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보라이프플래닛이 회식 보험(미니 보험)을 정말 많이 팔았는데, 광고비·인건비· 부대 비용 등 운영 비용을 회수할 수가 없었다. 미니 보험은 건당 보험료가 낮으니 팔아도 수익은 적고, 고객을 더 확보하려면 또 광고비를 써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미니 보험은 디지털 보험사에 너무 치명적이다.”
김영석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는 최근 서울 용산구 교보라이프플래닛 본사에서 만나 ‘교보라이프플래닛이 지금껏 흑자를 기록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광고에만 의존하는 디지털 보험사가 보험료 1만원 안팎의 저렴한 미니 보험을 판매해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디지털 생명보험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은 2013년 설립 이후 아직 흑자 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교보라이프플래닛도 암·치매· 건강보험 등 장기 인(人)보험처럼 건당 보험료가 높은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봤다. 김 대표는 고객이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험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고, 가입 과정에서 상담원이 채팅·전화로 고객에게 조언을 건네는 ‘옴니채널’이 장기 인보험 판매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장기 인보험은 보험료 납부 기간이 3년 이상으로 긴 데다, 수십 개 특약을 적절히 설계해야 해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디지털 보험사 라고 해서 보험 가입의 모든 과정이 인간 개입 없이 진행되는 ‘디지털 완결형’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장기 인보험 판매를 강화하기 위해 취임 이후 ‘리부트’ 전략을 수립해 시행했다. 상담사를 20명 이상으로 늘려 고객이 언제라도 채팅을 통해 질문할 수 있도록 상담 플랫폼을 강화했다. 상담원은 교보라이프플래닛 직원으로, 보험 설계사가 아니다. 가입 시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가 없으니 타사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상품 혁신 차원에서 ‘주계약 상품’이 아닌 ‘주계약·특약’ 상품을 중점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지금껏 사망 보험금(주계약)만 지급하는 종신보험을 팔았다면, 이제는 사망 보장에 암·뇌·심장 질환 진단비 등 다양한 보장(특약)을 선택할 수 있는 종신보험을 팔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리부트 전략은 2024년부터 효과를 보고 있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의 지난해 초회 보험료는 약 8억4000만원으로, 전년(2억7000만원) 대비 세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신계약 건수도 같은 기간 약 두 배 증가했다. 보험료를 높였더니 실적이 더 좋아진 것이다.
김 대표는 “상품 구조가 다른 보험사와 유사해지면서 가격 비교가 가능해졌다”며 “고객에게 대안이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경영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 EY한영을 거치면서 카카오뱅크 설립을 돕기도 했다. 이후 AIA생명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역임했고, 최근엔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최고전략기획담당 임원을 지내다 지난해 12월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로 선임됐다.

교보라이프플래닛 역대 대표 중 첫 외부 인사다. 어떤 가능성을 보고 회사에 합류했나.
“경영 컨설팅 경력이 많다. 그동안 인터넷 은행 설립을 도왔고, 증권사·카드사 디지털 전환에도 참여했다. 유독 보험 분야만 디지털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의문이었는데, 시간문제일 뿐 보험도 디지털로 변모할 것으로 생각한다. 회사에 참여해 생명보험이 디지털로 바뀌는 것을 1년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가슴 벅찬 경험이 될 것이다.”
2013년 국내 최초 디지털 보험사라는 간판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디지털 시장을 완결형으로 정의한 것이 잘못됐다고 본다.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에 판매하는 상품도 보험료가 저렴한 미니 보험이나 주계약 중심이 었다. 이러한 시장은 10년 동안 1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실제로는 0.2% 성장하며 정체돼 있다. 반면 상담원에게 도움을 받아 인터넷에서 보험에 가입하는 옴니채널 시장은 최대 8% 성장했다. 남은 숙제는 이 옴니채널에서 건당 보험료가 높은 상품을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 이런 싸움만 남은 것 같다. 인터넷 은행이 전통적인 예금·적금·대출·송금·외환을 디지털로 전환한 것과 마찬가지다.”
보험료가 비싸고 보험료 납입 기간이 긴 상품은 디지털로 판매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요즘엔 건축설계도 혼자 하는 시대가 됐는데, 보험이 뭐라고 설계까지 받나. 고객 혼자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앱)을 개선했다. 다만, 아무리 쉽지만, 자세한 설명을 제시해도 고객은 궁금한 게 생기고 물어볼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없이는 디지털 전환도 공염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 혼자 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필요하면 채팅이나 전화로 조언받을 수 있게 상담 플랫폼을 강화했다. 이 구조라면 고객이 지불해야 할 판매 수수료가 없어진다. 고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상품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주계약만 있는 상품을 판매해 왔다. 주계약에 특약이 있는 타사 상품보다 당연히 보험료가 저렴하다. 이 때문에 다양한 보장을 원하는 고객은 상품 여러 개에 가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많은 고객이 주계약 상품 하나만 가입하고 떠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품을 주계약·특약 구조로 바꾸기 위해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타사 상품과 유사해졌기 때문에 가격 비교 가능성이 생긴다. 보험 설계사한테 견적을 받았다면, 교보라이프플래닛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가격을 비교해 보고 가입하라는 것이다. 고객은 대안이 생겼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건강보험은 보험 설계사가 먼저 고객에게 다가가 가입 필요성을 얘기해야 팔리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디지털 보험사는 광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 궁금하다.
“디지털 광고를 통해 고객을 모으는 것은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어떻게 하면 저비용 모객 구조를 만들 것인지가 중요한데, 다양한 플랫폼과 제휴가 필요하다. 지난해 네이버·카카오·토스는 물론 인슈어테크사, 은행, 건강 증진 플랫폼과 판매 제휴를 맺어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제휴처를 찾는 것보다 기존 제휴처와 관계를 강화해 성과를 낼 계획이다. 실제 은행 모바일 앱(모바일 방카슈랑스)에서 치매 보험을판매해 ‘중박’이 터졌다. 디지털 보험사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올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글로벌화다. 디지털로 생명보험을 파는 회사가 흔하지 않다. 디지털 생명보험을 10년 넘게 해오다 보니 아시아에서 제법 ‘러브콜’이 온다. 지난해 12월 ‘인슈어테크 인사이트’라는 보험 콘퍼런스에도 패널로 참여했다. 확률은 낮지만, ‘K디지털 보험’의 수출 기회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