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4. /폴크스바겐
ID.4. /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은 오랫동안 실용주의적 차 만들기에 집중해 왔다. 사람을 태우고 이동한다는 자동차의 본질에 더 다가서기 위해서다. 그래서 슬로건도 자동차 그 자체를 뜻하는 ‘다스 아우토(Das Auto)’를 써왔다. 화려한 수사나 꾸밈은 자동차 만들기에 필요 없다는 그런 고집스러운 가치관이 다스 아우토에 들어있다. 누군가 ‘전동화 시대에도 폴크스바겐의 실용주의는 여전한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하다’라고 답하고 싶다. 최근의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진화하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여전히 ‘사람을 태우고 움직인다’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 실용주의 전기차의 핵심 ID.4를 시승했다. 

2025년형 폴크스바겐 ID.4는 기존의 정제된 디자인을 이으면서도 세련미를 더했다. 폴크스바겐의 스테디셀러 ‘골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현란하지 않은 차분한 디자인이 최근 화려한 전기차 디자인과 궤를 달리한다. 무언가 빼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산업 디자인계의 오래된 말은 전기차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다. 

ID.4. 실내. /폴크스바겐
ID.4. 실내. /폴크스바겐

실내는 기존보다 커진 12.9인치 디스플레이를 넣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인포테인먼트(주행 정보와 즐길 거리) 시스템은 LG전자의 것을 쓴다. 폴크스바겐과 LG전자는 꽤 오래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전동화라는 새 시대에도 그 우정은 굳건하다. 화면 크기가 커진 덕분에 화면 안의 내용이 눈에 더 잘들어오고, 새로운 유저 익스피리언스(UI) 적용으로 조작 방식도 직관적이다. 다만 너무 수직으로 세워져 운전석에서 보는 각도가 다소 아쉽다. 화면을 조금 기울였으면 어땠겠냐는 생각이 든다. 

ID.4의 상위 트림인 프로(pro)에서는 IDA 보이스 어시스턴트 기능을 쓸 수 있다. 일종의 AI 비서다. 편하게 말하면 각종 기능을 수행한다. 가령 “더우니까 실내 온도를 낮추고, 열선 시트를 꺼줘”라고 하면 서로 다른 두 개의 기능이 각각 반응한다. 음성을 인식하는 정도는 꽤 높다고 하는데, 아직 복잡한 명령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5인승 실내는 꽤 넓다. 동력계가 간단한 전기차 특성이다. 가죽 시트가 아니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인데, 최근 많은 브랜드가 재활용 소재를 쓰기 위해 가죽 시트를 포기하는 추세다. 직물 시트도 나름의 맛과 멋이 있지만, 오염에 취약하다는 건 어쩔 수 없다. 쿠페형 SUV를 표방하고 있어 시트 위치는 높은 편이다. 파노라마 선루프로 공간 개방감을 확보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원래 대중 차를 고집했지만, 2010년대 초반부터는 고급 차에 가까운 니어 프리미어 전략을 쓰고 있다. 비슷한 브랜드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현대자동차(현대차)가 가격 대비 높은 가치를 앞세워 유럽 시장을 공략하자, 폴크스바겐도 ‘상품 고급화’를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폴크스바겐의 엔트리 차(기본이 되는 차)에도 여러 기능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해치백 골프의 자동 주차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있다. ID.4는 전 트림에 ADAS IQ.드라이브를 적용, 전방 추돌 경고, 긴급 제동, 차선 유지, 사각지대 감지 등의 기능을 쓸 수 있게 했다. 또 프로 트림에서는 이머전시 어시스트, 트래블 어시스트 등을 쓸 수 있다. 

시승 차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기능을 사용하려면 스마트폰을 연결해야 한다. 요즘 자동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을 점점 쓰지 않는 추세라지만, 기본을 강조하는 브랜드가 기본적인 내비게이션을 갖추지 못했다는 건 아쉽다. 기존 수입차 내비게이션의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최근 국내 내비게이션 업체와 협업도 늘고 있는데, 이런 시도 역시 보이지 않았다. 

/ID.4. 폴크스바겐
/ID.4. 폴크스바겐

전기 동력계는 최고 출력 286마력, 최대 토크 55.6㎏f·m의 전기모터와 82.836 배터리의 조합이다. 이전 ID.4와 비교해 출력은 40% 늘고, 토크는 75% 향상됐다. 전기모터가 개선된 덕분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 시간은 6.7초다. 이 성능은 자동차 시대 변화에 따라 점차 중요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내연기관과 전혀 다른 동력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전기차에도 어울리지 않는 수치지만, 여전히 많은 자동차 회사가 강조하는 건 마케팅적인 이유다. 

배터리는 국내 기준 최대 주행거리가 424㎞로, 이전보다 30㎞ 더 멀리 간다. 배터리 관리를 잘할 경우에는 500㎞ 이상 주행할 수 있다. 175㎾ 급속 충전을 지원하는데, 배터리 용량 10%에서 80%까지 28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는 전기차 특유의 울컥거림이 적다. 요즘 많은 전기차가 회생제동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이렇게 세팅한다고 한다. 자동차의 기본을 중시하는 폴크스바겐도 이런 성향으로 차를 개발하고 있다. 전기모터는 토크 전달이 즉각적이다. 페달을 밟는 것과 동시에 힘이 바퀴로 전달된다는 의미로, 소위 ‘치고 나가는 맛’이 있다. 차가 경쾌하게 튀어 나간다. 전기차의 이런 가속 반응이 좋아 전기차만 계속 타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과거의 내연기관차도 폴크스바겐은 부드러움 속 탄탄함을 중시했다. 전기차 역시도 그런 성향은 바뀌지 않아 내달리는 데 어려움이 없고, 그렇다고 통통 튀는 불편함은 줄인 하부 세팅이 인상적이다. ID.4는 기본적으로 뒷바퀴 굴림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낮은 무게중심이 어울려 동력 손실이 줄고, 안정적인 핸들링 성능을 보인다. 

도심 구간에서는 편안한 운전이 가능하다. 노면 반응도 동급의 다른 전기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는 약간 불편함이 있다. 차가 무거운 탓에 턱을 넘는 반응이 살짝 무디다. 

폴크스바겐 티구안, 골프, 파사트 같은 차가 내연기관 시대에서 소비자에게 오랫동안사랑받아 온 이유는 빼어난 디자인도, 놀랄 만한 성능도, 엄청난 고급스러움도 아니었다. 차의 본질, 그 기본을 탐닉하는 폴크스바겐의 자세와 가치관이 잘 녹아 있는 제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ID.4는 전동화 시대에 골프, 티구안의 역할을 해야 할 차다. 그만큼 기본기는 잘 갖춰졌다는 의미다. 다만 골프를 티구안이 받치고, 티구안을 파사트가 끌어줬듯, ID.4를 받쳐주는 다른 전기차가 보이지 않는 게 약간 아쉽다. 

ID.4의 가격은 라이트(lite) 5299만원, 프로 5990만원이다. 2025년 국고 보조금은 422만원이 책정됐다. 

박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