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밴드 ‘데이식스’의 팬인 A씨는 최근 어렵게 예매한 콘서트 티켓을 타인에게 양도했다. 독감에 걸려 도저히 콘서트장에 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대신 티켓 중고 거래 전문 플랫폼을 통해 티켓을 구하지 못한 다른 팬에게 안전하게 판매했다. 티켓을 못 쓰는 사람은 팔고, 필요한 사람은 쉽게 살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공연·스포츠 관람 수요가 늘면서 이와 같은 ‘2차 티켓’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2차 티켓이란 개인이 공식 예매처에서 구매한 뒤, 전문 플랫폼 또는 중고 거래 사이트,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다른 소비자에게 다시 판매하는 티켓을 의미한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2차 티켓 거래를 포함한 국내 리셀(재판매) 시장은 2021년 7000억원에서 올해 2조80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2차 티켓 거래를 통해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이 일부 해소되면서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이미 2차 티켓 거래가 하나의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아고고, 스텁허드, 티켓마스터 등 2차 티켓 거래 전문 플랫폼도 활성화돼 있다.시장조사 기관 그로스 마켓 리포트에 따르면, 글로벌 2차 티켓 거래 시장은 2019년 약 15조6000억원에서 2027년 약 37조원으로 연평균 12.4%씩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2차 티켓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북미와 유럽에선 2차 티켓 거래가 공연·스포츠 시장을 키우고, 노쇼 피해 방지와 수익 증대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아예 시즌권 좌석을 공식 2차 판매 시장을 통해 유통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즌권 보유자는 경제적 이득을 얻고, 티켓 구매자는 경기 관람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구단과 티켓 판매 업체는 수수료를 가져갈 수 있다. 2차 티켓 거래가 제도권에서 제대로 이뤄질때 나타나는 순기능이다.

개인 간 거래 많은 2차 거래…사기·매크로는 문제

건전한 티켓 거래만 있는 건 아니다. 2차 티켓 거래는 개인 간 직거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사기, 폭리 등의 피해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한국의 사기 정보 공유 사이트 ‘더치트’에 따르면, 2016년 5167건이었던 티켓·상품권 피해 사례 건수는 2024년 5만9837건으로 증가했다. 10배 이상 늘었다. K팝 공연 관람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까지 티켓 사기 피해를 볼 정도다.

암표도 극성이다. 2024년 1월 가수 장범준은 자신의 콘서트 티켓 예매 전체를 취소해야 했다. 온라인에서 정상가의 6~7배에 달하는 암표가 판매되는 사실을 적발한 것이다. 그 배경엔 매크로를 악용한 암표상이 있었다. 매크로는 키보드나 마우스 등 단순 반복 기능을 한 번 입력하면 자동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2024년 10월 경찰에 검거된 20~30대 암표 판매범의 경우 매크로를 이용해 유명 가수의 콘서트나 배우의 팬 미팅 등 티켓을 싹쓸이한 뒤 고액에 되팔아 억대 수익을 챙기기도 했다.

2차 티켓 거래 관련 피해 사례가 늘면서 정부도 단속을 강화해 왔다. 경범죄처벌법, 공연법, 국민체육진흥법 등 개별 법률을 기반으로 불법 티켓 거래를 단속하고 있다. 그러나 경범죄처벌법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암표거래만 단속해, 온라인을 통한 암표 매매를 규제할 수 없다.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 등은 티켓 부정 판매 대상 범위를 각각 공연과 스포츠로 제한하고 있는데 매크로를 이용한 ‘부정 판매’는 처벌 대상이지만, ‘부정 구매’는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표와 재판매에 대한 개념이 혼재돼 있고, 금지 행위와 처벌 위주의 기본적인 규제만 마련돼 있는 점도 문제다. 2차 티켓 거래 시장에서 피해자 구제 및 소비자 권리 보호 조치, 시장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뜻이다. 자칫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 일례로 티켓 재판매에 대한 수수료 제한 규정이 없어 글로벌 재판매 플랫폼이 높은 수수료를 책정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없다는 게 관련 업계 우려다.

티켓 재판매 규제하려는 정부…소비자 피해 우려

정부는 매크로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티켓 재판매를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2024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영업으로 암표를 판매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 내용을 바탕으로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검토하는 개정 방향은 △매크로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웃돈을 얹어 티켓을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공정한 티켓 구매를 방해하거나 우회해 티켓을 구매하는 행위인 부정 구매를 새롭게 금지하며 △티켓 부정 판매 기준을 ‘자신이 구매한 가격’에서 ‘판매 정가’로 더욱 명확하게 개선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2차 티켓 판매 업계에서는 이러한 규제 흐름에 대해 개인 간 티켓 거래에 국가가 개입할 경우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있고, 일반 소비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를 자주 관람하는, 이른바 ‘고관여 소비자’는 웃돈이 붙어도 원하는 행사를 보고자 하는 요구가 큰 만큼, 거래 자체를 전면 금지하면 오히려 음성화, 사기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티켓 재판매 거래를 제한하더라도 X(옛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2차 티켓 판매가 이뤄진다면, 현실적으로 제재가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뉴욕주,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에서 티켓 재판매를 전면 금지했더니 되레 음성 거래가 늘어 결국 규제를 철회하고 시장 중심의 접근으로 전환한 바 있다” 고 했다. 그러면서 “암표 거래는 근절돼야 하지만, 건전한 티켓 재판매까지 금지하는 건 소비자 편익을 침해하고, 공연·스포츠 시장의 성장 기회를 차단할 수 있는 만큼, 법제화에 앞서 2차 티켓 거래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매크로를 활용한 불법 행위는 금지하되, 티켓 재판매는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2025년 1월 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가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을 분석한 결과다. 일례로 EU는 티켓 재판매를 허용하지만, 플랫폼 책임을 강화하고 정보 공개와 소비자 권리 보호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국 소비자도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고 보증된 2차 티켓 거래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0월 한국소비자학회가 전국 만 16세에서 69세 미만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소비자는 재판매 목적으로 이뤄지는 소위 ‘암표 매매’ 를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일정 변경 등 개인 사유로 인해 예매한 티켓을 활용할 수 없거나 공식 예매처에서 구매가 불가능할 때 2차 티켓 거래를 유용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 조사에서 소비자는 2차 티켓 거래 과정에서 사기·가짜 티켓 등의 위험 요소가 상존한다는 점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판매자 본인 인증, 불법 거래자 처벌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봤다. 박정인 단국대 과학기술정책융합학과 교수는 “정부가 개인 티켓 거래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사적 자치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불법 매크로 등 스켈핑(영리적 대량 구매) 행위만을 엄격히 단속해, 누구나 공정하게 티켓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전한 시장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소비자를 위한 안전한 티켓 재판매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