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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임원. 가히 샐러리맨의 별이라 부를 수 있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임원 승진 확률은 겨우 0.7% 수준이고, 신입 사원에서 임원 승진까지는 대략 22년이 걸린다고 한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도 1000명 가운데 단 7명만 선택되는 셈이다. 그런데 생각만큼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도 못한다. 국내 임원의 평균 임기는 약 5.6년이고, 10대 대기업은 더 짧다. 최고경영자(CEO)도 3~4년 정도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그들에게 ‘임시 직원(임원)’이라는 또 다른 씁쓸한 이름을 붙인다. 물론 구조적으로 계약직이고, 더 이상 올라갈 자리도 거의 없으며, 사업 결과를 온몸으로 책임져야 하기에 일반 직원과 단순 비교는 무리다. 그러나 임원의 생존과 성공 전략에 대해서는 한번쯤 차분히 고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임원 당사자와 소속 조직 모두를 위해. 

사전적 의미의 임원은 어떤 단체에 속해, 그 단체의 ‘중요한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야 한다. 이 중요한 일은 기업의 상황과 문화, 임원 개인의 역할에 따라 다르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동일한 정답이 존재하기 어렵다. 전문가도 임원 역할 중심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최우선은 사내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 당사자, 직속상관과 궁극적인 방향 일치(alignment)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조직을 떠나는 임원 중 상당수는 이 방향 일치를 하지 못한다. 눈치와 감만 가지고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선임 초기부터 정기적인 피드백을 구하면서 주도적으로 간극을 줄이고, 조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임원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임원이 수행해야 할 일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그 가짓수가 꽤 많을 것이다. 전통적 임원 리더십에서 꾸준히 강조되는 세 가지는 기본으로 들어간다. 예컨대,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 조직 문화(팀워크, 팀 역동성)를 이끄는 것,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세 가지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첫째, 장애물 제거 작업이다. 조직의 나쁜 관습, 불필요한 관행, 건강하지 못한 문화, 사람이나 팀 간 갈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부분이 막히면 전통적 리더십을 아무리 발휘해도 일의 진도가 제자리를 맴돌 수 있다. 때로는 새것을 더하는 것보다 먼저 나쁜 것을 제거하는 뺄셈을 더 잘해야 한다.

둘째,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현상을 정확히 관찰하고, 파악해 조직 내 건강한 습관과 루틴을 만들어 주는 개척자 역할이다. 새로운 방향 제시나 솔루션 제시, 솔루션 제시까지는 아니더라도 해결책이 나오도록 빌드업 작업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비즈니스 파트너로 조직을 연결하고 구조적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시 미국은 레인저·델타포스·네이비씰 등 최고의 엘리트 특수부대로 팀을 꾸렸지만, 전쟁 초기 적군의 유기적인 전술에 고전했다. 당시 미군의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사령관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은 각 부대를 연결하는 정보 교환 네트워크를 구축, 전세를 미군 쪽으로 끌고 왔다. 임원은 이런 일을 해야 한다. 

임원이 되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그 첫 번째는 과거의 주특기와 승리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임원 이전의 업적은 그저 ‘어제 내린 비’다. 임원이 된 뒤에 고전하는 사람이 꽤 많다. 

세계 최고 리더십 코칭 전문가 중 한 명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그의 저서 ‘일 잘하는 당신이 성공을 못 하는 20가지 비밀(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에서 과거의 좋은 업무 실력이 최고위급 리더십 지위에서는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말 그대로 임원 전까지의 성공 법칙이 임원 이후의 성공 법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임원이라는 지위는 완전히 다른 세계, 즉 ‘어나더 레벨(an-other level)’이어서다. 

두 번째는 도덕적 불감증으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임원의 또 다른 정의는 어항 속의 금붕어 같은 존재, 스텝 한 번 잘못 밟으면 바로 끝날 수도 있는 자리,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 싸움에 휘말릴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라는 임원이 실력을 발휘하고 잘나갈수록 누군가는 한번 제대로 물 먹여 보겠다고 벼르는 사람이 조직에서는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글로벌 굴지의 기업 M 사에서 일할 때 CEO가 보여준 이와 관련한 언행일치의 노력은 많은 귀감이 됐다. 그는 잊을 만하면 필자에게 “당신이 일 좀 못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막아줄 수 있어, 그런데 ‘인테그리티(integ-rity·정직과 도덕적 옮음)’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면 이 프로의 세계에서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법인 카드로 단돈 100원도 허투루 쓰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고, 여성 임직원과 오해받을 수 있는 일대일 식사나 커피 한 잔을 극도로 피했다. 또 업무 외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지위의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려고 했다. 3년 연속 전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낸 업적이 더 빛나는 이유다. 

임원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래서 결국, 임원은 한 마디로 누구인가. 여전히 어렵다. 조심스럽지만, ‘조직과 구성원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해주는 존재’ 정도로 정의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기본적 요소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차곡차곡 축적돼야 할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외적으로는 ‘오감’을 통한 종합적 관찰, 온몸으로 하는 경청을 거쳐 올바른 의사 결정의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굴지의 다국적기업에 신임 임원으로 입사한 직후, 콘퍼런스 참석차 미국 본사로 출장을 갔다. 한 최고위급 임원이 소수 임원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 가게 됐다. 가벼운 분위기에서 우리는 비즈니스, 리더십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가 끝날 무렵, 필자에게 마지막 질문 기회가 왔다. 최고위급 임원은 “내가 이 조직의 임원으로 생존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라고 물으며, 딱 두 가지만 했으면 좋겠다고 진지한 눈빛으로 답을 했다. 그는 “구성원의 말을 진짜 경청하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하도록 최선을 다해 주라”고 했다. 필자가 되물었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내가 정말 이곳에서 잘 될 수 있을까?”. 

그는 “No(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하지만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전 세계 어떤 조직에 가더라도 신뢰받는 임원으로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거다”. 이 짧은 일화를 한국의 모든 임원에게 일반화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임원이라는 존재는 팀장 때처럼 일 열심히 잘하는 단계를 확실히 뛰어넘어 전략적이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