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주변을 도는 수천 개 인공위성이 천문 연구를 방해한다며 반대 행동에 나선 천문학자들이 이번에는 우주에서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민간 기업인 스타링크와 원웹이 구축하는 저궤도 군집 위성처럼 일부 기업이 컴컴한 밤하늘을 전광판처럼 활용하려는 우주 광고 사업이 천문 연구를 방해하는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수많은 위성과 우주 광고 사업이 밤하늘을 뒤덮으면 향후 천문 연구는 물론 지구를 위협하는 소행성을 사전에 포착하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천문학회는 1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내셔널하버에서 열린 제245회 정기총회에서 밤하늘에 눈에 띄는 우주 광고를 전 세계적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천문학회 천문우주환경보호위원회 위원인 존 밸런타인 다크스카이컨설팅 수석 컨설턴트는 이날 브리핑에서 “우주 광고에 대한 유혹은 너무 커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워졌다”며 “일부 기업이 우주에서 광고를 수행할 탑재물을 발사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천문학계 우주 광고 반대 성명
우주 광고는 말 그대로 우주 공간을 활용하는 광고 방식이다. 아직은 생소한 영역이다. 하지만 최근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 같은 재사용 발사체 기업이 등장하고 민간 기업이 우주에서 사업을 벌일 기회가 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미 소형 위성이나 풍선을 이용해 우주에서 광고 사업을 하겠다는 기업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기업의 이런 움직임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다. 천문학은 오랫동안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희미한 빛을 포착하기 위해 어두운 하늘에 의존해 왔다. 우주를 관찰하려면 컴컴한 하늘이 필요하지만, 조명이나 스타링크처럼 빛을 반사하는 위성이 늘면서 별 관측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스타링크만 해도 7000기 이상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원웹도 544기의 위성을 발사했다. 우주 궤도를 도는 10㎝ 이상의 우주 잔해는 4만500개, 1㎝ 이상은 110만 개가 넘는다. 이런 물체는 지상의 빛을 반사하면서 먼 우주를 보는 시야를 가리는 훼방꾼이 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 경제가 확대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우주 광고 시장의 확장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천문학회는 이번 정기총회에서 조용한 밤하늘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으로 밤에 불빛이 유발하는 광공해와 무선 장치의 과도한 전파 간섭, 지구 저궤도를 도는 수많은 우주 쓰레기를 꼽았다. 또 스타링크 같은 저궤도 통신위성 서비스의 증가와 반사거울이 큰 우주 태양광 모듈에 이어 우주 광고를 새롭게 떠오르는 위협으로 지목했다.
밤하늘에 펼쳐지는 우주 광고는 주변보다 밝고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과학자들은 레이저를 쏘거나 빛을 반사하는 소재를 통해 밤하늘에 형성된 광고 이미지는 천문 연구를 심각하게 방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 연방법도 이런 점을 고려해 우주 광고와 관련한 장비를 우주로 보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기업이 우주에서 광고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다.

우주는 광고의 블루오션
미국천문학회가 연초부터 우주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천문학계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점점 우주를 매력적인 광고 공간으로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주로 가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우주 광고는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
다국적기업은 실제로 일찍부터 우주를 광고 공간으로 활용했다. 펩시콜라는 1996년 러시아에 광고비를 내고 콜라 캔을 미르 우주정거장으로 보내 우주에 노출했다. 피자헛도 2001년 러시아에 광고비를 내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피자를 배달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테슬라는 2018년 스페이스X의 팰컨 헤비 로켓의 첫 발사에 자사의 전기차 로드스터를 실어 우주로 쏘아 보냈다. 지금도 ISS에서 진행하는 시험에 장비를 공급한 기업이나 우주 발사체 발사, 인공위성 개발에 참여한 기업이 CI(기업 아이덴티티)를 노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조심스럽게 우주 광고가 시도되고 있다. 국내 맥주 회사인 더쎄를라잇브루잉은 우주까지는 아니지만 2022년 헬륨 풍선을 이용해 맥주를 성층권에 올려 보내는 광고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주 경제가 확장하면서 우주 광고 사업을 전면에 내세운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우주 광고 기업은 여러 대 큐브샛(소형 위성)이 지상 100~200㎞의 우주 궤도를 날며 레이저나 빛 반사판으로 광고주의 로고나 광고 이미지를 노출하는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큐브샛 우주 광고는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러시아 스콜코보과학기술연구소 연구진은 91일 동안 운영할 경우 순수익 1억1160만달러(약 1640억원)를 거둘 수 있는 큐브샛 50기로 구성된 우주 광고 군집 위성 시스템을 개발했다. 러시아 기업인 애번트 스페이스(Avant Space)는 지구 저궤도에 여러 대의 큐브샛을 쏘아 올려 광고주의 로고와 이미지를 노출하는 광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4년 4월 광고주의 로고와 이미지를 레이저 빛으로 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3U(유닛·1U은 가로·세로·높이 각 10㎝) 크기의 연구용 큐브샛을 발사했다. 군집 위성 배치와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전문가는 시험 위성 발사가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 기업인 스타트로켓(StartRocket)은 앞서 2019년 펩시콜라의 러시아 자회사와 계약을 맺고 우주 태양 돛이 달린 소형 위성을 이용해 에너지 음료를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펩시콜라 본사가 이후 광고를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 계획은 취소됐다.

우주 광고 전면 금지 vs 적극 활용해야
미국천문학회는 “적절한 국제 협약이나 조약, 법률에 따라 눈에 띄는 우주 광고를 전 세계적으로 금지할 것을 촉구한다”며 “유엔 산하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COPUOS)에 파견된 미국 대표단에 금지 조치를 옹호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눈에 띄는 우주 광고란 미국 연방법에 망원경이나 기타 기술 장치의 도움 없이 지구 표면의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우주에서의 광고를 뜻한다.
하지만 우주 광고와 천문 연구에 대한 과학자들의 위기의식에 대해 우주산업계가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천문학회가 우주 광고를 전면 반대하는 성명을 내자 미국의 문화 전문 매체 바스톨스포츠는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 우주를 내버려두는 것은 낭비이며 충분히 잘 관리한다면 우주 광고는 많은 수익을 내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우주산업계도 미국 천문학회 입장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내지 않은 채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재편될 우주산업의 향배에 더 주목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