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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간이 시작됐다. 트럼프 한마디에 증시가 요동친다. 초미의 관심사는 관세정책이다. 협상 카드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1930년대를 소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언급되고 있다. 다행히 트럼프의 발언은 예상 범위에 머물렀고, 주가는 우려를 딛고 올라섰다. 무엇보다 한국과 유럽연합(EU) 같은 대미 무역 흑자국의 주가가 상승하자, 관세는 압박 수단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전 세계 경기를 이끄는 미국 경제가 가라앉을 거란 우려 역시 잠잠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재점화되면서, 달러 강세와 미국 금리 상승이 뒤따르고는 있지만, 이 역시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는 마법을 이야기한다. 경제는 3% 성장하고, 임기 내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줄이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안정화될 거라 자신한다. 재정 적자는 지출 축소와 성장으로 극복하고, 미국 내 제조업을 강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동시에 일일 에너지 생산량을 300만 배럴로 늘려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고, 금융 규제 완화로 미국 국채 수요를 늘린다면 달러 강세와 고금리도 주춤해질 거라 주장한다. 아마도 인위적인 달러 약세 정책이 뒤따를 것이다. 정책 효과가 실제 작동한다면,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과거 금융의 역사가 주는 교훈 때문이다.

세계경제 나락 빠뜨렸던 후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주도권을 잃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인적, 물적 손실은 과거와 비교하기 힘든 재앙적 붕괴였다. 초인플레이션 파도가 찾아왔고,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기반 경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저물어가는 유럽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미국이었다. 전쟁 전 채무국에서, 전쟁 후 세계 제일의 채권국이 됐다. 강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1920년대 미국은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폰지 사기의 창시자 찰스 폰지는 땅을 매각해 돈을 벌었고, 월스트리트에선 수많은 벼락부자 스타가 탄생했다. 지금의 애플처럼, 1920년대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하고,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 기술혁신의 총아가 됐다. 이와 같은 혁신 기업이 1920년 주가 상승을 이끌며, 1921년 다우존스는 64에서 1929년 9월 381까지 여섯 배 가까이 상승한다. 그리고 1929년 10월 24일(현지시각) 버블이 터졌다.

윤지호 경제평론가-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경제평론가-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주식시장 붕괴는 왜 일어난 것일까. 사람들이 돈을 빌려 주식을 너무 많이 샀기 때문일까. 주가가 급락하니, 개인 파산이 늘어나고, 결국 은행이 망했기 때문일까. 많은 이는 부채로 부풀려진 자산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 정치인이 선택한 경제정책이 문제를 잉태시킨 원인 제공자라고 본다.

‘전간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약 21년 동안을 일컫는다. 당시 경제적 특징을 요약하면, 빈부 격차와 전반적인 과잉생산이다. 전간기 시대를 소환한 이유는 정치 때문이다. 주가는 경제의 지배를 받고, 경제는 정부 정책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선거에서 어떤 정치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경제가 변하고, 주가는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미국 우선주의가 위기의 출발점이었다. 미국 우선주의로 인한 문제가 외부로 드러난 것은 제31대 대통령으로 허버트 후버가 당선된 이후였다. 경제와 주식 호황에 힘입어 1928년 공화당은 손쉽게 승리했다. 하지만 후버의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인 1929년 가을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1930년 경제가 무너지면서, 연말까지 2만6000개 직장이 파산하고, 400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 초조해진 후버는 악수를 둔다.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높여 어려운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정책을 제안한다. 유럽의 농산물 공급과잉으로 어려워진 자국 농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선거 공약이었다. 농산물 관세는 올리되, 공산품 관세는 내리자는 법안이었지만, 정치가 개입되며 법안은 파국으로 간다.

공산물 제조업자의 저항을 감안해 농산물과 공산품 관세를 동시에 올려버린 ‘스무트-홀리법’을 1930년 제정한다. 미국 수입 관세율이 59.1%까지 높아졌다. 법 제정 후 미국을 포함, 전 세계의 경제를 나락에 빠트린다. 상호 보복 조치로 전 세계 교역량이 급감하며, 대공황에 본격 진입한다. 경제가 회생한 것은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간기 시대가 종언한 뒤였다.

트럼프, 인위적 달러 약세 밀어붙일 듯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스무트-홀리법이 소환되고 있다. 공약으로 내세운 보편 관세와 유사성 때문이다. 2025년 우리가 마주한 세계도 그러하다. 미국 주가는 급등하는 가운데, 미국인의 정치적 선택이 고립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모든 걸 가져가는 경제 상황도 유사하다. 1920년대 라디오, 자동차 등의 기술혁신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버블로 치달았듯, 지금도 인공지능(AI) 기술혁신이라는 모멘텀으로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호황 속에서 공화당이 집권했고, 이들은 감세와 고립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국경의 경계 비용은 증가 일로다.

트럼프가 과거의 실패를 답습할까.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이다. 무엇보다 보편 관세가 단기에 끝난 좋은 선례도 있다.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1971년 시행한 관세정책이다. 당시 닉슨은 불공정한 환율이 미국 무역 적자의 원인이라고 봤다. 독일과 일본이 수출을 위해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유지해 온 것을 비판했다. 1971년 닉슨은 금 태환 정지 발표와 동시에 모든 수입품에 일시적으로 10% 관세를 추가한다. 보편 관세는 다른 나라를 압박해 양보를 이끌어내는 수단이었다. 저항은 길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스미스소니언협정을 통해 미국의 달러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엔화와 마르크화는 달러 대비 절상된다. 닉슨은 10%의 관세로 18%의 달러 약세를 만들어냈다. 4개월 뒤 예정대로 보편 관세를 철회했다. 1972년 재선을 노린 승부수는 성공했고, 닉슨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다.

닉슨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쇠락기에 들어서게 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을 야기한 것이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자 달러 가치는 급락했고, 결국 미국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수입 가격이 올랐지만, 물가통제로 인해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해 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1973년부터 물가는 치솟고, 실업은 늘고 경제성장이 둔화했다.

닉슨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음에도 트럼프는 후버가 아닌 닉슨이 되길 원한다. 닉슨에게 있어 관세는 조연이었고, 주연은 인위적 환율 조정이었다. 세수 체계에서 관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1930년대보다는 1970년대에 가깝다. 1930년은 관세와 재산세를 합친 기타 세금의 세수 비중이 30%에 달했다. 반면 2025년 예상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미국의 상품 수입은 GDP의 12.7%로 상당히 높아져 있어 관세로 인한 세수 효과는 작아도 관세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단순히 60%가 넘어서는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의 대응책으로 관세 인상을 주장할 가능성은 극히 작은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관세를 통해 무언가 원하는 것을 협상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오히려 1971년 닉슨의 보편 관세 인상과 유사하다.

머지 않은 시기에 트럼프는 인위적 달러 약세를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적으로 타국 통화의 가치를 임의대로 강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닉슨이 그러했듯 트럼프는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제2의 플라자 합의를 통해 저평가된 무역 흑자국 통화를 강하게 만들 수 있고, 미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 부활을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웠다. 제조업이 강해지려면, 타국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야 한다. 달러 강세보다 약세가 미국 기업에 유리하다. 달러 강세가 정점을 치는 것만으로도, 한국 증시는 2024년과 다른 2025년이 될 것이다. 한국 증시는 원화 약세에서 정상화로 나아갈 때 성과가 가장 좋았다. 

윤지호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