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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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어머니가 보행기에 의지해 또 나왔다. 나는 큰 소리로 “갈게요…어무우요…” 라고 소리쳤다. 못 들은 것 같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어머니도 손을 흔들어 준다. 94세 상노인이 시력은 좋다. 모자간의 반복되는 헤어짐과 배웅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집에 들른다. 떠나는 건 항상 나다. 어머니는 배웅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땐 배웅이 그렇게 싫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방학을 마치면 대구와 포항 등 도시로 떠났다. 그때마다 내가 배웅했다. 그 쓸쓸함이 싫었다. 나는 왜 친구들과 함께 도시로 갈 수 없는지, 자괴감에 빠져 며칠 속앓이를 했다. 배웅하고 난 다음 며칠은 울적해 공부도 되지 않았다.

그 뒤 배를 탔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나는 항상 떠나는 자가 됐다. 배웅받는 자가 된 것이다. 나는 10년간 배를 탔다. 외항 상선이었다. 화물을 싣고 외국 항구에 들어갔다가 곧 출항하는 일을 반복했다. 수많은 항구를 떠났다. 하지만 이국에서 배가 떠날 때 누가 나를 위해 안전 항해를 바라며 손을 흔들어 줄 것인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쓸쓸하다.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한 달 동안 힘들겠다는 생각에 울컥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 배웅을 받았던 몇 번의 경험은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미국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테드’라는 남성이었다. 우리 선박 대리점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와 친구가 돼 집에도 자주 놀러 갔다. 우리 배가 마침 연속으로 그 항구에 들어갔다. 배가 떠날 때마다 테드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배를 그만 탄 뒤, 중국 다롄해사대와 교류 중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STX다롄조선에서 근무하는 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한 번 만나기로 했다. 반갑게 나를 맞이하면서 조선소 구경을 시켜줬다. 그러고는 눈이 내리는 겨울날 다롄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내게 손을 흔들어 줬다. 검은 가죽점퍼를 입은 사나이다운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배를 타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배웅은 아버지가 만들어 줬다. 배가 묵호항에 들어왔을 때였다. 시멘트를 싣고 왔다. 축산항에 있는 집에 들러 잠을 자고 일찍 묵호항으로 돌아가야 했다. 10리 떨어진 곳까지 가야 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는 늦지 않게 데려다줬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은 나는 아버지의 허리를 꼭 잡았다. 덕분에 시간에 맞춰 탈 수 있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배웅해 주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잡은 아버지의 허리였다.

배웅해 주는 사람이 없는 떠남은 무척 쓸쓸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집에 계십시오. 나오지 마십쇼’라고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머니 모습이 보이면 기분이 좋다. 여운이 남아 좋다. 하나라도 더 기억할 것이 모자간에남는다. 배를 탈 때도 배웅 나온 사람이 없어도, 입항했던 항구 전체가 우리를 배웅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각국에 필요한 생필품을 실어 날라 주는 선원들이 고마워 항구 전체가 배웅을 하는 것이라고.

선박이 떠날 때 마지막까지 우리를 배웅하는 사람은 도선사다. 편지를 전달할 마지막 기회도 도선사에게 있다. 도선사는 항구 밖까지 배를 인도한 뒤 육지로 돌아간다. 그의 편에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탁한다. 우편료를 줘도 괜찮다고 한다. 선식 회사, 대리점, 도선사 같은 사람은 떠나는 선원의 마지막 부탁을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모두 들어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웅이다. 

더 이상 배를 타지 않으면서 이제 육지에 있는 나로서는 배웅할 기회가 많아졌다. 나도 배웅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에 배웅을 잘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마중의 소중함도 안다. 귀국할 때 공항이나 항구에서 누가 나를 기다릴지, 생각한다. 그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귀국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마중을 잘해주는 것도 우리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