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4일 중국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 모여 열광하는 중국 젊은이들. /블룸버그
2023년 9월 4일 중국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 모여 열광하는 중국 젊은이들. /블룸버그

얼마 전, 서울 중구 모처에서 발트 3국의 음악 관계자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외에도 유럽과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에서 온 기획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한눈에도 아시아권 참가자로 보이는 이와 명함을 교환했다. 그는 처음 들어보는 중국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간 세계 유수의 음악 축제를 직접 가보거나 최소한 이름이라도 들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생소했다. 내가 갸우뚱하자, 그도 ‘이런 반응, 익숙하다’는듯 재빨리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중국 지방 도시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인데, 이래 봬도 3일간 연인원 10만 명이 모인다. 다음에 기회 되면 꼭 와보라. 주로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특화돼 있는데, 전국에서 장르 팬이 모여들다 보니 거의 미국의 코첼라 같은 분위기가 나기도 하니까.”

프랑스의 ‘헬페스트’, 독일의 ‘바켄 오픈 에어’, 영국의 ‘다운로드 페스티벌’도 아니고 중국의 낯선 헤비메탈 페스티벌에 10만 관객이 모인다니⋯. 하긴, 중국 아닌가. 14억 인구의 대국.

MZ 사로잡은 틱톡, 中 대중음악 영향력 막강

요즘 중국에서 만든 생성 AI 딥시크발 충격파가 크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기업과 기관에서 정보 유출을 우려해 사용 자제 방침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사실 근년에 세계 음악계에서 중국 플랫폼이 준 충격파는 딥시크에 못잖았다. 그 충격이 ‘부드러운’ 폭발이어서 핵폭탄급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지,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탄도 간 핵미사일에 절대 모자라지 않는다. 그 중심에 중국의 바이트댄스가 개발한 ‘틱톡’이 있다. 2016년 출시돼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거뒀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와 잘파 세대(2010년 초반 이후 출생 알파 세대 +Z 세대)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엔터테인먼트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

음악계에서 틱톡 영향력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틱톡의 짧은 동영상에서 몇 초짜리 음악을 접한 뒤 많은 이가 이를 음악 시장과 연계된 실질적 소비로 이어간다.

음악 산업 분석 업체 루미네이트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틱톡 사용자 세 명 중 두 명(67%)은 틱톡에서 들은 음악을 자신이 사용하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찾아본다. 재미난 숏폼 영상의 배경음악쯤으로 듣고 영영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롱폼 플랫폼으로 이동해 시장과 차트에 반영되는 실질적 소비로 이어가는 것이다. 20204년 12월 틱톡 발표에 따르면, 2024년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곡 16개 중 13개가 틱톡 내 바이럴에 힘입어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낮은 연령대로 갈수록 좋은 팝송을 접하는 1차 플랫폼은 틱톡이며 여기서 점화된 ‘히트’가 스포티파이와 빌보드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로 가는 셈이다.

음악계 히트 공식을 뒤집은 중국발 틱톡 광풍은 일찌감치 숏폼 콘텐츠에 집중한 중국 기업의 혜안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실현하기 힘든 규모의 빅데이터 수집에서 출발했다.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의 경우,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월간 사용자 수가 7억6000만 명을 상회한다. 지금의 성장세로 보면 올해는 8억 명을 거뜬히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에서 인디 음악을 비롯해 숨은 음악이 주로 바이럴되는 ‘넷이즈 클라우드 뮤직’도 월간 사용자 수가 2억 명을 넘기면서 K팝과 J(일본)팝 제작사와 파트너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이들 플랫폼을 통해 K팝도, J팝도 아닌 브이 팝(V-Pop), 즉 베트남 팝이 그 중독성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경우도 빈발한 실정이다.

올해는 SM엔터테인먼트(SM)가 30주년을 맞는 해다. 한 가요기획사의 몇 주년 이상의 의미다. K팝의 거의 모든 것을 선도한 곳이 SM이기 때문이다. SM의 창립자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20여 년간 K팝계를 호령한 이수만씨가 고국을 떠나 먼저 정착해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는 곳도 바로 중국이다. 그가 설립한 A2O엔터테인먼트의 첫 데뷔 조인 A2O 메이는 중국어권 플랫폼에 음원을 먼저 공급했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SK의 중국몽은 음악인이자 IT맨으로서 꾸준히 개발해 온 테크놀로지와 셀러브리티 프로듀싱 기술을 중국 시장에 접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만씨는 “음악에는 국경이 없고, 없어야 한다. 가장 큰 마켓에서 가장 큰 스타가 나온다”면서 “중국 (음원 플랫폼) 외에도곧 스포티파이에서 A2O의 음악이 공개될 것이고, 소속 가수는 서구권에서도 활동하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SM은 중국과 악연이 많다. 이수만  전 프로듀서가 기획한 (당시로선) 신개념 아이돌 그룹인 엑소(EXO)는 애초 EXO-K와 EXO-M으로 나눠 데뷔했다. K는 코리언의 약자, M은 만다린의 약자다. 2000년 H.O.T. 의 베이징 공연 신드롬을 중국 현지 매체가 앞다퉈 대서특필하면서 등장한 단어가 ‘한류(韓流)’다. 이어 터진 슈퍼주니어의 중화권 열풍은 SM으로 하여금 중화권과 중국 본토 시장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관해 ‘계몽’했을 것이 분명하다. EXO-M은 그래서 미래적 기획이었다. 그러나 그 ‘수업료’는 비쌌다. 중국 기업의 대자본은 엑소의 중국인 멤버를 유혹했고 12명으로 데뷔했던 엑소는 순식간에 멤버 이탈로 9명으로 줄기도 했다.

중국으로 넘어간 K팝 아이돌 멤버는 중국 기업의 막대한 자본 투자, 거대한 시장의 소비만 만난 것이 아니었다. 앞에 언급한 기술 기반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의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도 했다. 정확히는 함께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엑소 출신의 레이, 갓세븐 출신의 잭슨 왕 등은 본토 플랫폼의 수혜에 힘입어 글로벌로 쏘아 올려졌고 각종 플랫폼에서 수억 회의 스트리밍을 기록하면서 세계적 규모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잭슨 왕의 경우, 블랙핑크나 르세라핌처럼 당당히 북미 최대 야외 대중음악 축제인 코첼라 페스티벌에 이미 2022년 출연하며 팝의 본토에 눈도장을 찍었다.

앞서 얘기한 국내 페스티벌과 콘서트 시장도 중국의 큰 잠재력이다. 중국 Z 세대의 문화 파워에 힘입어 록, 힙합, EDM 등 다양한 장르의 페스티벌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성업 중이다. 스트로베리 뮤직 페스티벌, 미디 페스티벌 같은 축제는 빠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베이징, 상하이를 넘어서 중국의 각 성으로 확대하며 프랜차이즈화한다. 당국의 규제로 길이 막혔던 초대형 해외 페스티벌의 진출도 가속화한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출발한 세계 최대 EDM 축제인 ‘울트라’의 경우도 그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 서울에서 열리다가 2017년 ‘울트라 차이나’를 론칭하면서 대국에 발을 디뎠다. 이들 국내외 페스티벌은 베이징, 상하이뿐 아니라 청두, 시안, 항저우 등으로 가지를 치면서 14억 중국인과 젊은 세대 음악 팬을 끌어모으고 있다.

임희윤 - 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 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임희윤 - 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 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몇 년 전, 필리핀의 인기 아이돌 그룹 SB19과 인터뷰를 했다. 그룹 리더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필리핀 팝이 세계 팝 시장에 다가가지 못한 것은 아직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해서라고 본다. 그러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날’은 곧 오리라고 본다.”

규제와 통제가 엄격한, 과거에 ‘죽(竹)의 장막’으로도 불렸던 중국의 팝 시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폐쇄적인 상황에서도 이미 글로벌 팝 시장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빅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향후 국제 정세에 따라서 중국은 미국, 일본, 유럽을 능가하는 팝 시장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소비와 생산은 물론이고 유통과 유행 선도의 측면에서까지도 그러하다. 우리 옆에 ‘괴물’이 있다. 먹히느냐, 친구가 되느냐는 우리 하기에 달려 있다. 

임희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