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 딥시크 애플리케이션이 구동하는 모습과 창업자 량원펑. /AP연합·위챗
스마트폰에서 딥시크 애플리케이션이 구동하는 모습과 창업자 량원펑. /AP연합·위챗

“딥시크의 등장은 인공지능(AI) 분야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 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이 1월 26일(이하 현지시각) 엑스(X·옛 트위터)에 남긴 글의 일부다. ‘스푸트니크 모멘트’는 기술 우위를 자신하던 국가가 후발 주자의 앞선 기술에 충격받는 순간을 일컫는 용어다. 구소련이 미국에 앞서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것에서 유래했다. 극강의 가격 경쟁력과 추론 능력을 앞세운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深度求索)가 던진 충격파는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본사를 둔 딥시크는 1월 20일 오픈소스 거대 언어 모델(LLM) 딥시크 V3를 기반으로 한 AI 모델 R1을 공개하면서 일부 성능 테스트에서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2024년 9월 출시한 추론 AI 모델 ‘o1’보다 뛰어났다고 주장했다. 특히 2024년 발표된 V3 개발에 557만6000달러(약 82억원)를 투입했다고 밝히면서 AI 영역에서도 중국의 가성비 경쟁력이 부각됐다. 메타가 최신 AI 모델 ‘라마3’ 모델에 쓴 비용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1월 25~26일 미국과 중국의 앱스토어에서 무료 다운로드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1월 27일 미국의 대형 기술주는 폭락했다. 특히 ‘AI 대장주’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시총)은 하루 만에 5888억달러(약 865조1827억원)가 날아갔다. 5888억달러는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의 시총(2월 6일 기준 약 4829억달러)보다 큰 액수다. 전 세계 증시 역사상 단일 기업의 하루 시총 감소 기록을 깼다. 

미국이 지난 수년간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고성능 AI 칩의 중국 공급을 제한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딥시크발 AI 쇼크’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맞춰 출시한 시점도 절묘했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은 중국 이인자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 주재 좌담회에 AI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날이자 미국 시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날인 1월 20일에 R1을 공식 발표했다. 리 총리와 량원펑은 저장대 동문이기도 하다. 

딥시크가 개발비를 축소 발표한 것으로 보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성능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혁신을 자극했다는 지적도 있다. 딥시크의 등장은 트럼프 1기 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미·중 패권 전쟁의 무대가 AI 분야로 옮겨지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딥시크를 둘러싼 주요 논점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창업자 량원펑은 누구인가.

“량원펑은 1985년 중국 광둥성 잔장시에서 태어났다. 해외 유학이나 글로벌 기업체 근무 경력이 없는 토종 중국인이다. 초등학교 교사 부모 슬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중학생 시절 고교 수학을 마치고 대학 수학을 공부할 만큼 탁월한 수학 실력을 자랑했다. 량원펑은 만 17세인 2002년 우촨제1중학교 대입고사 수석으로 공학 명문 저장대에 입학했다. 저장대와 딥시크 본사가 있는 항저우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본사 등이 있는 첨단 정보기술(IT)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량원펑은 저장대에서 전자정보공학 학사, 정보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에는 ‘AI 감시 카메라의 지능형 추적 알고리즘 개선’과 관련된 석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 AI 기술의 흐름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량원펑은 2015년에는 대학 친구 두 명과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를 창업했다. 2019년에는 투자 기법을 정교화하기 위해 하이플라이어 안에 AI 딥러닝 플랫폼을 개발하는 부서를 만들었는데, 이 조직이 딥시크의 모태가 됐다(딥시크와 하이플라이어의 본사는 지금도 같은 건물에 있다). 량원펑은 2023년 5월 하이플라이어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과 딥시크를 창업했고, 1년 만인 2024년 5월 V2로 중국 AI 모델 시장에서 가격 전쟁을 촉발한 데 이어 R1으로 전 세계 AI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그는 2024년 7월 중국 매체 안융과 인터뷰에서 ‘중국과 미국의 AI 기술에는 1~2년 격차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격차는 모방과 독창성의 차이다. 중국이 영원히 추종자(follower)로 남을 수는 없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기업으로서 딥시크가 특별한 점은 뭔가.

“딥시크가 ‘비용 절감형 AI’를 내놓을 수 있게 된 건 소프트웨어의 구성 원리·코드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사용·수정·변경·재배포할 수 있게 하는 ‘오픈소스 방식’ 덕분이다. 딥시크의 직원 수는 약 15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연구원만 1200명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적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V3 개발은 량원펑을 포함한 중국인 연구자·엔지니어 150명과 데이터 자동화 연구팀 31명이 이끌었다고 전했다. 딥시크의 연구 인력 대부분은 20∼30대 초반으로,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중국 명문대 출신이다. 팀 리더급도 대부분 35세 미만이다. 량원펑은 과거 인터뷰에서 ‘단기 목표를 추구한다면 경험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옳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험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기본적인 기술과 창의성,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규제를 어떻게 우회했을까.

“딥시크는 1월 22일 공개한 ‘R1 기술 보고서’에서 엔비디아의 저사양 반도체 ‘H800’ 2048개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H800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대중 제재를 피해 중국에 판매하기 위해 사양을 낮춘 것이다. 하지만 딥시크의 모회사 하이플라이어는 미국이 중국 수출을 제한하기 몇 달 전인 2022년 7월 회사 위챗(중국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엔비디아의 A100 칩 1만 개를 모았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딥시크의 초기 AI 모델은 A100을 기반으로 개발됐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선 딥시크가 화웨이(반도체 설계), SMIC(반도체 수탁 생산) 등과 손잡고 구형 장비로 만들어낸 중국산 AI 반도체 ‘어센드’ 를 대량으로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3년 나온 ‘어센드910B’의 경우 성능은 엔비디아 A100의 80% 수준이면서 가격은 3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딥시크 연구진이 ‘지식 증류’ 기술을 활용했을 것으로 보는의견도 있다. 불순물이 섞여 있는 물을 가열시켜 나온 수증기를 모아 순수한 물을 채취하듯, 성능이 뛰어난 대형 AI 모델로부터 필요한 지식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대형 AI 모델과 소형 AI 모델에 같은 데이터를 입력한 뒤 나온 출력값의 차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소형 AI 모델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엔비디아 주가는 왜 폭락했나.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 H100의 경우 칩 한 개 가격이 우리 돈 4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AI 모델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이런 칩이 수십만 개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개발 기업은 AI 기술 주도권을 잡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엔비디아의 칩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의 2024년 9∼11월 매출은 1년 전보다 94%, 순이익은 106% 급증했다. 하지만 딥시크의 ‘저렴한’ AI 모델 개발 방식이 확산한다면 엔비디아가 그동안 비싼 최신 AI 칩을 앞세워 올렸던 막대한 매출과 순이익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딥시크의 혜성 같은 등장에 엔비디아 주가가 폭락한 건 이 같은 우려 때문이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변수는.

“딥시크의 AI 모델이 이용자 정보 등을 과도하게 수집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이탈리아는 딥시크 사용을 차단했고, 호주 정부는 정부 사용 시스템과 기기에서 딥시크 사용을 금지했다. 대만도 각 부처·기관 근로자에게 딥시크 이용을 금지했으며, 영국과 독일은 규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외교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가 2월 5일 딥시크 이용 제한을 시작했다. 오픈AI가 2월 3일 애널리스트 수준의 보고서를 내놓는 ‘딥 리서치’를 출시하면서 정확도가 딥시크의 R1 모델보다 약 세 배 높다고 발표하는 등 미·중 AI 패권 전쟁이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의 딥시크 검열 여부도 딥시크 확장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딥시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천안문사건 등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