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트럼프가 국경 통제 강화를 약속한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를 유예하고, 2월 4일 대중 추가 관세 10%만 발효했지만, 세계경제의 관세 폭탄 공포감은 여전하다. 트럼프가 유럽연합(EU)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미 무역 흑자가 규모가 큰 한국, 베트남, 인도 등이 트럼프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지시한 모든 무역협정에 대한 ‘미국 우선주의’ 관점의 재검토 후 4월 부터 시작될 개별 국가와 새로운 무역 협상 과정에서 한국 등에 대한 관세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 전망이다.

트럼프, 對미 수출 증가국에 관세 폭탄 위협
불법 체류자와 펜타닐 문제 등 표면적인 이유와 달리, 트럼프가 동맹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가장 먼저 관세 폭탄 위협을 가한 배경은 양국이 조 바이든 정부 집권기(2021~2024년) 중국을 추월하고 대미 수출 전 세계 1, 2위로 부상한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국 내에서 생산한 부품과 재료에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 영향이지만, 트럼프 측은 관세장벽을 피하려 현지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우회 수출 물량이 캐나다와 멕시코의 대미 수출액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USMCA의 혜택이 중국 기업에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또한 바이든 정부 집권기 대미 수출이 크게 늘어난 국가라는 점에서 캐나다, 멕시코와 비슷하다. 2024년 한국의 대미국 수출액은 1277만8600만달러로, 2020년(741억1500만달러) 대비 72% 늘었다. 2024년 무역 흑자 556억9000만달러 역시 2020년 대비 235% 폭증한 규모다. 이 기간 미국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공장에 투입된 기계·설비류 등 자본재 수출 영향이지만, 바이든 정부 임기 중 대미 수출과 무역 흑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한국이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완벽하게 피해 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2024년 1~3분기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전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이와 관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24년 10월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 등에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약 65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2월 1일 발표된 한국의 1월 수출액(491억2000만달러)이 전년 대비 10.3% 감소한 영향에 대해 이목이 쏠린다. 한국 수출액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나타낸 것은 2023년 9월 이후 16개월 만이다. 무역수지 또한 18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2023년 6월 이후 19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마감했다. 1월 대미 수출 또한 92억8400만달러로 전년 대비 9.4% 줄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34억6000만달러로, 2024년 12월(64억달러)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16개월 만의 수출 감소…‘양보다 질’ 구조 개선 노력해야
정부는 16개월 만의 수출 감소 원인을 1월 말 설날 연휴(1월 27~30일) 효과로 분석하고 있다. 설날 연휴가 2월 초·중순(9~12일)이었던 2024년 대비 1월 조업 일수가 4일 감소한 것이 일시적인 수출 둔화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1월 중 일평균 수출(24억6000만달러)이 전년 동월 대비 7.7% 증가했기 때문에 2024년 수출 증가 추세는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평균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25억2000만달러를 기록한 2022년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정부 내부에서는 ‘1월 마이너스 수출’이 ‘실(失)보다 득(得)’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가 대미 수출 증가국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증가세가 일시적으로 주춤한 것을 비관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견해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신정부가 과도한 무역 흑자 등을 불공정 무역 관행의 결과로 해석하는 상황에, 수출 증가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될 수 있다”면서 “수출 증가와 감소 등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이유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오는 4월까지 트럼프 정부가 각종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는 기간 동안수출 전략 등에 ‘로키(low key)’로 대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정부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면 각종 긴급 대책을 빗발같이 쏟아냈지만, 1월 수출입 동향 발표 후에는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대신 2월 3일과 5일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 ‘미국 신정부 관세 대응 회의’를 열었다. 2월 4일 열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도 미국의 관세 부과국 진출 중소기업 지원 방안 등을 주로 논의했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미국과 통상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수출액, 무역 흑자 규모 등 양(量)적인 실적에 주목할 필요가 줄어든다”면서 “대신 수출 지역 다변화 등 질(質)적 구조 개선에 매진하고, 미국산 LNG 가스 수입 등을 통해 대미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는 스마트한 전략 수립에 역점을 둬야 한다” 고 말했다.
韓 기업, 멕시코에 年 1兆씩 투자… 캐나다는 배터리 업체 ‘러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4일 발효 예정이었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 조치를 ‘30일 유예’했지만, USMCA 효과를 노리고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비상이 걸렸다. 무관세 혜택을 위해 멕시코와 캐나다 등에 현지 공장을 확보한 기업이 트럼프발 관세 폭탄 사정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024년 상반기 기준,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LG전자·기아·포스코·HL만도 등 525개 사에 달한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4년 1~9월 한국의 대멕시코 투자액은 12억700만달러(약 1조7602억원)에 달한다. 한국 기업은 2022년부터 매년 멕시코에 1조원 넘게 투자했다.
멕시코 몬테레이에 생산 기지가 있는 기아는 현지 생산 완성차 50%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에 가전 공장과 TV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고, LG전자도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광물자원이 풍부한 캐나다에서는 한국 배터리 업체의 생산 기지 이전 등이 추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2조원 가까이 투자했고, 포스코퓨처엠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캐나다에 배터리 양극재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자동차 부품사인 한온시스템은 올해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우드브리지에 전동 컴프레서 공장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