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르완다계 반군인 M23 소속 군인이 무장한 모습. /AFP연합
친르완다계 반군인 M23 소속 군인이 무장한 모습. /AFP연합
부카부(Bukavu)는 콩고민주공화국(DRC· 민주콩고)의 동쪽 끝, 키부(Kivu) 호숫가에 자리하고 르완다와 국경을 접하는 민주콩고 동부의 주요 도시다. 2월 16일(이하 현지시각) ‘3월 23일 운동(M23·March 23 Move-ment)’이라고 불리는 친르완다계 반군이 이 도시를 점령했다. M23이 민주콩고 동부의 또 다른 전략 도시인 고마(Goma)를 점령한 지 불과 2주가 지난 시점이다. 1990년대 초반 르완다 내전과 대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뜻밖의 소식이라고 할 만하다. 수도 킨샤사에 있는 민주콩고 중앙정부의 힘이 잘 미치지 않는 동부 국경 지대에서 M23을 내세워 군사행동을 하는 르완다군을 보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끔찍한 대학살로 기억되는 곳에서 르완다는 국제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안정을 되찾아 아프리카에서 가장 모범적인 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나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르완다와 민주콩고 동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 경제 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 경제 정책연구원(KIEP) 원장

내전·대학살 르완다, 모범적 국가 재건으로 찬사받아

르완다는 과거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2년에 독립했다. 르완다 국민의 85%는 후투(Hutu)족 그리고 약 14%는 투치(Tutsi)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6~62년 벨기에 식민지 시절 벨기에는 소수파 투치족을 우대하며 후투족을 차별했다. 독립 이후 다수파 후투족 중심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독립 후 계속된 차별에 분노한 투치족을 해방하기 위해 1990년 10월 1일, 소수파 투치족 중심의 르완다 애국전선(RP-F·Rwandan Patriotic Front)이 우간다 국경을 넘어 침공, 내전이 시작된다. 1993년 평화협정 이후 안정을 찾아가던 정국은 1994년 4월 6일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분노한 후투족 극단주의자가 이후 3개월 동안 약 100만 명을 죽인 소위 ‘르완다 대학살’이 벌어졌다. 우리가 외신에서 르완다 인종 청소라는 끔찍한 소식을 들은 것이 바로 이때다.

국제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그해 7월 후투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수도 키갈리를 점령한 RPF 지도자 폴 카가메(Paul Kag-ame)는 대통령으로 취임, 투치족 정부를 이끌었다. 이후 르완다는 대통령 주도로 국가 재건에 힘쓰며 놀라운 회복력과 안정, 경제성장으로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가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르완다는 정치적 안정, 부패 없는 행정 그리고 평균 7~8%의 빠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아프리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비즈니스 환경도 좋다. 키갈리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화웨이 같은 글로벌 기업이 진출해 있다. 르완다는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아프리카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다. 전국에 광섬유 네트워크를 깔아 인터넷 보급률을 9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전자 정부를 구현, 각종 서류 발급이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2019년 첫 통신위성을 발사하기도 했다. 극빈층 비율도 꾸준히 낮춰 조만간 최빈 개도국 지위를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르완다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IT와 혁신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불린다. 그런데 이런 르완다가 카가메 대통령 집권 후에도 민주콩고와 갈등으로 두 차례 전쟁을 치렀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르완다, 민주콩고 동부 ‘영유권’으로 주장

다시 1994년으로 돌아가자. 대학살로 악명을 떨친 후투족 극단주의자는 그해 결성한 르완다민주해방세력(FDLR·Forces Démo-cra-tiques de Libération du Rwanda)과 함께 민주콩고 동부로 도주했다. 이어 이들이 민주콩고의 지원을 받아 르완다를 재차 공격하자, 1996년 르완다는 우간다와 함께 민주콩고 동부로 넘어가 후투족 반군을 소탕하기에 이른다. 1997년까지 계속된 이 전쟁을 1차 콩고전쟁이라고 부른다. 1998년이 되어민주콩고의 지도자가 된 카빌라(Kabila)가 후투족 중심의 민병대 FDLR을 지원하자 르완다는 다시 민주콩고를 침공, FDLR 및 이를 지원하는 카빌라 민주콩고 정부와 2차 콩고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앙골라, 나미비아, 짐바브웨 등이 민주콩고를 지원하면서 국제전으로 확산했다. 이후 2003년 평화협정이 맺어져 르완다가 공식적으로 민주콩고 국경 밖으로 철수했지만, 이 지역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M23 등 르완다 정부가 지원하는 반군이 활동하면서 르완다는 민주콩고 동부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단순히 방어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 지역을 통제하려고 한다.

르완다는 대부분이 르완다계 투치족이며 르완다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M23을 통해 민주콩고 동부에서 계속 머무르고자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민주콩고 동부에는 콜탄, 금, 주석, 텅스텐 등 희귀 광물이 풍부하다. 르완다는 공식적으로 광물자원이 부족한 나라지만, 민주콩고 동부에서 밀거래되는 광물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유엔(UN) 보고서에서도 르완다가 M23을 통해 광물을 불법 수출한다는 증거가 제시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르완다는 민주콩고 동부에서 FDLR과 대치하며 살고 있는 투치족을 보호하고 이를 빌미로 지역 패권을 추구,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르완다 정부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M23을 지원, 실질적으로는 민주콩고 동부를 영향권 아래 두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르완다는 카가메 대통령 집권 이후, 경제·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동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로 성장했다. 민주콩고가 불안정할수록 르완다는 역내에서 군사적·경제적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르완다 정부는 민주콩고 동부를 르완다의 영향권 아래 계속 두려는 장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자료='이코노미조선' 정리
/자료='이코노미조선' 정리

전형적인 아프리카 지역 분쟁, 장기화 가능성

민주콩고 동부에서 벌어지는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 반군을 지원하는 옆 나라, 복잡한 역사와 민족 구성, 국경분쟁 등은 아프리카 지역 분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재도 진행 중인 수단과 남수단의 분쟁 및 다르푸르 문제, 과거 라이베리아 내전과 앙골라내전 등 아프리카에서는 노예무역 시기에 발원하여 식민지 통치에서 누적된 모순이 독립 이후 지역 분쟁으로 폭발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그 결과는 오랜 전쟁, 쉽게 재발하는 지역 분쟁 그리고 계속되는 기아와 재난이다. 아프리카의 보석 같은 존재로 거듭난 르완다가 부디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평화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매년 키갈리에서 개최되는 키갈리 글로벌 대화의 핵심 메시지가 아니던가.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