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미국전쟁연구소(I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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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 12일(이하 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각각 통화한 뒤 종전 협상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지 약 3년 만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종전 세부안에서 적지 않은 견해차를 보이고 있으나, 큰 변수로 여겨지던 광물 협정 합의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가 광물 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미국에 올 예정”이라고 했고, “푸틴은 이 문제(종전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

러시아에 유리한 종전안 ‘우려’

미국과 러시아는 2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공식적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식 협상에 착수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을 주축으로 한 양국 대표단은 고위급 협상 팀을 신속히 꾸려 종전 논의를 이어가자고 합의했다. 이후 트럼프는 2월 24일 “우리의 초점은 가능한 한 빨리 휴전을 달성하고 영구적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면서 “전쟁은 몇 주 안에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푸틴과 미·러 양국 간 경제개발 협력도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푸틴은 같은 날 “미국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접근하기로 합의했지만, 본질적인 논의는 하지 않았다”면서도 “우리는 미국을 포함한 외국 파트너와 협력할 준비가 됐다”고 했다. 이어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가 장악한 우크라이나 돈바스 등 지역을 언급하며, “러시아 연방으로 돌아온, 우리의 새로운 역사적 영토에도 (희토류 등 자원이) 일정 수준 매장돼 있다”고 했다.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의 종식 협상이 개시됐다는 의미가 크지만, 트럼프가 밝힌 종전 방식은 러시아 구상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휴전이나 종전 조건으로 내건 크림반도 및 동남부 네 개 주(州)의 영토 수복에 대해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일부 영토를 양보하는 대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겠다는 우크라이나 의견에 대해 “실용적이지 않다”고 했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략’으로 규정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즉시 철수할 것을 요구한 유엔총회 결의안에 최근 반대했다.

미·러 주도 종전 협상이 이어지자, 젤렌스키는 2월 13일 “우크라이나 참여 없는 미국과 러시아 간 평화협정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2월 23일 “미국 조건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도와주지 않겠다’라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마 해야 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요구한 광물 협정 수용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군사·재정 지원의 대가로 미·우 양국이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 광물자원을 함께 개발해 수익을 공동 기금화하는 것이 골자다. 기금에 대한 지분 규모는 추후 협의를 거쳐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트럼프는 “협상 규모가 1조달러(약 1436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경제협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억제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BBC는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트럼프의 백악관이 대서양 동맹을 뒤흔들고 모스크바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트럼프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인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하면서, 푸틴에게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지도 않고,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약속하지도 않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매우 수치스러운(shameful) 일”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 재건 관련주 ‘들썩’

세계은행 연구에 따르면, 전쟁 종식 이후 우크라이나 재건에 드는 비용은 5240억달러(약 752조원)로 추정된다. 주택 부문의 타격이 가장 크다. 현재 우크라이나 주택의 13%가 손상돼, 주택을 되살리는 데만 840억달러(약 121조원)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운송 부문 780억달러(약 112조원), 에너지 및 광업 680억달러(약 98조원), 상업 및 산업 640억달러(약 92조원), 농업 550억달러(약 79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재건 사업 참여 기회를 적극적으로 탐색 중이며, 종전이 이뤄지면 각국 기업의 재건 사업 수주 경쟁이 거세질 전망이다.

전쟁 종식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주를 주목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D현대건설기계 주가는 올해 들어(1월 2일~2월 26일) 32.76% 급등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주로 묶이는 대동기어(92.02%), HD현대인프라코어(30.77%), 현대에버다임(21.33%), 동일고무벨트(17.99%) 등 도 같은 기간 큰 폭으로 올랐다. 다만 사업 수주가 아직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대가 과도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DS투자증권은 2월 14일 HD현대건설기계에 대한 투자 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매도’로 2단계 낮춘 리포트를 냈다. 종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이유에서다. 양형모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쟁의 최대 손실 지역은 러시아 점령지인데, 만약 러시아가 이를 가져가면 우크라이나 재건 규모는 기존 추정치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한다”며 “러시아 점령지는 러시아와 중국이 재건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Plus Ponit

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 협상 주요국 반응은
‘더 티 딜’ 우려하는 EU, 중국 “기쁘게 생각”

미·러가 종전 협상을 주도하자, 유럽연합(EU)은 자신의 역할이 축소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전쟁 발발 3주년인 2월 24일 키이우를 방문해 “푸틴의 목표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항복”이라며 “유럽은 이 중요한 순간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여기 있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같은 날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만나 “우리는 평화가 존중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할 준비가 돼 있다” 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최대 3만 명 규모의 유럽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마크롱 말에 트럼프는 “유럽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것에 문제없다고 본다”며 “푸틴도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월 24일 푸틴과 통화한 뒤, “중국은 러시아와 관련 당사국이 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러 접촉을 의식한 듯, “중국과 러시아는 떨어질 수 없는 좋은 이웃이자 아픔을 함께하고 서로 지원하며 함께 발전하는 진정한 친구”라며 우호 관계를 과시했다. 푸틴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충돌 근원을 제거하고, 지속 가능하며 항구적 평화 방안을 달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답했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