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데뷔 16년째를 맞은 안송이(35)에게 본받고 싶은 ‘롤 모델’이 누구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안송이의 답은 골프 후배 박현경(25)이었다.
대개 골프 선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오래도록 전성기 실력을 유지하고, 은퇴 후에도 골프와 관련된 일을 하며 존경받는 선수 이름이 나온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50)나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55) 혹은 최경주(55), 박세리(48) 같은 국내의 레전드급 선수를 거론한다. 그런데 열 살 아래 후배 골퍼 박현경이 롤 모델이라니?
안송이의 설명이다. “(박)현경이는 2024년 동계 훈련 때 비거리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 10야드 이상 거리가 늘면서 정말 골프가 강해졌다. 스윙 자세도 더 멋있어졌다. 2024년 3승을 거두며 또 한 번 도약한 비결이 현경이의 그런 노력 덕분이라는 걸 옆에서 지켜봐서 잘 알고 있다. 나도 현경이를 따라서 비거리도 늘리고 다시 우승하고 싶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듣던 박현경은 “언니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으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줘”라며 웃었다.
박현경을 비롯한 후배가 KLPGA투어 최고참 중 한 명인 안송이에게 자극받으며 배운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안송이는 KLPGA투어 데뷔 10년 만에 첫 우승을 거두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지난해 10월 S-OIL 챔피언십에서는 최다 대회 출전 기록(360경기)까지 세웠다.

10대 초반 유망주부터 베테랑 프로 골퍼까지, 새벽부터 강훈련
외국 선수에게는 생소하고, 한국 선수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담금질 기간이다. KLPGA투어 11승을 거둔 이정민(33)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훈련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가해 ‘이 조교님’이란 애칭을 새로 추가했다. 이렇게 최고의 선수가 함께 훈련하며 결의를 다지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지난해 프로 무대에서만 14승을 거둔 이시우 코치의 빅피쉬골프아카데미는 지난 1월 초부터 베트남 호찌민 인근의 로열 롱안 골프클럽에서 동계 훈련 캠프를 열고 있다. 2월까지 연다. 이 골프장에는 이재혁 코치가 이끄는 GLS골프아카데미팀과 웹케시가 후원하는 선수 여섯 명도 함께 전지훈련 중이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인 로열 롱안 골프클럽은 닉 팔도가 설계한 코스가 포함된 27홀 규모의 골프장. 코스 관리 상태가 좋은 점이 전지훈련장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이 코치의 훈련 캠프에는 10대 초반의 아마추어 유망주부터 마흔을 앞둔 베테랑 프로 골퍼까지 50여 명이 새벽에 일어나 오후 10시쯤 곯아떨어질 때까지 오직 골프뿐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LPGA투어 2025시즌 개막전과 이어진 대회에서 공동 4위와 준우승을 거둔 고진영은 거의 매일 스윙 영상을 보내며 이시우 코치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시우 코치는 훈련 취지를 이렇게 말했다. “동계 훈련은 한 시즌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간이라는 점을 선수들이 잘 알고 있다. 몸 만들기, 스윙 연습, 쇼트게임과 퍼팅 연습, 연습 라운드 등을 통해 시즌 동안 흔들린 부분을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특히 트레이닝 전문가가 함께 와 체력 훈련에 힘을 쏟는다. 매주 한 차례씩 전지훈련 온 선수들로 토너먼트를 치른다. 프로는 1등에게 상금을 주고, 아마추어는 5명을 뽑아 시상하는 식이다. 1주일에 공식 휴식일은 토요일 하루지만, 그마저도 쉬는 선수가 없다. 순수하게 모든 시간을 골프에 쏟으면서 자신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을 몸으로 느껴"
지난해 데뷔 8년 만에 첫 승리를 거두고 2승을 더 보태 공동 다승왕까지 차지한 배소현(32)은 동계 훈련의 힘을 사랑한다. “뭔가 막연하게 알아서는 실전에서 믿고 사용할 수 없다. 온종일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것 같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몸으로 점점 느끼게 되면서 서서히 내 것이 된다. 더 좋은 것은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골프 외에도 행동이나 결정을 하는 방법 등 배우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배소현은 지난겨울 빡빡한 일정으로 무리한 탓인지 컨디션 난조로 5㎏이나 체중이 줄었지만, 예정대로 캠프에 참가했다.
지난해 일본프로골프(JLPGA)투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효송(17)에게 일과를 물었다.
“오전 4시 40분에 일어난다. 가벼운 체조로 몸을 풀고 클럽 하우스로 이동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오전 6시. 오전 6시 30분 첫 팀부터 차례로 18홀 라운드에 들어간다. 필드 레슨을 겸한 라운드를 마치고 나면 오전 11시 30분. 클럽 하우스로 이동해 식사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선수별로 샷 연습과 피지컬 트레이닝, 몸 관리 등이 이어진다. 오후 6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한다. 그리고 오후 7시 30분부터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빈 스윙 훈련 혹은 셔틀런, 체력 훈련 등을 한다. 일과를 마치고 나면 오후 10시. 샤워하고 몸을 침대에 누이면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토요일에 쉬지만, 그때도 연습장에 가면 코치가 있기 때문에 레슨을 받고 체력 훈련을 한다.”
해외까지 소문이 난 K골프 동계 훈련
중학교 때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2부 투어까지 뛰었던 애니 킴(한국 이름 김경미)은 이런 지옥훈련을 찾아온 경우다.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미국 주니어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훈련량이다. 주니어팀과 대학팀이 있지만, 이렇게 한곳에 모여서 합숙하면서 오랫동안 훈련하는 곳은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잠시 돌아왔을 때 예전부터 방송 보면서 배워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시우 코치에게 연락해서 빅피쉬골프아카데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동계 훈련에 참가한 적이 있다. 스윙부터 체력 훈련까지 궁금한 부분을 바로바로 전문가와 상의하며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허리 부상을 했는데 이번 동계 훈련을 통해 LPGA투어 진출이라는 목표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지난해 주니어 대회에서 8승을 거둔 김서아(13)는 “나중에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리 고생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연습 라운드에서 240m를 넘나드는 드라이버 샷을 날려 프로 언니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한국 최고의 골프 교습가로 선정된 이시우 코치에게는 해외에서 배우러 오는 선수가 적지 않다. 이번 동계 캠프에도 일본과 영국, 호주, 싱가포르, 미국 등 일곱 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K골프의 동계 훈련은 확실한 매운맛이다. 자신의 골프에 매운맛을 내려는 국내외 선수의 겨울 담금질은 해외에까지 소문이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