주자와 함께 연주했다. 

연주를 마친 후 느껴지는 감흥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니’ ‘서로 소리를 주고받는 찰나의 순간에 이렇게 큰 감동이 솟아날 수 있다니’ 같은 생각이 아드레날린과 함께 터져 나오며 심장이 요동치곤 한다.

하지만 이 짧고도 찬란한 순간을 위해 연주자는 수많은 시간 고군분투한다. 서로 합을 맞추고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한다. 각자의 음악적 관점과 표현 방법이 다를 뿐 아니라, 이를 조율하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갈등이 커질 때도 있다. 

따라서 음악을 위해 협업한다는 것은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을 넘어,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나의 언어와 섞어 하나의 생명이 담긴 소리로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실내악의 묘미는 내가 타인과 맺는 관계를 음악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얼마만큼 깊이 탐구하고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는 비단 음악에서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공동으로 수행할 때 그 일을 수행하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없더라도 그 순간까지 도달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각기 다른 의견의 화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 이는 음악이든 삶이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안종도 -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연주학 박사,전 함부르크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안종도 -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연주학 박사,전 함부르크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프랑수아와 프랑수아의 음악으로 이뤄진 끈끈한 동행

최근 이러한 음악적 협업을 평생 이어온 두 음악가에 대해 연구하며 그들의 음악을 더욱 관심 있게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약 300여 년 전 프랑스에서 활동한 음악가 프랑수아 프랑쾨르(François Francœur)와 프랑수아 레벨(François Rebel)이다.

서양음악사에서 두 명 이상의 음악가가 협업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좋은 예로는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 펠릭스 멘델스존과 그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 요하네스 브람스와 그의 친구 요제프 요아힘 등이 떠오른다. 또한 연인 관계로 서로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악상을 제공했던 프레데릭 쇼팽과 조르주 상드, 프란츠 리스트와 마리 다구도 좋은 예다. 하지만 이들은 협업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공동 창작하기보다는 서로의 영감을 통해 독립적인 작품을 발전시킨 경우가 많다.

프랑쾨르는 1698년 파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 특히 바이올린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0대 중반부터 프랑스 궁정이 보유한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왕실 실내악단(Les Vingt-quatre Violons du Roy)’과 ‘파리 왕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L’Orchestre de l’Académie royale de Mu-sique)’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그는 같은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레벨을 만났다. 이 만남이 이들이 평생 동안 음악적 여정을 함께할 시작인 셈이다.

오제 뤼카(Auger Lucas)가 그린 프랑수아 프랑쾨르(왼쪽). / 사진 Gazette Drouot
오제 뤼카(Auger Lucas)가 그린 프랑수아 프랑쾨르(왼쪽). / 사진 Gazette Drouot

프랑스 음악의 조화와 혁신을 이끈 두 거장

프랑쾨르와 레벨은 1723년 파리를 떠나 합스부르크 제국의 빈과 프라하를 함께 여행하며 요한 요제프 푹스, 주세페 타르티니, 요아힘 크반츠 등 당대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던 음악가와 교류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들은 장바티스트 륄리로 대표되는 프랑스 바로크음악의 보수적인 전통을 받아들이면서도 이탈리아를 포함한 국제적인 음악 스타일을 프랑스 음악에 융합하는 중용적 태도를 취했다. 그 결과 이들은 함께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며 ‘스칸데르베르그’ ‘오귀스탈’ 등의 대표작을 연이어 발표하며 프랑스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들의 협업은 1775년 레벨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오페라와 발레를 위한 작품을 함께 작곡했을 뿐 아니라, 1730년부터 12년간 그리고 1757년부터 10년간 당시 왕국에서 장 중요한 오페라 극장인 파리 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공동 총감독으로 부임하며 프랑스 음악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프랑쾨르와 레벨이 평생 지속한 우정과 음악적 협력의 성과로는 보수적인 프랑스 음악계에 국제적 감각을 불어넣은 것을 들 수 있다. 비록 사후 한동안 그들 음악이 잊혔지만, 그들의 유산은 드뷔시와 라벨 같은 인상주의 작곡가에게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또한 20년 넘게 함께 파리 왕립 오페라 극장 총감독으로의 협업은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오페라 극장의 기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일 것이다.

최근 이들 작품이 유럽에서 재조명되며 연주되기 시작했으며, 스타 하프시코디스트 쥐스탱 타일러와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테가 내한해 프랑쾨르와 레벨의 작품을 연주하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프랑수아 프랑쾨르와 프랑수아 레벨 작품이 담긴 음반 표지.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집이다. 사진은 내한해 이들의 음악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테(왼쪽)과 하프시코디스트 쥐스탱 타일러. / 사진 알라딘
프랑수아 프랑쾨르와 프랑수아 레벨 작품이 담긴 음반 표지.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집이다. 사진은 내한해 이들의 음악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테(왼쪽)과 하프시코디스트 쥐스탱 타일러. / 사진 알라딘

화합의 음악, 현대에 주는 메시지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갈등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서로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은 많은 이의 우려를 자아낸다.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취향을 적절히 수용해 더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어낸 프랑쾨르와 레벨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들의 음악처럼 우리 세상도 아름답고 조화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예술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음악이 주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이런 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의 커다란 위로가 아닐지 생각해 보며, 두 작곡가가 들려주는 음악의 의미는 여전히 300년이 지난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다고 말하고 싶다. 

안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