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로이’ 스틸컷. /판씨네마
영화 ‘트로이’ 스틸컷. /판씨네마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에 의해 사는가. 무엇을 남기길 바라는가.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자식, 부와 출세, 행복과 명성이겠지만 어떤 이에겐 불멸이다. 영원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자만이 얼마나 숭고한 것을 사랑했는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가, 기억되길 원한다.

트로이전쟁도 신의 변덕이 결정한 운명과그에 맞선 인간의 용기 있는 선택의 직조물이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바탕으로 대중적 재미를 더한 영화 ‘트로이’는 얽히고설킨 신화의 날실과 역사의 씨실을 꼬아 그때를 살았던 영웅의 인간적인 삶을 투사한다.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신의 여왕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그리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불화의여신이 보낸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 사과를 서로 갖겠다며 다투었다. 곤란해진 제우스는 인간 파리스에게 결정권을 주었다. 헤라는 최고의 권력을, 아테나는 전쟁의 승리를 주겠다고 했지만, 파리스는 최고의 미인을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 결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이 파리스 앞에 나타났다.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상대는 이제 막 동맹을 맺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 사랑이냐 전쟁이냐,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사랑을 얻으면 동맹은 깨지고 평화를 지키자니 헬레네를 잃는다.  그러나 피가 뜨거운 젊은 파리스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영화 ‘트로이’ 스틸컷. /판씨네마
영화 ‘트로이’ 스틸컷. /판씨네마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안방까지 들어와서 아내를 훔쳐 간 파리스의 목을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었다. 다만 트로이는 신흥 강국인 데다 너무 멀리 있었다. 그는 형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한다. 이제 선택의 공은 그리스 도시국가의 최강국,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에게 넘어갔다.

아가멤논도 선택의 교차로에 선다. 동생의 목적은 헬레네지만, 그가 원하는 건 트로이다. 한 번도 정복된 적 없는 나라, 신의 사랑을 받는다고 자부하는 트로이지만 난공불락의 성일수록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이 용암처럼 끓어오른다. 더 넓은 영토를 지배하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는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아킬레스는 야심 덩어리 아가멤논이 진작부터 싫었다. 하지만 그가 신뢰하는 오디세우스가 참전을 설득하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 아들에게 바다의 요정 테티스가 말한다. “영광과 죽음은 한 몸이지. 네가 떠나면 수천 년 뒤에도 영웅으로 추앙받겠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여기에 남으면 좋은 여자 만나 자식 낳고 잘살겠지만, 너는 곧 잊힐 거다.” 긴 인생의 평범한 행복인가, 내일 죽을지라도 불멸의 명예인가, 그의 선택은 분명했다. 

좋은 판단이든 나쁜 결정이든, 선택과 선택이 모여 역사의 강은 바다로 흘러간다. 트로이도 선택해야 했다. 헬레네를 돌려보낼 것인가, 파리스의 사랑을 인정하고 전쟁을 불사할 것인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사랑을 위해서야말로 싸울 가치가 있다”며 파리스를 격려하는 로맨티시스트다. 그는 뛰어난 궁수들과 장남 헥토르, 무엇보다 신이 트로이를 지켜주리라 믿었다. 

프리아모스의 후계자 헥토르는 언제나 용맹한 전사이자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지혜로운 전략가였다. 그는 헬레네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가멤논의 연합군을 얕보지 말라 충언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죽음을 달라는 동생을, 신이 보호해 줄 거라 믿는 아버지를 이기지 못했다. 만약 그가 더 모질게 뜻을 관철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트로이는 건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의 수레는 그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그리스 연합군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트로이로 향했다. 아킬레스가 해안에 가장 먼저 상륙했고 신전을 파괴했다.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는 트로이의 전세를 꺾어버리려는 의도였다. “왜 영웅의 삶을 선택했지?” 포로가 된 여사제 브리세이스가 묻자, 아킬레스가 답한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이렇게 태어난 거야.” 사제는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자신도 죽어야 하는 영웅의 운명을 슬퍼한다. 그러자 아킬레스가 다시 말한다. “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다 죽거든. 늘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거야.” 

아킬레스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죽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대의명분을 주어야 할 아가멤논은 그야말로 최악의 왕이었다. 아킬레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건 운명을 거스르는 선택이었다. 그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헥토르와 대결한다. 헥토르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아킬레스와 후회 없이 마주 선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선택하는 건 인간이다. 사실 파리스나 메넬라오스, 아가멤논은 고민했으나 선택한 건 아니었다. 사랑이든 복수든 영토든,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사익을 위해 달려간 그들은 운명이 손짓하는 대로 끌려갔을 뿐이다. 

영화 ‘트로이’ 스틸컷. /판씨네마
영화 ‘트로이’ 스틸컷. /판씨네마

트로이 목마의 꾀를 내어 기나긴 전쟁을 그리스의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조차 아가멤논을 따른 건 약소국 이타카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순응이었다. 그가 영웅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20년간 바다를 떠돌면서도 운명에 무릎 꿇지 않고 귀향의 의지를 꺾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아킬레스와 헥토르만이 아무런 이익도 없는 싸움, 죽음만이 드리운 막다른 길인 줄 알면서도 결연히 운명의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인간은 살며 선택하며 책임진다. 또는 후회하며 주저앉거나 다시 일어선다. 오직 강한 자만이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다. 핑계 대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의지하는 마음 없이 홀로, 숙명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을 불사른다. 현재의 행복, 그 너머를 위해 싸우는 것, 죽고 난 뒤 기억되길 바라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삶의 소망인가. 그러나 마지막 순간,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영원히 각인되고 싶은 쓸쓸한 희망조차 한 줄기 바람에 가볍게 날려 보내고 별처럼 반짝이는 불꽃으로 산화한 자, 그들을 세상은 불멸의 영웅이라 부른다. 

김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