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홍콩이 ‘패밀리오피스(FO) 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패밀리오피스는 거액의 금융자산을 가진, 이른바 ‘슈퍼 리치’의 재산을 굴리는 목적으로 설립된 개인 투자회사를 지칭하는 용어다. 초고액 자산가에게 법무·세금·승계 등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금 부담이 커 패밀리오피스 산업에 한계가 있는 한국의 부자도 홍콩 패밀리오피스 설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홍콩에는 2700개 이상의 단일 패밀리오피스(SFO)가 운영되고 있다. 홍콩에 모인 글로벌 패밀리오피스가 관리하는 자산 규모는 최소 1000만달러(약 150억원)다. 낮은 세율과 최소한의 규제를 바탕으로 수십 년간 글로벌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한 홍콩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받고 패밀리오피스 허브로 도약하고 있다.
실제 2024년 홍콩 정부는 2015년 중단했던 사실상의 투자 이민 프로그램인 자본 투자 입주 제도(CIES)를 재도입했다. 2025년초에는 CIES 신청 전 요구되는 최소 3000만홍콩달러(약 56억원)의 투자 유지 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했다. 또 가족 소유 투자 지주회사(FIHV)를 통해 이뤄진 투자도CIES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패밀리오피스 유치를 위해 투자 이민 문턱을 낮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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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0%, 세금 부담 최소화
홍콩의 가장 큰 장점은 각종 세율이 낮다는 점이다. 연간 과세소득이 200만홍콩달러(약 3억7422만원) 이하인 기업에는 불과 8.2%의 법인 세율이 적용된다. 200만홍콩달러 이상 기업의 법인 세율도 아시아 국가 최저 수준인 16.5%다. 홍콩의 개인소득세 세율 역시 약 15% 수준으로, 패밀리오피스 경쟁자 싱가포르보다 낮다. 낮은 세율 덕분에 기업과 개인은 재투자할 자본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특히 홍콩은 상속세가 0%라 ‘부의 승계’라는 패밀리오피스 설립 목적에 가장 유리한 세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이 50%인 점을 감안하면, 홍콩은 한국 자산가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딜로이트 차이나 부회장이자 국제 조서 파트너인 패트릭 입은 “홍콩에는 증여세나 상속세가 없다”면서 “세계 조세 시스템은 복잡하지만, 홍콩은 단순한 조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패밀리오피스를 겨냥한 별도의 세제 혜택도 있다. 2024년 홍콩 정부는 단일 가문에 집중하는 SFO를 위한 조세 감면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 도입으로 SFO가 운영하는 투자 운용 법인(IVH)에 대해서는 0%의 법인세율을 적용한다. 이외에도 다른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자본 이득세(자본 자산의 매각에서 발생하는 이득·손실에 대한 조세), 부가가치세(VAT), 투자 원천 징수세, 배당 소득세 등이 홍콩에는 없다.
명확성과 효율성이 특징인 홍콩의 조세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DM)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신흥국을 대상으로 매년 6월 발표하는 ‘세계경쟁력연감’에서 홍콩은 2024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 중 하나로 선정됐다. ‘조세 정책’ 부문에서는 세계 2위, 아시아·태평양 지역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패밀리오피스 설립 절차 간편
홍콩에서 신탁의 법적 존속 기한이 없다는 점은 슈퍼 리치가 홍콩에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자산가가 생전 자산 관리나 사후 상속 집행을 신탁회사에 맡기는 것이 일반화돼 있는데, 홍콩에서는 영구적으로 신탁을 운영할 수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자산을 보존하고 승계할 수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족 신탁은 100년 후 만료돼 약 3세대까지만 가능하다.
홍콩에서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는 절차도 간단하다. 회사나 신탁을 설립하는 절차와 다르지 않다. 홍콩 증권 선물 조례에 따라 규제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SFO는 증권선물위원회에 별도의 라이선스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또 SFO는 정부 기관으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SFO는 내부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고, 자산가는 민감한 정보를 기밀로 유지할 수 있다.
탄탄한 홍콩의 금융 인프라도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하기에 적합하다. 세계 100대 은행 중 70개 이상이 홍콩에 아시아 거점을 두고 있다. 또 회계, 보험, 국제 세무, 자산 관리, 투자자문 등의 금융 전문가 수도 약 26만7000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홍콩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시장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커넥터(connector)’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홍콩은 글로벌 자산가가 거주하기에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홍콩은 미식,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부문에서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홍콩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크라운월드그룹 창립자인 제임스 톰슨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사람에게 홍콩은 매력적인 곳”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