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국가 넘어 품목으로 관세 폭탄
트럼프는 2월 1일(이하 현지시각) 멕시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붙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은 2월 4일 발효 예정이었는데, 트럼프는 발효일 하루 전인 2월 3일 멕시코·캐나다 정상과 통화한 후 관세 부과를 30일 유예하기로 했다. 다만 중국에 대해서는 유예 없이 2월 4일부터 10%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2월 2일 유럽연합(EU)을 향한 관세 전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EU에) 확실하게 관세를 더 부과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전 세계 모든 지역과 국가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품목 관세와 상호 관세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는 2월 10일 미국으로 들어오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25%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철강·알루미늄 관세 관련 “예외나 면제는 없다”라며 “모든 국가에 적용한다”고 했다. 한국을 포함해 EU, 일본,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9개국과 지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모든 예외 조치를 종료한다는 선언이다. 이에 따라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3월 12일부터 부과될 예정이다.
트럼프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에 이어 자동차·반도체·의약품등 특정 품목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2월 10일 “앞으로 4주 동안 매주 (관세 등 무역 관련) 회의할 것”이라며 “철강과 알루미늄뿐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는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다른 수입품으로 관세 부과 정책을 본격 확대한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대미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와 반도체도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는 “(관세 부과는) 미국으로 많은 일자리를 갖고 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며 “자동차는 매우 크고 중요한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는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을 거론할 때 주요 품목으로 다뤄지기만 했다. 반도체는 미국이 1997년 미국 주도로 발효된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기기에 관세를 매기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1997년 이후 28년 만이 된다. 반도체와 자동차는 한국의 1, 2위 수출 품목이다.

韓 핵심 수출품 '자동차·반도체' 직격탄
우리나라의 2024년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달러(약 51조347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미 자동차 수출은 2012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 후 100억달러(약 14조7980억원)를 넘었고, 2022년 200억달러(약 29조5960억원), 2023년 300억달러(약 44조3940억원)를 돌파했다. 대미 수출 1위 품목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미 반도체 수출도 2024년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서버, IT 기기 등의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자동차와 반도체에 대한 관세 폭탄 검토는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비상등이 켜진 우리 기업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고 제3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당장은 수출 감소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연간 생산량 50만 대 중 90%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의 경우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면서 국내 공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 현지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메모리 생산 시설이 없는 만큼 관세 부과 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다만 한국 기업이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의 70%를 점유하고 있고,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도 일본과 대만 등에 생산 시설을 갖춘 만큼 관세 부과에 따른 피해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트럼프가 자동차·반도체와 함께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제약·바이오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전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동시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최대 수출국이다. 한국 의약품 대미 수출액은 2024년 15억달러(약 2조2200억원)에 달했다. 신약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등이 주요 수출 품목이다.
트럼프, 맞춤형 ‘상호 관세’ 부과…“韓·日 동맹국도 예외없어”
트럼프는 멕시코·캐나다에는 관세 부과를 유예(30일)했고, 미국 내 불법 이민자의 본국 송환을 거부한 콜롬비아에 대해서는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가 9시간 만에 철회했다. 하지만 중국에는 유예 없이 2월 4일부터 추가 10%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은 2월 10일부터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은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15% 관세, 원유·농기계·대형차·픽업트럭 등에는 10%의 추가 관세를 즉각 부과했다. 미·중 2차 무역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는 13일 무역 상대국이 미국 상품에 적용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상대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상호 관세’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는 “미국의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에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비관세 장벽도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국가별 관세나 시행 시기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하워드 루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4월부터 부과할 수 있다”라고 했다.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는 미·중 2차 무역 전쟁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한미 FTA로 비관세 혜택을 받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상호 관세 부과를 불공정 보조금, 규제 완화, 부가가치세(VAT), 환율 등 비관세 장벽을 반영한 맞춤형으로 설계 중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일본과 한국 같은 동맹국도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 라며 “면제나 예외 없이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