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머니볼’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인물인 빌리 빈이 2011년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셔터스톡
영화 ‘머니볼’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인물인 빌리 빈이 2011년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셔터스톡

야구 경기에서 승률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전통적으로는 타율이 높은 타자와 강속구 투수를 확보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수를 영입하기에는 예산도 부족하고 구단의 브랜드 파워도 약한 약소 구단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기반 스토리텔링과 깊이 있는 인물 탐구로 유명한 베넷 밀러(Bennett Miller) 감독의 영화 ‘머니볼(Moneyball·2011)’은 혁신적인 전략으로 판을 뒤집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이하 애슬레틱스)의 실화를 다룬다. 연패에 허덕이던 리그 최하위 팀의 단장으로 부임한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이하 빌리)이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사용한 무기는 다름 아닌 ‘데이터’였다.

영화는 재정난과 전력 약화로 위기에 처한 애슬레틱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좋은 선수를 더 영입해도 모자랄 판에 팀을 이끌어야 할 주축 선수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경쟁 팀으로 떠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수 영입을 위해 구단이 제시한 예산은 뉴욕 양키스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스카우트 팀은 경험과 직관에 의존한 기존 방식을 고수하며, 타율과 홈런 개수에 매달려 선수 영입을 시도한다. 예상대로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때 빌리는 과감히 기존 방식을 버리고 예일대 출신의 피터 브랜드(조나 힐 분)를 영입해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한다.

그의 전략은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라는 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기존 야구계에서는 타율이 높은 선수가 좋은 타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세이버메트릭스는 타율보다 출루율(타자가 출루할 확률)을 더 중요한 지표로 본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는 홈런 개수와 무관하게 출루를 통해 팀이 득점할 기회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빌리는 기존 평가 방식에서 간과했던 바로 이점에 주목해, 출루율은 높지만, 몸값이 저평가된 선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한다.

신재훈 글로벌세아 그룹지원실 부사장 -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전 세아STX엔테크 대표이사
신재훈 글로벌세아 그룹지원실 부사장 -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전 세아STX엔테크 대표이사

데이터 기반 전략, 승리의 법칙

머니볼에서 볼 수 있는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DDDM·Data-Driven Decision Mak-ing)은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DDDM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빠르고 정확한 전략 수립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고객 맞춤형 서비스 제공과 리스크 관리에도 필수다. 하지만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숙제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공지능(AI)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AI는 단순히 데이터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보다 정교한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는 수백만 개의 주행 데이터를 학습해 안전성을 계속 높이며, AI 기반 챗봇은 언어 데이터를 분석해 보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구현한다. 기업은 AI를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빠르고 정확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처럼 AI는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을 정교하게 최적화하며,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 조선비즈 DB
/ 조선비즈 DB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원 최적화

머니볼이 주는 또 다른 전략적 교훈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빌리는 애슬레틱스가 인력과 자본이 풍부한 다른 팀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했다. 그에 따라 경쟁 우위를 확보할 핵심 요소를 면밀히 분석하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모색했다. 이 원칙은 기업 경영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방향성을 제공한다. 

다이슨(Dyson)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핵심 기술 개발과 차별화된 제품 디자인에 집중했다. 기존 청소기 업체가 필터 성능 개선에 집중하는 동안, 다이슨은 혁신적인 사이클론 기술(강한 원심력을 이용해 공기에서 먼지를 분리하는 기술) 개발에 예산을 집중 투입했다.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 혁신을 통해 고급 시장을 공략했다. 그 결과 다이슨은 프리미엄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했다.

넷플릭스(Netflix)도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대표 사례다. 넷플릭스는 무분별한 콘텐츠 확보 대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이 전략 덕분에 넷플릭스는 사용자 맞춤형 콘텐츠 제공 역량을 강화하며,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변화 관리, 저항을 돌파하라

새로운 전략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애슬레틱스에서도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는 스카우트 팀과 감독이 강하게 반발했다. 감독은 빌리가 제시한 데이터를 믿기보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선수를 기용했다. 구단 내부에서도 빌리의 전략에 대한 회의론이 퍼져 나갔다. 이러한 장면은 기업이 새로운 전략을 도입할 때 겪는 내부 반발과 닮아 있다. 실제로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은 늘 기존 방식에 익숙한 조직원의 저항에 부딪힌다. 따라서 성공적인 전략 실행을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내부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도록 변화 관리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세계 최대의 비디오 대여 업체로서 시장 지배자 위치에 있었지만, 연체료 수익 중심의 기존 비디오 대여 사업을 유지하려는 내부 반발로 인해 스트리밍 서비스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되었다. 반면, 아마존은 인터넷 기반 전자상거래에서 우월한 위치였지만 온라인 서점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과감히 벗어나 클라우드 컴퓨팅(AWS)으로 빠르게 확장하며 변화를 주도하여 시장을 선점했다. 이 두 사례는 변화 관리가 전략의 성패와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지속 성장과 전략적 통찰

데이터에 기반한 빌리의 전략은 애슬레틱스에 20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안겨주었다. 또한 늘 하위권을 맴돌던 애슬레틱스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보스턴 레드삭스는 빌리의 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도입하여 적극 활용함으로써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야구계에서는 데이터 기반 전략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 AI 활용, 자원 최적화, 그리고 조직 변화와 혁신은 기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그러나 데이터 자체만으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핵심은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 한정된 자원의 최적 활용 그리고 조직 내 저항을 극복하는 변화 관리에 대한 전략적 통찰에 달려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데이터 분석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경쟁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머니볼은 야구 영화를 넘어, 기업이 어떤 전략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신재훈 글로벌세아 그룹지원실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