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에는 국내 증류식 소주를 대표하는 화요의 공장이 있다. 화요는 도자 브랜드를 운영하는 광주요그룹이 2003년 설립했다. 증류식 소주를 내세우며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어느새 도자 브랜드 매출보다 화요 매출이 많아졌다. 2023년 매출은 359억원으로 10년 전보다 10배 늘었다.
박준성 화요 생산본부장은 화요의 맛의 비결을 숙성에서 찾았다. 화요는 고두밥을 찌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루에 쌀만 5~7t을 찐다. 증기로 고두밥을 찌고 한 차례 냉각한 뒤에 누룩 종균을 뿌려서 쌀누룩을 만든다. 이후 발효조에 물과 효모, 쌀누룩을 함께 넣고 7일 동안 발효한다. 발효가 끝나면 술을 분리하는 증류를 거친다.
이렇게 만든 술을 옹기 안에서 숙성한다. 화요의 대표 제품인 ‘화요 25’와 ‘화요 41’은 같은 원주에서 만든다. 증류가 끝난 원주의 알코올 도수가 45도 정도인데, 여기에 물을 타서 도수를 41도와 25도로 맞춘다. 이후 3개월 동안 숙성을 거친다.
박 본부장은 “술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숙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공기 중 산소가 알코올과 결합해서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산화작용이 일어나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술을 보관할 때 쓰는 스테인리스 용기는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산화작용이 일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숨 쉬는 그릇 ‘옹기’
옹기는 진흙이나 찰흙을 이용해 만드는 도기의 한 종류다. 유약을 발라서 굽는 자기는 미세 기공이 없다. 반면 도기인 옹기는 흙과 흙 사이에 미세 기공이 생겨서 그 통로로 공기가 드나들 수 있다. 흔히 ‘옹기가 숨을 쉰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이 미세 기공에 있다. 옹기도 유약을 바를 수 있지만, 유약을 많이 바를 경우 옹기의 특징인 미세 기공이 사라진다.
화요는 모회사가 도자 브랜드를 운영하는 광주요그룹인 덕분에 다른 회사보다 옹기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박 본부장은 “공기 접촉이 과도하면 산화에 의한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미세한 공기 구멍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화요는 도자기를 만드는 광주요의 기술자와 함께 술에 적합한 기공의 흙과 유약을 선택해 증류주에 적합한 옹기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요 제2 공장의 2층은 화요를 숙성하는 옹기가 한데 모인 숙성실이다. 2004년에 첫 화요를 생산할 때 썼던 옹기가 아직도 있다. 모두 350개의 옹기가 숙성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옹기는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만들기 때문에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2004년 11월 24일에 검정을 받은 1호 숙성 옹기는 용량이 364L였고, 2호 옹기는 363L였다. 3호는 368L였다.
옹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 흙의 여러 성분도 숙성 과정에서 술에 영향을 준다.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세라믹기술원, 화요는 2018년부터 5년 동안 전통 증류주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통 증류주의 산업화를 위해 발효 균주, 증류, 숙성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전통 증류주에 맞는 숙성용 옹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연구를 이끌었던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일부 증류가 끝난 원주를 맛보면 술맛이 전반적으로 강하고 뾰족한 느낌이 나는데, 숙성을 통해 술맛을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게 바꿔준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다른 숙성 용기에 비해 옹기를 사용하면 숙성 중에 일어나는 술의 여러 성분 변화가 가속화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도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증류주는 특유의 가스취(臭)가 있는데, 스테인리스 용기 같은 밀폐용기에서는 이런 나쁜 냄새가 없어지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스테인리스 용기는 술을 저장하는 용도로 보고 숙성기간으로 쳐주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옹기에 술을 담았을 때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이유는 흙에 있는 미네랄 성분 덕분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100L 옹기를 이용해 1, 3, 6개월 동안 증류주를 숙성했을 때 미네랄 성분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나트륨 성분은 처음 1L당 291㎍(마이크로그램, 1㎍은 100만분의 1g)에서 3개월 숙성 후에는 360㎍까지 늘었다. 마그네슘은 8㎍에서 26.4㎍으로 늘었고, 원주에서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칼슘은 251㎍까지 증가했다.
전통 증류주 현대화 프로젝트에서는 우리 술의 숙성에 가장 잘 맞는 옹기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옹기의 기공률과 유약 바르는 방식, 굽는 방식을 저마다 다르게 해서 10가지 종류를 만들었다. 각각의 옹기를 비교해 어떤 옹기가 증류주 숙성에 가장 적합한지 찾아냈다. 김 책임연구원은 10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이상의 규석(이산화규소) 입자 함량을 5~10% 범위로 제한해 기공률을 3~7% 수준으로 조절하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가 증류주 숙성에 가장 어울렸다고 밝혔다. 옹기를 구울 때도 전통적인 장작불 대신 가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장작불은 열이 고르게 퍼지지 않아 불량률이 높다는 이유다.

전통주 인기에도 옹기에는 관심 적어
무조건 오래 숙성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술의 특성에 맞는 적당한 옹기 숙성 기간을 찾는 게 중요하다. 적당한 숙성은 화학적인 반응을 통해 술의 맛과 향을 좋게 만들지만, 반대로 공기와 접촉이 너무 길어지면 맛이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 술 전문가인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소득자원연구소 지방농업연구사는 “양조장마다 자사의 초기 증류 상태를 확인하고 옹기 숙성을 통해 술의 맛의 최고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양조장이 옹기 숙성이라는 좋은 숙성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사의 술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얼마 동안 옹기 숙성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면 옹기 숙성의 의미는 감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주의 산업화와 현대화를 위해서는 숙성 용기인 옹기의 특성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전통 저장 용기인 옹기는 부피가 크고 냉장고 보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생산 현장에서는 자리 잡지 못한 경우가 많다. 보관을 잘못하면 깨지기도 하고, 숙성 과정에서 술이 자연 증발하는 ‘엔젤스 셰어’도 생긴다. 이런 이유로 아직 증류주 숙성 용도로 옹기를 사용하기 위한 연구는 많지 않다.
오죽하면 화요의 경영자인 문세희 대표가 직접 옹기 숙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논문까지 썼을 정도다. 문 대표는 서울벤처대학원대 융합산업학과에서 발효식품·양조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옹기를 이용한 술 숙성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거의 연구가 전무하다”며 “연구 기관이나 대학이 우리 술 산업화를 위해 숙성 용기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