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디 서머필드 ‘어머니와 아버지’. /김진영
패디 서머필드 ‘어머니와 아버지’. /김진영

“사진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인간의 사랑이다.” 사진가이자 저술가인 게리 배저(Gerry Badger)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 사진이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리적으로 형체가 없는 감정인 사랑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표정, 몸짓, 분위기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그렇기에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진가의 깊은 관찰력과 감성을 요구한다. 사진이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는 예술적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패디 서머필드(Paddy Summerfield)의 ‘어머니와 아버지(Mother and Father)’는 작가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책이다. 두 사람은 60여 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오다, 어머니가 1997년부터 알츠하이머병을 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았다. 

작가는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부모 집 창문을 통해 정원을 내려다보다 정원에 나가 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매년 계절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작가는 1997~2007년 10년간 부모의 모습을 수천 장의 사진에 담았다. 

어머니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두 사람의 유대감은 끈끈했다. 사진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또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순간 속에서 부부는 조용히 묵묵히 서로를 감싸며 살아간다.

서머필드는 세심한 사진가의 눈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담았다. 그리고 이는 곧 부모에 대한 그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진영
서머필드는 세심한 사진가의 눈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담았다. 그리고 이는 곧 부모에 대한 그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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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파트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정원에서의 일상이다. 아버지는 잔디를 다듬고 물뿌리개를 들고 물을 뿌리고 떨어진 잎을 긁어모으며 정성스레 정원을 가꾸면서 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본다. 두 사람은 하얀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잔디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키 큰 나무와 관목으로 둘러싸인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부부는 여름의 뙤약볕에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쌀쌀한 날씨에는 코트를 입고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의 삶은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다.

두 번째 부분은 집을 떠나 웨일스 북부 바닷가에서 가족 휴가를 보내면서 담은 사진이다. 해변을 배경으로 켈트족에게 죽음의 상징인 까마귀가 나타나 낮게 날고, 바위에 앉아 푸드덕거린다. 부모는 함께 앉아 바다를 바라보거나 해변을 따라 짧은 산책을 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은 다시 정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딘가 달라져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더 이상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지 못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의자에 앉아 졸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다. 아버지도 예전보다 노쇠한 모습이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자, 떨어지는 빗속에 하얀 꽃이 보이고, 이들이 가꾸었던 정원은 정원을 보살펴준 두 사람의 부재를 암시하듯 방치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황무지가 된다. 그리고 손질되지 않은 정원에는 주인을 잃은 하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책은 이 같은 부재와 상실의 서사로 마무리된다.

대부분 정원을 배경으로 하기에 이 책의 사진들은 다소 반복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찬찬히 음미해 보면 과장된 사건이나 요란한 연출 없는 담담한 시선은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두 사람의 일상을 독자 역시 관찰하고 지켜보며 몰입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딘가 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두 인물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이 보이더라도 멀리서 촬영되어 선명하게 보이지 않거나 또는 뒷모습이나 얼굴을 가린 사진이 대부분이다. 서머필드는 이것이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인물을 지시하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독자가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부모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을 바라보며 그들의 사진을 찍어서, 천천히 사라져가는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다. 그들의 세계를 보존하고 싶었고, 무언가를 되살리고 싶었다. 나는 매일 집 창문으로 가서 부모님의 모습을 집착적으로 기록했고, 엄청난 양의 사진을 모았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잃은 것, 아버지가 아내를 잃은 것 그리고 결국 내가 두 사람을 잃은 것을 기록했다.”

서머필드는 세심한 사진가의 눈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담았다. 그리고 이는 곧 부모에 대한 그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과 상실에 관한 슬프고 감동적인 이 사진들은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젠가 떠나보내야만 하는 우리 각자에게도 덩그러니 남겨진 하얀 의자가 있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