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후세 지역에 있는 세카이호텔의 객실 내부. 이 객실은 오랫동안 빈집으로있던 목조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김유진 기자
오사카 후세 지역에 있는 세카이호텔의 객실 내부. 이 객실은 오랫동안 빈집으로있던 목조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김유진 기자

“일본은 빈집을 계속 방치하면 정부에서 개선하거나 철거하라는 지도를 할 수 있어요. 관리되지 않은 집에 빈집세를 물리거나 정부가 직접 철거하고 비용을 징수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집주인이 와서 우편물이나 전단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요.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라면 빈집 관리 서비스를 이용하죠.”

최근 일본 오사카 도심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히라노구에 있는 빈집을 찾았다. 히라노구의 빈집 비중은 15.1%에 달한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골목길 초입에 있는 이 집은 여느 사람 사는 집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 동네의 다른 빈집을 방문해도 대부분 외관상 사람이 살지 않는 티가 나지 않았다. 단정한 이층집 창문에 큼지막하게 붙은 ‘매물 건’이라는 문구만 현재 빈집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빈집치고는 관리가 잘된 편”이라며 일본 도심의 빈집은 정부 지도 아래 관리가 세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앞서 빈집 문제를 마주한 국가다. 일본 총무성이 집계한 주택·토지 통계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빈집은 2023년 10월 기준 총 899만 채다. 주택의 13.8%가 빈집인 셈이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73년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빈집 중에서도 장기간 사용 목적 없이 방치된 집은 385만 채다. 

이는 일본 주택의 5.9%를 차지한다. 오사카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50대 김상욱(가명)씨는 “오사카를 포함해 일본 전역에서 ‘아키야(空き家·빈집)’가 골칫덩어리가 된 지 꽤 됐고, 도심에서도 아키야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아키야는 매물로 등록해도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고 비용만 나가는 애물단지”라고 했다.

높은 리모델링 비용·신축 선호, 빈집 증가에 영향

일본의 빈집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의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빈집이 생기기 시작한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내진 설계 등이 필요한 리모델링 비용과 신축 단독주택 선호 현상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빈집 문제가 더 심화하고 있다.

빈집을 철거하거나 개조하는 비용이 높다는 점은 빈집의 새로운 활용이나 관리를 어렵게 한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빈집은 70% 이상이 1980년 이전에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빈집의 20%가 1980년 이전에 지어졌다는 점과 비교하면, 일본에 연식이 오래된 빈집이 훨씬 많은 상황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집은 내진 설계 등 현재 기준에 부적합하다. 결국 리모델링 과정에서 내진 성능을 보강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야 해, 비용이 올라간다. 일본은 도심의 고급 아파트값만 오르는 주택 양극화가 심화한 상황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중고 주택에 리모델링 비용을 쓰려는 수요가 많지 않다.

철거 비용과 높은 세금도 빈집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빈집을 철거한 후 토지에 부여되는 고정자산세가 과세표준의 1.4%다. 그러나 주택에 부과되는 세금은 과세표준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5000만엔(약 4억7240만원) 규모의 고정자산이 있을 경우 세금은 연간 70만엔(약 660만원)이지만, 빈집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연간 11만7000엔(약 110만원)만 내면 된다. 관리 비용을 합쳐도 철거 대신 빈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오사카 덴노지구의 빈집이 있는 골목길. /김유진 기자
오사카 덴노지구의 빈집이 있는 골목길. /김유진 기자

정책·민간 노력 더해 해결 ‘실마리’

최근 일본의 빈집 문제가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10년 전부터 특별법을 통해 빈집의 철거·개조를 지원하는 등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민간에서도 빈집을 호텔·식당 등으로 변신시키는 성공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도 빈집 활용 가능성을 눈여겨보는 이가 많아지는 이유다.

일본은 2015년 빈집 특별조치법을 시행하고 본격적으로 빈집이 초래하는 안전 문제와 지역 쇠퇴를 방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법을 통해 빈집을 활용 또는 철거해야 할 대상을 선별해 지원했다. 철거가 필요한 경우에는 철거 비용을, 활용이 가능한 빈집일 경우 다른 용도의 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조 비용을 지원했다.

빈집을 재활용하거나 리노베이션하는 경우 세제를 감면한다. 대신 2023년부터는 ‘빈집세’도 걷기 시작했다. 지붕이나 창문 등이 파손되고 잡초가 무성하게 방치하는 등 빈집 관리에 소홀한 소유주는 세제 혜택을 지원하지 않는 방식이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빈집 밀집 지역에 인구를 유입하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지방 소도시는 이주해 빈집을 활용할 경우에 이주 장려금을 지원한다.

빈집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정부 차원에서 공신력 있는 거래 플랫폼도 만들었다. 각 지자체는 ‘아키야뱅크(空き家バンク·빈집 은행)’를 통해 빈집 매물 정보를 제공한다. 중앙화된 빈집 정보를 바탕으로 지자체가 빈집 소유주와 저렴한 가격으로 빈집을 구매 또는 임대하려는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다.

민간에서도 빈집을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빈집을 철거·개조하려는 수요에 따른 파생 사업은 물론, 빈집을 호텔이나 식당으로 개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있다. 오사카 후세 지역에 있는 ‘세카이호텔’은 빈집을 활용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지 건설 회사인 쿠지라건설은 오래된 시장에서 장기간 방치된 목조주택을 장기 임대해 여행객을 위한 숙소로 변신시켰다. 이 호텔은 작년 말 기준 총 22개 객실에 최대 88명을 수용할 수 있다. 마리 키타가와 세카이호텔 프로젝트매니저는 “후세 지역은 원래 큰 전철역의 종점이어서 굉장히 큰 번화가였는데, 전철이 난바까지 종점을 연장하면서 인구가 빠져나가 버렸다”며 “쇠퇴한 구도심이 된 이 지역에 미래 세대를 위해 지역 전체를 리노베이션하자는 차원에서 호텔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호텔이 있는 시장은 원래 지역 주민만 이용하는 상점가였는데, 외부에서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문을 여는 점포가 생기고 있다” 고 덧붙였다.

빈집 활용도가 높아지다 보니 빈집에 대한 투자에 관심을 두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 무상이나 저렴한 가격에 빈집을 살 수 있으니 리모델링 비용만 들이면 임대 사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 생활비를 목적으로, 상대적으로 임차 수요가 있는 역세권에 있는 빈집을 사들여 임대하려는 이가 많다. 외국인도 일본 내 빈집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이 빈집을 구매하는 데 법적 제한이 없다. 일부 지자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빈집 정보를 제공하고 구매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오사카(일본)=김유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