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 시장에서 KFC의 8배 가까운 매출을 거두며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업체가 있다. 최대 시장인 미국의 점유율(2023년 기준)은 절반에 가까운 45.5%로 엎치락뒤치락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파파이스(11.9%), KFC(11.3%)를 합친 것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창업자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일요일엔 문을 닫는데도 2023년 매출은 216억달러(약 32조원)로 전년 대비 14.7% 증가하며 KFC(28억3000만달러)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같은 해 점포당 평균 매출은 870만달러(약 128억7426만원)로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270만달러·2022년 기준)를 압도했다.
미국의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 업체 ‘칙필레이(Chick-fil-A) 이야기다. 영어 이름인 ‘Chick-fil-A’는 닭고기를 뜻하는 치킨(chicken)과 뼈를 발라 저민 살코기를 의미하는 필레(fillet) 그리고 A등급 치킨을 사용한다는 의미로 알파벳 ‘A’를 조합해 만들었다. ‘작명 의도’를 생각한다면 우리말 발음과 표기는 ‘칙필레이’로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fillet의 영어 발음도 ‘휠레이’에 가깝다).
아직 우리나라엔 매장이 없지만, 외식 사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이름이다. 칙필레이만큼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양적∙질적 성장을 이룬 패스트푸드 업체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칙필레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약 3000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캐나다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도 일부 매장을 운영 중이다. 참고로 KFC는 147개국에서 약 3만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수익성 측면에서 칙필레이가 이룬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객 만족도에서도 독보적이다. 미국 소비자만족지수협회(ACSI)의 패스트푸드 만족도 평가에서 2024년까지 10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칙필레이의 전신은 1946년 새뮤얼 트루엣 캐시가 고향 조지아주에 문을 연 ‘드와프그릴(Dwarf Grill·난쟁이 식당)’이다. 칙필레이란 이름은 1967년 애틀랜타 교외에 식당을 오픈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댄 캐시는 창업자의 아들이다. 댄 캐시의 ‘포브스’ 추정 재산은 117억달러(약 17조3136억원)다. 기업공개(IPO)를 할 만큼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비상장을 고집하는 가족 소유 기업이다. 치킨 샌드위치와 너깃 등이 주메뉴인 칙필레이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패스트푸드 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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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 비결 1 : 최고의 맛에 대한 고집
칙필레이는 경쟁 업체에 비해 메뉴를 자주 교체하지 않는다. 한때 메뉴가 140가지가 넘었던 맥도널드에 비하면 구성도 단출하다. 대신 목표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인다. 칙필레이의 최고 인기 메뉴인 ‘오리지널 치킨 샌드위치’는 개발에 4년이 걸렸다. 집 뒤뜰에서 구운 바비큐 치킨 맛을 구현하기 위해 7년을 쏟아붓기도 했다. 간혹 시험 삼아 신메뉴를 선보여도 고객의 반응이 엄청나게 뜨겁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는다. 창업 초기부터 이어 내려온 ‘최고의 맛’에 대한 고집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라우샤(Rauxa)는 2016년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80개 업체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했다. 칙필레이의 경쟁사인 맥도널드에 대해서는 저렴하고 빠른 서비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응답이 주를 이룬 반면, 칙필레이에 대한 이미지로는 ‘맛’에 대한 언급(delicious, tasty 또는 yummy)이 두드러졌다.
식품 안전 관련 이슈에 대한 발 빠른 대응도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2년 가축 사료에 사용되는 항생제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칙필레이는 “향후 5년 안에 항생제 먹인 닭을 완전히 퇴출하겠다”며 패스트푸드 업체 중 처음으로 2014년에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 성공 비결 2 : 가맹 자격 강화해 서비스 차별화
프랜차이즈 창업은 미국에서도 인기 있는 ‘인생 2막’ 아이템이다. 칙필레이는 그중에서도 최고 인기 업체 중 하나다. 1만달러(약 1480만원)만 있으면 창업 지원 자격이 된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참고로 국내에서 맥도널드를 창업하려면 가맹비와 보증금, 인테리어 비용 등을 포함해 수억원의 자금이 든다. 비용이 저렴한 대신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회사가 지정한 위치에서 매장 하나만을 맡아 온전히 운영에 집중해야 하며, 수개월 동안 계속되는 교육과정도 이수해야 한다. 지원 자격도 남다르다. 과거 자산 관리나 리더십 분야에서 특출난 성과가 있으면 가산점이 붙는다. 까다로운 기준으로 운영자를 선발해 장기간 트레이닝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서비스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창업 비용이 저렴하고, 장사가 워낙 잘되다 보니 프랜차이즈 운영자가 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해마다 5만 명 이상이 지원하지만, 행운을 잡는 건 500명도 채 안 된다.
# 성공 비결 3 : 최적의 창업 입지와 시기
새뮤얼 트루엣 캐시가 1946년 칙필레이의 전신인 드와프그릴을 창업한 곳은 조지아주 애틀랜타 교외에 있는 조지아주 헤이프빌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12월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가 드와프그릴 인근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꾸준한 수입을 올릴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때마침 포드 공장이 문을 열지 않았다면 손해를 감수하고 몇 년에 걸쳐 메뉴를 개발하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포드의 헤이프빌 공장은 한때 북미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공장으로 꼽혔지만, 포드의 경영 악화로 2006년 10월 문을 닫았다. 1960년대 초 압력 튀김기(pressure fry-er)가 대중화한 것도 칙필레이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치킨 샌드위치를 맥도널드나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준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 성공 비결 4 : 행복하고 품격 있는 직원 만들기 위한 노력
‘직원 행복이 곧 고객 행복’이라는 믿음도 칙필레이의 서비스를 향상시켰다. 칙필레이는 1973년부터 ‘리마커블 퓨처스(Remark-able Futures∙주목할 만한 미래)’라는 이름의 직원 대상 장학 프로그램을 운용해 왔다. 1인당 최대 2만5000달러(약 3700만원)를 수령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10만 명이 넘는 직원에게 총 1억9100만달러(약 2826억4180만원)를 지급했다. 매장 직원이 ‘please(부탁드립니다)’와 ‘My pleasure(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등 ‘친절한 언어’를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신속한 서비스가 특징인 패스트푸드 업계라고 해서 친절을희생할 이유는 없다.
IPO 안 하는 이유는 ‘신앙’ 때문
칙필레이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기업 중 하나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창업자 캐시 회장은 설립 초기부터 주일(일요일)에 매장 문을 열지 않는 등 성경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경영 원칙을 고수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일요일에 교회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IPO를 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익의 일정 부분을 빈곤층과 학생 그리고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경영 철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IPO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칙필레이는 신앙적인 신념 때문에 어려움도 겪었다. 캐시 회장의 뒤를 이은 아들 댄 캐시 회장은 2013년 동성 결혼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동성 결혼 지지자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