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 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5/01/24/2025012400046_0.png)
지금은 창원이 되어버린 옛 도시 마산. 산복도로에는 옛 마산의 모습을 간직한 벽화 골목이 있다. 바다를 보며 느긋하게 걷기 좋다. 한때 서울 명동 다음으로 땅값이 비쌌다던 창동은 예술 골목으로 재탄생해 여행자를 반긴다. 우리가 몰랐던 매력으로 가득한 마산으로 떠나보자.
사실, 경남에서 마산이라는 도시는 사라졌다. 2010년 진해와 함께 창원시로 통합됐다. 지금은 마산시가 아니라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라는 행정구역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마산은 창원이 아니라 여전히 마산으로 더 익숙하다.
![최갑수 -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5/01/24/2025012400046_1.png)
동화 같은 골목을 산책하다
마산에 도착해 산복도로로 먼저 갔다.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연탄집게 그림과 할아버지가 손녀를 꼭 끌어안아 주고 있는 그림, 청수탕이라는 목욕탕 앞에서 할머니와 엄마, 손녀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 있다. 할머니는 손녀 나이를 일곱 살이라고 우기고 있고, 주인아주머니는 인상을 쓰고 있다. 옛날 목욕탕에서는 여덟 살부터 어른 요금을 받았다.
마을을 올라가는 계단은 모두 세 곳이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어린 시절 학교에서 두드리던 실로폰 같다. 골목을 따라 걷는다. 외벽마다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알록달록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우울했던 기분이 스르륵 풀리는 것같다. 이곳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규모의 마을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인데, 2013년 경남은행이 지원해 벽화마을로 꾸미는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했다. 경남도미술협회 소속 미술 작가 32명이 재능을 기부해 벽화를 그려 넣었다.
산동네라 경사가 있는 길과 계단 길이 조금 있지만, 걷기에 힘든 정도는 아니다. 벽화 대부분은 호랑이와 꽃 등을 소재로 그렸다. 그래서인지 걷다 보면 동화책 속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행복버스’라는 벽화도 있는데, 기다란 분홍색 버스 안에 털보 운전사와 강아지, 아이들이 타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날개 벽화도 인상 깊은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꼭 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골목은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다정한 풍경이 참 많다. 전봇대에는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전단이 바람에 날리고, 시멘트 담벼락에는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 식의 정겨운 낙서가 씌어있다. 해 질 무렵이면 담 너머로 구수한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퍼지고 골목길에는 교회 종소리가 내려앉겠지.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을 꼭대기에 다다른다. 멀리 마산항이 내려다보인다. 마을은 마산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입구에 그려진 벽화. / 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5/01/24/2025012400046_2.png)
마산이 낳은 조각의 거장
마을 옆에는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이 있다. 몸에 새기는 ‘문신’이 아니라 마산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1923~95)의 작품을 모아 놓은 곳이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신은 20세기 조각의 거장으로 불린다.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3대 거장 조각전’에 영국의 헨리 무어, 미국의 알렉산더 칼더와 함께 초대됐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 공로 훈장인 ‘예술문학영주장’ 을 받기도 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마당에 스테인리스와 청동으로 만든 대형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의 작품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좌우균제의 추상 조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보기엔 완벽한 대칭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개미를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방울을 겹쳐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흑단과 강철, 스테인리스 등을 재료로 작업했는데, 이토록 단단한 재료를 매끈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집스럽고 치열하게 작업해야만 했을까. 제1 전시관에는 각종 자료와 브론즈, 흑단, 쇠나무, 스테인리스스틸, 회화 등이 상설 전시되어 있으며 제2 전시관에서는 기획 전시가 열린다.
![창원시립문신미술관. / 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5/01/24/2025012400046_3.png)
문신은 1980년에 영구 귀국해 마산시 추산동 야트막한 언덕, 고향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돌산을 깎아 미술관을 지었다. 작품을 판 돈은 고스란히 미술관을 짓는 데 사용됐다. ‘문신 25시’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노예처럼 일하며 미술관도 조각 작품을 만들듯 지었다. 재단된 대리석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미술관은 나의 필생의 이력”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미술관이 그의 최대 작품이 아닐까. 미술관을 만드는 데 꼬박 14년이 걸렸지만, 그는 미술관 개관 1주년을 사흘 앞두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미망인은 “사랑하는 고향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문신의 유지를 받들어 2004년 마산시에 미술관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싱싱한 해산물로 가득한 마산 어시장. / 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5/01/24/2025012400046_4.png)
마산 번영의 흔적이 가득한 곳
마산에 창동이라는 곳이 있다. 한때 마산 창동은 경남에서 상권이 가장 번성했던 곳 가운데 한 곳이었다. ‘서울엔 명동, 마산엔 창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쇠퇴 조짐을 보였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회복 불능’ 상태였던 창동에 ‘링거’를 꽂은 때는 2011년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빈 점포에 둥지를 틀었고 거리 풍경이 바뀌었다. 떠나갔던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왔고 상점들은 다시 문을 열었다. 창동은 조금씩 과거의 영화를 서서히 되찾아 가는 중이다. 잊힌 거리를 부활시킨 일등 공신은 지역의 예술가들이다. 창원시는 60여 개 빈 점포에 예술인을 무상으로 입주시켰고 2013년 ‘창동예술촌’이란 간판을 달았다. 창동예술촌 골목을 걷다 보면 이들이 그린 벽화와 다양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각종 공방과 아틀리에도 자리하는데 유리창 너머로 이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물론 이들이 만든 작품도 구입할 수 있다.
여행수첩
![창동분식의 냄비우동. / 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5/01/24/2025012400047_0.png)
마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아귀찜이다. 오래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서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어부들이 가져온 아귀를 된장과 고추장, 마늘, 파 등을 섞어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동동 아귀찜 거리에는 30여 개의 음식점이 몰려 있다. 생아귀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쫀득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진짜초가집은 1965년부터 영업 중이다. 복국 거리도 있다. 광포복집, 동경복집 등이 유명하다. 창동분식은 45년 업력의 오래된 분식집이다. 냄비우동과 박고지김밥으로 유명하다. 박고지를 넣어 만든 김밥을 이 집만의 비법으로 만든 겨자 소스에 찍어 먹는다. 어시장에 있는 운지식당은 그날 잡은 생선으로 끓이는 생선국이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