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자의 목숨 값을 승자가 독식하는 ‘오징어 게임’의 잔혹 동화는 시즌 2에서도 계속된다. 참가자 456명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로 시작한 게임은 단계마다 희생자를 늘리면서 동심의 놀이터를 붉게 물들인다. 치명적인 게임의 굴레가 계속 돌게 하는 원동력은 상금에 대한 참가자의 욕망이다.
황동혁 감독은 시즌 1에서 구축했던 유아적 놀이와 살인 게임, 파스텔 톤 유치원과 집단 수용소 공간 같은 역설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시즌 2에 새로운 게임 요소를 도입했다. 팽이치기와 공기놀이 등을 결합한 5인 6각 경기와 동요 ‘둥글게 둥글게’의 짝짓기 게임이 새롭게 소개됐다. 5인 6각 경기에서는 경쟁으로 승패를 가르는 대신, 정해진 시간에만 결승선을 통과하면 되는 규칙이 적용되어 참가자가 상대 팀을 응원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2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별점은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가 다수결 투표로 다음 게임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투표 과정의 알레고리
치열한 게임 끝에 숙소에 모인 생존자 앞에는 파란색 O와 빨간색 X의 영역이 통로를 중심으로 갈라져 있다. 참가자는 개인 번호 순서 또는 역순으로 나와 게임을 계속할지를 공개적으로 선택한다. 절반을 넘어 게임이 중단되면 모든 생존자는 추가적인 희생 없이 지금까지 축적된 상금을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상금을 얻기 위해 죽음의 게임을 계속하려는 참가자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경제적 결핍은 사회적 죽음 상태의 지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투표를 마친 참가자는 자신이 선택한 O 혹은 X 표식을 받아 가슴에 부착한다. 이후 같은 표식의 참가자끼리 모여 서면서, 양측이 투표 과정 내내 마주 보며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투표 방식은 오락 게임처럼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행위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다. 개인의 선택이 참가자 전체의 행보를 결정짓고, 다음 희생자가 될 누군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따라서 각 진영은 투표를 중단한 채 격렬히 논쟁하거나, 간절히 회유하거나, 위압적으로 협박하기도 한다. 찬성파와 반대파의 영역이 물리적인 벽이 아닌, 바닥에 그은 선만으로 구분된 공간 형식은 양측 간의 대립을 더욱 고조시킨다.
오징어 게임의 투표가 벌어지는 밀폐된 숙소는 윤리적 문제를 걷어내고, 그 의사 결정 과정의 형식과 성격만을 고려할 때 현대의 의회 공간과 연결될 수 있다. 의회 표결을 거친 법률안 등의 안건 또한 의원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직접 적용되며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 따라서 의원은 영화에서 대립하는 O·X의 인물처럼, 상대편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논쟁이 가능한 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 오징어 게임의 치열한 투표 과정을 이끈 것이 바닥의 선으로 구획된 열린 공간의 형식이라면, 현대 의회 공간은 의사 결정 과정에 어떻게 개입할까?

의회의 배치와 정치 시스템의 상관관계
2016년, 암스테르담의 건축가 그룹 XML은 유엔 회원국 139개국의 의회 본회의장을 분석한 책, ‘의회’를 출판했다. 이들은 각국 의회의 좌석 배치 형태에 주목하며, 의회 공간의 형식이 현대 정치 체계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탐구한다.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한 의회 본회의장의 형태는 ‘반원형 배치’다. 이 형태는 유럽에서 지배적이며, 벨기에와 이탈리아 등 19세기 신생 민족국가에 의해 선택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반원형 극장 형태를 빌려, 새롭게 형성된 국가 의회에 고대의 권위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반면, 영국의 ‘대립적 벤치 형식’은 오징어 게임의 장면처럼, 중앙 통로를 기준으로 긴 벤치형 좌석이 서로 마주 보게 배치된다. 양 진영 간 활발한 공방이 유도되며, 이들 사이의 통로는 격렬한 논쟁 중 칼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거리를 상징해 ‘소드 라인(Sword Line)’이라 불린다.
‘교실형 배치’는 의원이 일정하게 정렬된 줄에 앉아 한 명의 연설자에게만 집중하는 구조로, 의원 간 소통 가능성이 극도로 제한된 형식이다. 주목할 점은 이 배치가 민주주의 지수가 낮은 러시아, 중국, 북한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는 본회의장의 크기가 클수록 해당 국가의 민주주의 지수가 낮다는 분석과 함께 맞물리며, 의원 간 근접성과 상호작용이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과 깊이 연관됨을 시사한다.
1975년에 완공된 우리 국회 본회의장 역시 ‘반원형 배치’를 갖추고 있다. 이 구성은 민주적 협의 절차를 상징하는 듯하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교실형 배치와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 중심의 의장석을 향해 앉은 의원은 주로 같은 당 의원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의장석을 중심으로 원내 제1당은 중앙부, 제2당이 오른쪽, 제3당과 무소속 의원이 왼쪽에 자리하는 국회 관례는 상대 진영과 거리를 더욱 벌어지게 만든다. 다른 당 의원에게 호소하는 의원의 시선과 입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 공간이 실질적인 작동보다는 전통과 상징의 형식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한다.

시민에게 열린 의회 공간
오징어 게임과 의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 속 참가자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투표하는 반면, 의원은 주권자인 시민을 대신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민은 비록 본회의장에 좌석은 없지만,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의 최상위에 존재한다. 현대 의회 건축은 시민과 관계 맺음을 주요 화두로 삼으며, 이를 위해 투명성과 개방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대표적인 예가 1999년 완공된 베를린의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이다. 이 건축물은 본래 1894년 독일 제국이 세운 의회 건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폐허가 된 후 냉전 시대에 방치되다가 1990년 재통일을 계기로 재축이 추진됐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기존 건물의 외관을 유지하는 가운데, 제국의회의 위상을 상징했던 지붕 돔을 투명한 유리 돔 구조물로 탈바꿈했다. 본회의장 상부에 있는 이 공간은 모든 시민에게 개방되며, 외곽을 두르는 나선형 경사로는 방문객을 베를린 도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이끈다. 역사적 의회 건축물의 정점에 자리한 빛과 움직임의 시민 공간은 의회의 권력이 시민에게서 비롯됨을 상징한다.
유사한 경향은 2022년 국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설계안에서도 이어진다. 범유럽 건축가 연합 ‘유로팍(EUROPARC)’은 노후화된 기존 건물을 리뉴얼하면서, 반원형 본회의장을 상부로 재배치하고 그 최상층에 ‘그린 아고라’로 명명된 시민 공간을 계획했다. 이 공간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역의 자생식물을 모아 조성한 식물원으로, 본회의장의 개방형 천장을 통해 시각적 연계를 형성한다. 건축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건물 저층부를 가로지르는 공공 통로를 개방하여, 전·후면의 광장과 공원을 연결하는 보행자 흐름이 연속되게 했다. 이를 통해 유럽의회 건물은 시민의 일상을 담는 도시 맥락과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통제 가능한 넓은 외부 공간으로 둘러싸여 도시의 섬처럼 고립된 우리 국회의사당과 차별된다.

민주적 의사 결정을 촉진하는 미래의 의회
독일과 유럽의회 건물의 시민 개방성은 진보적이지만, 여전히 본질적인 의사 결정 과정의 혁신과 시민의 적극적 개입 가능성이 부족해 건축의 상징적 의미에 머물고 있다. 지난 1월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 세종의사당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민주주의의 정체성과 국민주권 그리고 기후 위기 시대의 탄소 중립적 건축의 가치를 설명했다. 독일과 유럽의회는 과거 건축물을 존중의 대상이자 제약 조건으로 가진 반면, 세종의사당은 21세기의 신도시에 신축된다는 점에서 혁신에 더 유연하게 열려 있다. 한 번 지어지면 시간에 갇히게 될 세종의사당은 의회의 핵심인 집단적 의사 결정 모델을 재고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