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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황금기에 접어든 미국 입장에서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냉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 미국은 소련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스푸트니크 발사가 성공하며 그것이 헛된 믿음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보다 더 직관적으로 다가왔던 위협은 핵전쟁 공포였다. 그전까지 핵폭탄을 투사할 유일한 방법은 폭격기를 동원하는 것이었기에 레이더로 움직임을 사전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면, 미국 본토에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스푸트니크 발사는 미국의 핵전쟁에 대한 안정감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소련이 핵폭탄을 대기권 밖에서 미국에 떨어뜨리는 기술이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고, 관련한 일련의 사건을 묶어 ‘스푸트니크 쇼크’라 칭한다.

얼마 전 중국의 헤지펀드 환팡퀀트(幻方量化)가 2023년 세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개발한 거대 언어 모델(LLM)이 전 세계에 던진 충격은 스푸트니크 쇼크와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 2024년 12월, 딥시크-V3 모델이 발표됐다. 오픈AI가 개발한 챗GPT 등 미국과 우방국이 개발한 서구의 LLM과 유사한 성능을 보유한 모델이다. 딥시크가 주목받은 부분은 학습에 들어간 비용이다. 기존 LLM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최소 수천억원에 가까운 연산 비용이 들었는데, 딥시크는 불과 80억원 수준의 연산 비용만을 썼다. 기술적 우위를 보유한 오픈AI나 구글 등의 업체가 매년 조 단위 금액을 쏟아부어 가며 달성한 수준의 AI를 중국의 신생 스타트업이 해낸 것이다.

딥시크가 거대한 학습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한 것은 기존의 LLM 모델을 효율적으로 재활용한 덕분으로 보인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도 과거 유사한 운동, 예를 들어 야구나 하키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빨리 배우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인공 신경망을 제로 베이스에서 학습시키는 것보다 이미 어느 정도 학습된 모델을 기반으로 추가로 학습시키는 것이 통상 더 저렴하다. AI 분야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방식이다.

딥시크가 학습에 들어간 비용을 속였다는 의혹도 있으나, 개인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한다. 딥시크 측이 오픈소스를 지향하며 개발한 모델의 코드와 학습 방법을 논문으로 공개했는데, 이를 통해 제삼자가 쉽게 결과를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실제로 홍콩의 한 대학에서 딥시크가 공개한 논문에서 제안한 방식을 통해 낮은 비용으로 결과를 재현할 수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딥시크가 서구 사회, 특히 미국 기술 분야에 던진 충격이 스푸트니크 쇼크에 비견되는 것은 미·소의 냉전 체제와 닮은 미·중 패권 전쟁 국면과 핵폭탄만큼의 잠재적 파급력이 있는 AI라는 기술 특성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공산당 역사상 전례 없는 3연임을 하며, 미국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기술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AI 분야로 한정한다면, 중국은 아예 미국과는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AI의 외형인 수리적인 모델이야 일반적인 지식이기에 전 세계 누구에게나 공유될 수밖에 없지만, 특정 AI 성능을 결정하는 것은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다. 여기서 중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AI 분야에서미국과 중국은 그다음 국가와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는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중국은 내부의 방대한 자체 데이터를 통해 미국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견주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AI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현시점, AI가 가장 확실하게 판도를 바꿀 영역은 국방 분야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명백해졌듯, 미래 전쟁은 병사와 무기가 AI의 지원을 받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잘 훈련된 군대와 우수한 무기 체계만큼이나 AI 역량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양안  (兩岸·중국과 대만) 전쟁 가능성이 조금씩 커 가는 만큼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국가적 AI 역량 성장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든 분야에서 전임자인 조 바이든 흔적 지우기에 열심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대중국 AI 반도체 수출 규제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AI 연구를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으니, AI 학습에 필수적인 연산 인프라 확충을 어렵게 하려는 전략이다. AI는 데이터와 전력을 먹고 성장하는 데다 그 수준이 천문학적인 규모인 만큼 미국이 물리적 인프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킬 수만 있다면 중국보다 항상 한발 앞설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걸 깬 것이 딥시크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챗GPT 수준의 AI를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인 연산 인프라 없이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목줄 죄기 전략으로는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막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AI 판은 ‘미국에 있는 중국인 연구자’와 ‘중국에 있는 중국인 연구자’의 경쟁이라고 불릴 만큼 중국계 학자의 양적·질적 약진이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미국의 당혹감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딥시크가 스푸트니크에 비견되는 이유다.

딥시크 충격이 우리에게 던진 함의는 무엇인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딥시크가 우리에게는 호재라 판단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기술력으로 전 세계 5위권으로 평가받고 있는 상당한 AI 강국이다. 다만 선두 그룹인 미국, 중국과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은 LLM 출현 이후 더욱 가속화했는데, AI 경쟁이 ‘쩐(錢)의 전쟁’ 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특정 모델 학습에 수천억원이 드는 현실에서 한국의 연구자가 미·중의 연구자와 경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AI 연구자 사이에서는 AI 학습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드는 엔비디아에 돈을 갖다 바치기 위해 연구비를 따온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연구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압도적인 초격차 앞에서 결국 그들의 기술을 사서 쓸 수밖에 없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딥시크는 천문학적인 자본의 투입 없이도 현재 최고 수준의 AI와 유사한 성능을 내는 AI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이는 AI가 특정 국가가 오롯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보편 기술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이점이 우리가 파고들 수 있는 지점이다.

이제까지는 강력한 성능의 AI를 만드는 경쟁이었다면, 앞으로의 경쟁은 AI를 어떻게 활용해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나라가 전 세계 어디보다 잘하는 거다. 앞길이 순탄치는 않겠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