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는 2월 12일 제2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송파구 잠실동 등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 아파트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 상가·토지 등을 거래할 때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직접 거주 또는 운영 목적이 아니면 매수할 수 없도록 설정한 구역을말한다. 서울시는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통해 지역 단위로 광범위하게 지정했던 허가 구역을 핀셋 지정으로 전환해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가지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작년 하반기 대출 규제와 정국 불안정, 지방 미분양 아파트 누적 등으로 열기가 식어가던 부동산 시장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중심으로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후 일주일간 강남 3구의 아파트 평균 거래 가격은 8.0% 올랐지만, 나머지 22개 구의 평균 거래 가격은 2.6% 하락했다. 부동산 투자자 사이에서는 ‘정부가 투자를 제한하는 곳에 투자하고, 투자를 장려하는 곳은 피하라’는 불문율이 있어 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정부가 앞으로 유망한 곳을 찍어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거시경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번 해제 조치로 그동안 억눌려 있던 해당 지역의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역사적으로 토지거래허가제도의 도입은 1970년대 강남 개발과 맞닿아 있다. 1969년 당시 제3한강교로 불리던 한남대교의 완공,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그리고 양택식 서울특별시장이 발표한 ‘남서울 개발계획’으로 영동지구 도시개발 사업이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강남 지역의 부동산 투기가 확산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8년 12월 국토이용관리법을 개정해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당시에는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가 모두 없었기에,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불투명한 블랙박스였다. 정부조차 부동산 구입 자금의 출처나 실소유주, 정확한 거래 가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토 개발을 추진해야 했기에, 토지거래허가제라는 강력한 규제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서울도시계획 이야기’라는 책에는 이 시기 강남 개발의 역사와 당시 사회 분위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1970년대 재벌조차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기에 정치권이 강남 개발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음을 시사하는 일화를 담고 있다. 이처럼 강남 개발은 시작부터 한국 사회의 불신과 욕망 그리고 불투명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정체였다고 할 수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도입 이후 여러 차례 지정과 해제를 반복해 왔다. 최초의 토지거래허가구역은 1985년 충청남도 대전시·대덕 연구단지 예정지(약 27.8㎢)다. 더욱 흥미로운 사례는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에 따른 전국적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다. 당시 정부는 금융기관에 실명으로 보관하기 어려운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급격히 유입될 것을 우려했다. 이에 3개월이라는 한시적 기간에 국토의 93.8%를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단행했다. 고병우 당시 건설부 장관은 ‘금융실명제 실시로 장기적으로는 기존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에 대한 투기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며, 빠른 시일 안에 자체 토지, 주택 전산망을 국세청 종합과세 전산망, 내무부의 행정 전산망, 금융계의 금융 전산망을 연계한 종합적인 전산망으로 구축해 부동산 거래를 파악, 투기 여부를 확인해 나가기로 한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가 얼마나 ‘깜깜이’ 상태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켜야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전례 없는 경기 침체로 인해 1998년 4월 정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전면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경기가 회복된 이후 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 사업 추진 지역을 중심으로 허가 구역을 확대해 2007년에는 지정 면적이 2만61㎢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가 안정세가 지속되면서 정부는 허가 구역을 점진적으로 해제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토지거래허가구역은 2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경기 침체기에는 축소하고, 시장 과열 양상이 나타나면 확대하는 방식으로 지극히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여왔다.
1978년 토지거래허가제도가 도입된 이후 우리 부동산 시장은 다음과 같은 환경 변화를 겪었다. 첫째, 한국 경제는 인구 감소로 인한 구조적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 중심으로 분포하면서 집값 양극화는 이미 불가피한 현실로 자리 잡았다. 둘째, 2006년 이후 축적된 실거래가 데이터를 통해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에 버금가는 정보 생성과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자에게 부동산 투자는 생애 최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레버리지 투자처로, 예측 가능한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셋째, 정부 역시 198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투명한 금융 정보와 부동산 거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토지거래허가제도는 단기간 특정 지역의 가격을 억제하는 것 이상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 이번에 여실히 증명되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정치권의 ‘자기 임기 동안만 무사하면 된다’는 근시안적 태도와 결합해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표방하는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토지거래허가제도는 이미 퇴장 시기를 놓친 듯하다. 이번 해제 시점에는 아쉬움이 있으나, 종합적 관점에서 부동산 정책을 재설계하면서 토지거래허가제도의 폐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도래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