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글로벌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취임약 2주 만인 2월 1일(이하 현지시각) 멕시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붙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다. 트럼프는 행정명령 발효일 하루 전인 2월 3일 멕시코·캐나다 정상과 통화한 끝에 관세 부과를 30일 유예한다고 발표했으나, 중국엔 유예 없이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앞선 1월 26일엔 미국 내 불법 이민자의 본국 송환을 거부한 콜롬비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가 9시간 만에 철회한 바 있다. 2월 2일엔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관세를 더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의 폭풍은 앞으로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숨 돌린 멕시코·캐나다, 중국은 충돌
트럼프는 중국·멕시코·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는 이유를 ‘불법 이민과 펜타닐 등 마약류 유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을 겨냥해 “그들은 엄청난 양의 펜타닐을 보내 매년 수십만 명을 죽이고 있다”고 했고, “멕시코와 캐나다는 이 독극물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대(對)중국 추가 관세에 대해 “중국이 지난 4년간 전례 없는 수준의 펜타닐을 미국으로 보낸 것에 대한 보복적 관세” 라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관세 전쟁 원인으로 펜타닐을 내세웠지만, 이 나라들이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대규모 흑자국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2024년 1~11월 누계 기준 미국을 상대로 대규모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는 1위 중국(2704억달러), 2위가 멕시코(1572억달러)였다. 캐나다는 9위(548억달러)다. 한국은 미국에 무역 적자를 안기는 8위(602억달러) 국가이므로, 트럼프의 다음 타깃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의 피해국은 강경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적극적으로 협상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미국산 수입품에 25% 보복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했다가, 불과 9시간 만에 보복을 철회하고 불법 이민자를 본국으로 데려오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2월 1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대응했고, 여름휴가를 미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보내자고 자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월 3일 캐나다가 △국경 강화 계획에 13억달러 투입 △국경에 마약 차단을 위한 인력 1만 명 투입 △마약 및 범죄, 돈세탁 대응을 위한 양국 합동 타격 부대(Joint Strike Force) 발족 등을 미국에 약속히면서 관세 조치가 30일 유예됐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역시 “경제부 장관에게 멕시코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 및 비관세 조치를 포함한 플랜 B를 시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가, 국경 지역에 1만 명의 군인을 파견하기로 약속하는 성의를 보였고, 덕분에 관세 조치는 30일 유예됐다. 미국과 멕시코·캐나다는 2020년 7월 1일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대체로 무관세를 유지해 왔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석탄·석유 등 일부 미국산 수입품에 10~15% 관세를 추가 부과하고, 텅스텐 등 핵심 광물 5종의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의 10% 대중 추가 관세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미국의 대표적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인 구글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타미힐피거와 캘빈클라인 등을 산하에 둔 패션 기업 PVH그룹과 바이오 기업인 일루미나를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에 포함시켰다. 다만 중국의 이번 보복성 관세 부과일은 2월 10일이어서, 미·중이 막판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트럼프의 다음 타깃으로 지목된 유럽연합(EU)의 수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불공정하고 독단적으로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경우, EU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면서 “관세는 불필요한 경제적 혼란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며 우려하고 있다. ‘EU가 트럼프의 관세를 막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나’라는 질문에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준비를 해야 하고 준비가 돼 있다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관세는 협상용” 하락 후 진정된 시장
외신은 동맹국을 향한 관세 전쟁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 결정에 대해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 전쟁” 이라고 비판했다. 매체는 “중국은 제쳐두고, 트럼프가 이웃 국가에 대한 경제적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친구가 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오래된 농담을 떠올리게 한다”며 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도 “트럼프가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까지 겨냥하며 수천억달러 규모의 관세를 공언했다”면서 “해당 국가가 국경 보안 및 이민 문제에 대해 약간의 양보만 했음에도 결국 (트럼프가)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트럼프는 허세만 부리는 종이호랑이’ 라는 이미지가 강화됐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1기 정부 때도 북한과 이란, 중국 같은 나라에 미치광이 이론을 적용하려고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진단했다.
관세 전쟁이 촉발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ABC뉴스는 “무역 전문가는 중국산 수입품 관세가 미국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커튼, 냄비, 의류 등 다양한 상품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트럼프 1기 정부는 월마트 선반에 진열될 제품을 관세 표적으로 삼지 않으며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피하거나 적어도 지연시켰고, 당시 물가 상승률은 낮은 것이 고민이었다” 면서 “이번에는 관세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인플레이션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2%)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일반적인 통념은 트럼프의 위협이 협상 전략이라는 것”이라면서도 “주류 경제학자는 관세가 미국 산업을 되살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시각에 회의적”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관세 전쟁을 선포한 뒤 첫 거래일이었던 2월 3일 뉴욕 증시는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나스닥종합지수 등이 일제히 하락 출발했다. 그러나 멕시코·캐나다의 관세 유예 소식이 전해지며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협상용이라는 점이 재확인됐고, 3대 지수는 2월 4~5일 이틀 연속 올랐다. BBC는 “미국이 가장 가까운 경제 파트너와 다방면에 걸친 무역 전쟁을 벌일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였던 2월 3일 글로벌 금융시장은 흔들렸으나, 이후 시장은 상당히 진정됐다”며 “투자자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허세에 가깝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