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2024년 아르헨티나 주식시장은 전년 대비 203% 상승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여기에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인해 10년 넘게 추락했던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2024년 7월 암시장에서 1달러에 1500페소로 거래되던 페소화는 꾸준히 상승해서 2025년 2월 14일(현지시각) 기준 1055페소까지 상승했다. 대부분 통화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30% 이상 상승한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세계적으로 돋보이는 존재가 됐다. 페소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오랫동안 아르헨티나 국민은 여유 자금이 생기면 무조건 달러로 환전해왔지만 이제는 반대로 달러를 페소화로 바꾸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국민은 달러로 대출을 받아 페소화를 매수, 정기예금에 가입해 30% 이상의 높은 이자율을 노리는 캐리 트레이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꺾이자, 페소화 가치 상승
페소화 가치 상승은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이 낮아진 결과다. 월별 인플레이션은 2023년 12월 26%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떨어져 올 들어 3% 미만으로 낮아졌다.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선택한 방법은 긴축정책이었다. 무분별한 정부 지출을 충당하기 위한 통화 발행이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중앙정부의 지출을 크게 줄였다. 오랫동안 아르헨티나 정치권을 주도해 왔던 포퓰리즘의 영향으로 당연시되었던 각종 보조금이 대거 폐지됐다.
또 공무원 및 공공 부문의 임금이 삭감됐다.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금 축소와 더불어 버스, 에너지 등 각종 공공 서비스 요금도 인상됐다. 국민으로서는 소득 감소와 지출 증가를 견뎌내야 했지만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정부의 재정은 2023년 말 국내총생산(GDP) 2.9% 수준의 적자에서 2024년 하반기에는 1.5% 수준의 흑자로 반전됐다. 외환보유액도 증가했다. 2023년 12월 밀레이 대통령 취임 당시 마이너스 수준이던 외환보유액은 2024년 말 190억달러(약 27조4040억원) 수준으로 회복됐으며, 현재는 250억달러(약 36조600억원) 수준이다.
이런 변화는 아르헨티나 국민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2580억달러(약 372조1140억원)에 이르는 현금을 금융권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제도 변화에 따른 것이다.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은 불법적으로 미국 등 해외에 계좌를 개설하고 이것을 이용하여 달러를 보유해 왔다. 밀레이 대통령은 미국과 은행 정보 공유를 통해아르헨티나 국민의 미국 은행 계좌 내역을 통보받을 수 있게 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일정 기간 내에 해외 계좌 보유를 신고하면 면책해 주는 대신 일정 금액을 아르헨티나 은행에 입금하도록 했다. 신고가 늦어질수록 점점 더 높은 액수의 벌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제도에 따라 아르헨티나 국민은 서둘러 달러를 페소화로 바꿨고 이에 따라 환율도 안정되게 됐다. 무조건적인 원칙의 고수가 아닌 현실을 인정한 유연한 정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반나절에 40건 이상의 환전을 해주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환전상은 하루 종일 일해도 5건 미만의 환전 요구만 있다고 불평하게 됐다.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임대료 통제를 포함해 많은 규제로 인해 파키스탄 및 우간다와 비슷한 수준의 세계 145위의 경제자유지수를 기록해 왔는데 밀레이 대통령이 이를 대폭적으로 개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작업은 전 중앙은행 총재였던 페데리코 스투르제네거가 주도하는데, “사회가 나빠질수록 법이 많아지며, 지옥에는 법률만 존재할 것이다”라는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규제 폐기가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외환 거래 목표” 제시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은 밀레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협상력을 부여했다. 여소야대 상황이지만 밀레이 대통령은 의회와 협상을 통해 1년간 지속되는 비상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밀레이 대통령은 개별 법률을 하나씩 심사해서 폐지하지 않고 대통령이 일괄적으로 폐기할 수 있게 되었고, 18개 정부 부처를 절반인 9개로 감축하는 등 조치를 빠르게 시행하였다. 반면 연금 인상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일부 국민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체감 경기의 부진과 소득 감소 등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밀레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0%를 넘기면서 힘들더라도 개혁 조치가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데 아르헨티나 국민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지지율 회복세를 기반으로 밀레이 대통령은 장기간 지속되었던 자본 및 외환 통제를 점차 해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는 지속적으로 개인과 기업이 달러를 보유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해 왔으며 국가가 별도의 환율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외환을 통제해 왔다. 실제 가치와 동떨어진 공식 환율의 존재는 해외 투자자로 하여금 아르헨티나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소로 지적되어 왔다. 밀레이 대통령은 2026년 1월을 목표로 자유로운 자본 이동 및 외환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아르헨티나의 이와 같은 조치가 또 다른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의 긴축정책으로 인해 억눌렸던 달러 수요가 정책 변화에 따라 다시 급증할 경우 외환보유액 고갈 및 급격한 평가절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르헨티나가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확보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10억달러(약 15조865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는 방안을 놓고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아르헨티나는 IMF로부터 400억달러(약 57조6920억원)에 이르는 채무를 짊어지고 있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추가적인 대출은 어렵겠지만 최근의 경제적 성과는 IMF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아르헨티나는 협상 타결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IMF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페소화 가치의 상승은 곡물을 비롯한 아르헨티나 주력 수출 상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어 예상보다 외환보유고 확충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규제가 폐지될 경우 급속한 외화 유출로 인해 아르헨티나가 다시 외환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기톱으로 모든 규제를 썰어버리겠다는 파격적인 공약과 선거운동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밀레이 대통령에 대한 우려는 이제 많이 사라졌다.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아르헨티나 국민이 단기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더라도 이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빈곤율이 50%를 넘어서고 있으며 긴축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지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밀레이 대통령으로서는 짧은 기간에 자신의 공약을 달성하면서 국민의 생활수준을 다시 향상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