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로 인한 글로벌 권력 구조 재편에 속도가 붙은 지금,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동남아시아, 남미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사우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AI를 발전시켜야 한다.
중·저소득국(LMICs)을 포함하는 글로벌 사우스는 AI로 인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AI는 주권을 강화하고 모두가 함께 번영을 누리도록 돕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화와 착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수 세기 동안 글로벌 사우스의 노동력, 천연자원, 지식 체계는 글로벌 노스의 발전을 위한 연료 역할을 했다. AI 개발과 활용 또한 이 같은 흐름을 따를 가능성이 크며, 그 결과 글로벌 사우스는 공동 번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기술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글로벌 사우스는 이를 방지할 기회도 함께 누리고 있다. 필요한 방향으로 AI 기술을 활용하기에 충분한 인재와 자원, 비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체계적인 협력과 분산, 컴퓨팅 인프라 투자 그리고 풀뿌리 혁신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 지역사회에 가치를 창출하고 주체성을 강화하며,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더욱 공정한 기술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
기술 산업은 근본적으로 식민지 경제와 비슷하게 수탈적이다. 오픈AI나 메타가 개발한 최신 AI 시스템은 글로벌 사우스 노동자가 ① 레이블링(labeling)한 데이터에 의존하고있다. 그러나 글로벌 노스는 여전히 AI 산업과 그 수익의 통제권을 쥐고 있으며, 글로벌 사우스는 혁신가나 동등한 참여자가 아니라 단순히 이용만 많이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다.
② 전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26억 명이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챗GPT 구동의 근간인 거대 언어 모델(LLM)의 학습 과정에서 배제돼 있다. 그 결과 글로벌 AI 시스템은 서구 중심적 시각을 더욱 강화하며 글로벌 사우스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사우스의 역사를 지우고, 잠재력을 억누르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글로벌 노스는 AI를 계속 지배해 새로운 형태의 경제·문화 종속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 결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자와 그 미래의 지배를 받는 자 간 격차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이런 식민지적 종속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형 AI 모델이나 슈퍼컴퓨터 구축을 서두르기보다, 젊고 디지털 친화적인 인구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이 시급하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기존 인프라 부재는 혁신의 걸림돌로 인식돼 왔지만, 가장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낡은 시스템과 경직된 절차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더 가볍고 목적 지향적인 데이터 아키텍처를 필요와 ③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에 맞춰 유연하게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핍을 혁신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은 교육이다. 학교에서 코딩 수업을 필수 과목으로 도입하거나,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AI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베트남에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AI 기술 수용이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글로벌 사우스는 먼저 자체적인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프로그램, 세금 정책, 기타 지원책이 글로벌 사우스의 풀뿌리 혁신을뒷받침하는 핵심 요소가 되어야 한다. 일례로 싱가포르는 전략적인 투자와 경제적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는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의 지역사회와 기술 전문가는 현지화와 함께 AI 윤리, 거버넌스 형성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또 의미 있고 공정하며 협력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반면 글로벌 사우스의 지역 맞춤형 기술 개발과 활용의 자유를 저해하는 이니셔티브는 과감하게 거부해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는 AI 인프라를 함께 개발하고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강력하고 안전하며 포용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부 국가는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고, 다른 국가는 분산형 컴퓨팅 노드와 처리 센터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또 데이터를 생산·가공·구매하는 국가 간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각국 정부는 현지의 컴퓨팅 자원과 기술을 우선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런 협력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대화, 지식 공유 그리고 상호 지원이 필수다.
글로벌 사우스가 글로벌 노스의 AI 지배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글로벌 사우스가 AI 기술을 ‘평등을 구현하는 도구’로 활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이미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진정한 AI 혁명이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가나의 아크라, 브라질의 상파울루, 케냐의 나이로비,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펼쳐질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것이 마땅히 가야 할 방향이다.
글로벌 사우스에 데이터가 풍부하고, 지역사회 중심적이며, 포용적인 AI 생태계가 구축된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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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데이터 레이블링(data labeling)이라고 한다. AI를훈련하는 데 쓰는 원시 데이터(이미지, 텍스트 파일,동영상 등)를 분류하고, 정보성이 있는 데이터를 구분해 보강하는 작업을 말한다. 가령 사진 속에 나온동물이 말인지 소인지, 독수리인지 구분하거나 오디오에 있는 음성이 사람의 목소리인지, 고양이가 우는 소리인지 등을 분류해 정리하는 것이다. 데이터 레이블링은 사람 작업자의 손을 거쳐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작업자가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오류가있는 데이터를 분류하고, 음란·폭력 등 불건전한 내용이 담긴 영상이나 사진을 직접 삭제해야 한다는의미다. 이런 수작업은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데이터 레이블링은 인건비가 저렴한 글로벌 사우스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다 효과적인 레이블링을 위해 기계 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이를 ‘오토 레이블링(auto-labeling)’이라고 한다. 기존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원시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오토 레이블링은 속도는빠르지만, 기존 모델에 사용된 데이터의 오류가 잘못된 레이블링으로 이어진다는 한계도 있다. 이런 이유로 여전히 인간 작업자를 선호하는 개발 업체가많다.
②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6억 명이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미주 등 글로벌 노스는 인구의 90%가 인터넷을 사용하고있지만,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인구의 37%만이 인터넷을 쓰는 것으로 조사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③ 데이터 사용권이 출처가 되는 국가의 법률과 거버넌스 구조의 적용을 받는다는 의미다. 국가가 직접 나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국에서 생산된데이터의 현지화 및 국외 이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AI 시대의 도래로 데이터가 기술경쟁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데다,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까지 고조되면서 각국은 데이터 주권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