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통령 직무가 멈췄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에게만 관세를 안 매길까? 절대 아니다. 곧 한국에도 고지서가 날아올 것이다. 미국이 대한(對韓) 관세정책을 발표했을 때 우왕좌왕하면 이미 늦다. 지금 당장 민관 합동 대미 통상 대응 조직을 꾸려야 한다.”
권혁세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2월 5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탄핵 정국이 맞물려 우리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권 고문은 이명박 정부 시절 8대 금융감독원(금감원) 원장과 2대 금융위원회(금융위) 부위원장을 두루 거친 정통 금융 관료다.
1981년 처음으로 공직에 입문해 2013년 금감원 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그는 32년 동안 국가 경제 시스템 운용 현장에서 일했다. 그가 공직에 있는 동안 우리 경제는 88 올림픽 전후 초고속 성장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다양한 부침을 겪었다.
특히 권 고문이 금융위·금감원 주요 직을 맡은 시기, 한국 금융은 잇따른 내우외환에 휘청였다. 그의 제1 임무는 위기 수습이었다. 2009년 금융위 사무처장을 거쳐 부위원장직에 올랐을 때 그는 진동수·김석동 위원장과 합을 맞추며 글로벌 금융 위기 대응에 주력했다.
2011년 금감원 원장으로 자리를 이동한 직후엔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권 고문은 칼을 잡았다. 권혁세호(號) 금감원은 청와대 만류를 무릅쓰고 저축은행 전수 조사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저축은행발 위기 확산을 막았다.
권 고문은 최근 한국 경제 및 금융 여건을 보면 자신의 금감원 원장 재직 시절이 기시감처럼 겹쳐 보인다고 했다. 권 고문은 “지금 우리가 경제 위기라고 단언하기엔 이르다”면서도 “대내외적 상황이 모두 좋지 않은 만큼 정말 위기로 닥치기 전에 손쓸 방도를 미리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고문과 일문일답.
지난 1월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전망한다면.
“2017년 트럼프 1기 정부 출범 때도 한국은 지금처럼 탄핵 정국 소용돌이에 있었다. 다만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은 8년 전보다 더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가라앉았고 건설 경기도 침체해 있다. 비은행 금융권 취약성도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한국의 수출 무역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출은 지난 2년간 우리 경제성장의 버팀목 노릇을 했다. 내수가 어려운데 수출까지 꺾이면 우리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글로벌 관세 전쟁 포문을 열었다. 한국에도 추가 관세가 매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 입장은 자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면 모조리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이 중국과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있다. 결국 한국 반도체에도 직간접적인 관세가 붙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다. 또한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새로 만들더라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지 불투명해졌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후인 2월 9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세계 6위 철강 생산국이자, 대미 4위 철강 수출국인 한국 철강 업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핵심 산업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금융 지원도 필요하다고 보는가.
“그렇다. 국책은행과 금융 공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기존에 우리 기업이미국 반도체 보조금까지 고려해 사업을 계획했으나 보조금 지급이 철회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은 약속이 철회된 보조금만큼 추가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때 한국산업은행이 낮은 금리의 대출로 기업을 도울 수 있다. 또한 대미 수출 여건 변화가 생겼을 때 무역보험공사나 수출입은행을 통한 보조금 지급도 검토할 만하다.”
아직 대미 통상 관련 뾰족한 수가 발표되지는 않았다.
“지금 한국은 국정 컨트롤타워가 없다. 일단 민관이 힘을 합쳐 대미 통상 대응팀을 조직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 등 정부 부처는 물론 유관 협회와 전문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예상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 혼란이 종식될 때까지 팔짱만 끼고 있으면 우리는 무너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이다. 셈이 빠르고 협상에 능하다. 트럼프 1기 정부와 비교해 현재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많이 늘어난 점을 트럼프 대통령도 분명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재빨리 미국이 원하는 바와 미국 산업의 취약점을 동시에 파악하고 협상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금감원 원장 재임 시절인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경험했다. 지금도 일각에선 저축은행 업계에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두 상황을 비교하자면.
“현상을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과거 대형 저축은행 중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이 자기자본은 적은데 고객 예금으로 무리한 사업을 굴렸다. 그러다 보니 대형사인데 1000억원 손실로 자본 잠식에 빠지는 일도 허다했다. 개인이 혼자서 어떻게 1000억원을 갚나. 저축은행은 파산하고 고객 예금은 보호받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개인 소유 대형 저축은행을 구조조정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반면 지금은 대형 저축은행 뒤에 금융지주 혹은 외국계 거대 자본이 있다. 위기 가능성이 작다. 당국의 건전성 규제도 더 강화됐다.아직 당국이 나서 전면적인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돌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장 불안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안 시그널을 보내면 국민은 흔들린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라도 발생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진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 때도 그랬다.”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2금융권 저네 연체율이 올라가는 등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예의주시해야 한다. 내수 경기가 얼어붙어 개인 사업자 대출 중심으로 연체 및 부실이 늘고 있다. 또 부동산 경기도 나빠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서 부실이 대거 발생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도 2007년 저축은행의 무리한 부동산 PF 사업 확장 후 서서히 조짐이 발생했다. 2024년 금감원이 부동산 PF 연착륙 대책을 발표했다. 사업성을 재평가하고 사업장 경·공매를 장려하고 있다. 시의적절하다. 부동산 PF 시장이 정상화돼야 건설 업계에도 새로운 활력이 돌 것이다.”
한국 플랫폼법 때린 미 USTR 대표 후보
이정아 기자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는 2월 6일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기업 독과점 규제 움직임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상원 재무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유럽연합(EU)과 한국 등 여러 국가가 특별한 요건이나 세금으로 미국 기술 기업을 겨냥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맞서야 한다”며 “우리 기업에 대한 규제를 다른 나라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려는 한국의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입법에 반대해 왔다. 시장을 지배하는 소수의 대형 플랫폼 기업이 부당한 행위를 제한하기 위한 법안이 중국 기업을 배제하면서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기업에 규제를 적용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리어 지명자는 한국이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면 강하게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플랫폼법 대신 기존 공정 거래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