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팰로앨토 사무실을 여럿이 함께 먹고 자면서 일하는 ‘해커 하우스’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많은 한국인 초기 창업자가 이곳을 다녀갔다. 얼추 세어보니 지금까지 80여 명된다. 벤처 투자자로서 미국 시장에 도전하고자 커피챗을 한 투자자도 30여 명 정도 된다. 이들 중 미국 시장에 진심으로 올인하는 창업자는 열 명이 채 안 되고, 투자자는 세 명 남짓이다. 뛰어난 창업자도 미국 진출에 실패하는 경우를 다뤄보고자 한다.
우선 적응에 최소 2년에서 3년이 걸린다. 특히 영어가 편하지 않은 사람은 이곳 문화에 익숙해지는 데 2년이 걸린다. 필자는 영어를 하지 못할 때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처음엔 6개월이면 뭐라도 돼 있을 줄 알았지만, 1년 반쯤 돼서야 감을 좀 잡아간다고 느꼈다. 현지 선배 창업자들도 미국에 오고 2~3년이 지나야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보통의 스타트업이 자금을 런웨이(보유 현금으로 회사 운영을 지속할 수 있는 기간) 1~2년 정도로 운영하다 보니,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또는 엄청나게 궁핍한 삶을 감내할 마음가짐이 없다면 미국 진출이 어렵다.

돈은 두 배로 빨리 써버린다. 팰로앨토 로컬 카페에서 오믈렛 하나에 커피 한 잔 마시면 3만원이 기본으로 나간다. 주거 비용도 비싼데 관리비, 난방비까지 모든 것이 비싸다. 뭐 하나 까딱 잘못해도 벌금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나간다. 물가도 비싸지만, 한국이었다면 내지 않았을 돈을 지출하다 보면 원래 계획보다 두 배 빠르게 자금을 소진하게 된다. 생각보다 허리띠 더 졸라매고 멀리 보고, 기업과 삶을 바꾼다는 각오가 없으면 미국 진출이 어렵다.
로컬이 되는 데만 1년이 걸린다. 로컬 창업자, 투자자도 100명에게 미국 진출을 조언해 봐야 열 명도 채 진심으로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외지인에게 보수적이다. 전 세계에서 영업 메일, 조언을 구하는 메일 등이 쏟아지기 때문에 모두 필터링할 수없으므로 오늘 연락하면 오늘 만날 수 있는 사람만 신뢰하고 교류한다.
다들 절박하게 일한다. 인도의 경우 가문에서 한 명을 미국에서 성공시키기 위해 사돈의 팔촌까지 힘을 합친다. 실리콘밸리 회사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 좋고 가족 중심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맞는 말이지만 오해하는 것이,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한 후 가족을 돌보고 밤늦게 집에서 또 일한다. 똑똑하고 성실한 건 한국인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중국과 인도 창업자는 자국의 막대한 제품 개발 노동력을 지렛대 삼아 24시간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을 키운다. 그럼에도 실리콘밸리가 위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곳에선 존경할 수 있는 세계적 인재가 열린 마음과 낙관주의로 절박하게 일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장에서 파이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파이를 키우는것이 여기선 더 중요하다. 분야를 확장하는 것보다 한 분야만 잘해도 조 단위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실리콘밸리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간 협업이 빠르게 일어난다.
한국에 있어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많다. 뛰어난 인재가 미국에 더 도전하면 좋겠지만, 각자 있는 위치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최대한의 꿈을 꾸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