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2월 22일 반도체 특별법 등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1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2월 22일 반도체 특별법 등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산업 정책에 대한 각국의 정책이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산업 정책은 18세기 유럽의 중상주의 시대에 자국의 경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한 데서 출발했다. 19세기 들어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자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후발국의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한 바 있다. 20세기 들어 세계대전 이후 일본, 한국, 대만 등은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특히 수출 중심의 산업 정책을 통해 빠르게 경제 발전을 이루어 왔다. 

미국은 자유 시장경제를 지향하며 자국은 물론 타국에도 정부의 산업 개입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지지해 왔으나, 최근 들어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와 기술 패권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산업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 경제 안보의 부상과 산업 정책의 부활

중국이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한 이후 미국의 산업 정책 흐름은 선발국인 미국이 후발국인 중국을 따돌리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현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고문,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전 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현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고문,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전 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미국 국방부에서 정의해온 경제 안보 개념을 보면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거나 발전시키고,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국제적 이익을 형성하고, 비경제적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을 소유하는 능력’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2017년 12월 미 국방부 국가 안보 전략 보고서는 경제적 번영과 성장이 국가 안보와 직결한다는 경제 안보 개념을 내놓은 바 있으며, 경제 안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그중 핵심 산업 육성 및 지원을 위한 산업 정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싱크탱크가 ‘외부의 경제적 충격에 대한 방어’ 라고 정의하면서 공급망 안보에 집중하는 수동적, 방어적 개념을 강조한 것에 비하면 미국은 경제성장을 통한 능동적 방어 개념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은 부처마다 특성을 고려한 경제 안보 개념을 정의해 왔다. 통상 정책을 담당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통상 정책 측면에서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를 연계해 추진해 왔으며, 상무부에서는 가상 적대국인 중국과 기술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위해 기술 안보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왔다. 예컨대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대 전략물자의 공급망 디커플링이나 첨단 기술 유출 금지 정책 등을 활용하고 또한 동맹을 동원한 신뢰 가치 사슬(TVC) 등을 강조했다. 지난 1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기술 안보와 더불어 기존의 관세정책 강화를 통해 경제 안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의 대표적인 산업 정책으로는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법(IIJA),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들 수 있다. 이 3법은 중국과 기술 경쟁, 공급망 안정화, 기후변화 대응 등을 현재 미국과 세계가 당면한 이슈를 주요 과제로 인식해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새로운 산업 정책이다.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AI), 친환경 에너지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 정책이자 대중국 견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 강화도 제조업 공급망을 미국에 집중 구축하기 위한 산업 부흥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미·중 간 갈등과 충돌이라는 최악의 경우도 감안한 정책인 것으로 사료된다.

중국, 산업 정책의 국가

중국은 산업 정책의 국가다. 1953년부터 5년마다 경제계획 기간을 확정해 중국 현실과 특성에 맞는 5개년 경제 발전 계획 제도를 지속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대약진운동(19 58~62년)으로 경제 기반이 무너졌던 3년간(1963~65년)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시행 및 강화해, 이미 산업 정책의 역사가 70년을 상회하고 있다.

대약진운동은 1957년에 소련이 공업 및 농업 생산을 통해 15년 내 미국을 추월하겠다고 선언하자, 1958년 중국도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겠다며 발표한 야심 찬 경제 발전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행 과정에서 협동농장, 토법고로(제철소 대신 마을마다 소형 용광로 설치), 제사해운동(참새, 들쥐, 파리, 모기 등 해로운 네 가지를 박멸하는 운동으로, 2억 마리가 넘는 참새를 잡아들였으나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급속히 늘어나 오히려농업 생산량 감소), 산림 파괴, 가축과 농지·수산물 등에 대한 살충제 남용, 벼 빽빽하게 심기 등 잘못된 산업 정책으로 3000만~6000만 명이 아사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사임으로 이어졌으며, 중국의 경제, 문화 수준이 20년 이상 퇴보하고 문화대혁명이 발생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는 중국의 초기 산업 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며, 이러한 산업 정책 실패는 개혁∙개방 이후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 같은 전문가에 의한 면밀한 산업 정책 수립과 집행으로 이어져 고속 성장을 이룩하는 데 기여했다.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성장 가도에 탄력을 받은 중국 정부는 2010년 첨단산업 육성을 강조해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 첨단 장비, 신소재, 신에너지차(NEV·전기차, 플러그인하이드리드차, 수소전기차 등), 에너지 절약 및 환경보호, 신에너지, 바이오 등 7대 산업을 ‘12·5 전략적 신흥 산업’으로 지정하고 중점 육성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12·5 계획의 첨단 장비를 항공우주 장비, 철도 교통 장비, 공작기계 및 산업로봇, 해양 공정 및 첨단 선박, 농업 장비 등으로 분류해 만든 ‘중국 제조 2025’를 선언했다. 이와 더불어 병행 실시된 ‘인터넷+ 정책’은 최근의 ‘AI+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또한 ‘공급 측 개혁’이라는 품질 혁명 정책도 추진했다. 2017년에는 녹색 저탄소, 디지털 콘텐츠 등을 포함한 ‘13·5 전략적 신흥 산업’을 발표했다. 이러한 전체적인 경제 산업 발전 계획 이외에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반도체 대기금 정책, 수소 산업 발전을 위한 수소 산업 발전 계획, 탄소 저감 산업을 위한 탄소 산업 발전 정책 등을 제정해 전면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경제 및 산업 발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 적극적 산업 정책·컨트롤 타워 필요

과거 한국은 경제 발전 5개년 계획,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공업화 정책 등 각종 산업 정책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으나, 1990년대 들어 한국은 미국의 산업 정책 지양 정책에 발맞춰 직접적인 산업별 육성 정책보다는 산업 발전의 방향성을 중시한 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미·중 충돌이라는 시대적 흐름의 변화 이후 미·중 양국은 첨단산업에서 주도권을 쟁취하고자 보조금 확대와 관세장벽 등을 통한 직접적인 산업 육성 정책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반도체 경쟁국인 대만은 반도체 산업을 ‘호국(護國) 산업’ 으로 지칭하면서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산업 정책은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과거 세계화 시대 산업 정책의 관념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며, 입법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해야 할 국회는 여야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반도체 특별법 제정이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정체되고 있는 경제 법안이 바로 반도체 특별법이다. 입법이 표류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노동자 가운데 ‘고임금 노동자’에게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와 초과 근로 수당 지급 규제를 면제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기술 기업인 화웨이는 설 연휴 내내 야근하고, CATL은 ‘896 근무제(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월~토요일 근무)’를 실시하면서 R&D에 목숨을 걸고 있다.

미래 산업이기도 한 첨단산업의 발전이 없으면 우리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우리도 산업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를 통해 국가 발전의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산업 정책으로 전환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